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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노동일보 휴간, 노동계에 대한 짝사랑의 끝인가

노동일보 휴간, 노동계에 대한 짝사랑의 끝인가
말로는 진보언론 필요, 실제로는 기성언론에 매달리지 않았나


<노동일보>가 4월28일자로 경영상의 이유로 휴간에 들어갔다. 편집진은 인터넷으로나마 기사를 송출하겠다는 의지를 밝혔지만 이마저도 5월19일자로 중단되었다.

그런데도, 이상하리 만큼 노동계는 무관심으로 일관하고 있다.
스스로를 ‘노동자와 국민대중의 운명에 자신의 일생을 건 사람들’로 규정하고, ‘정체성이 분명한 노동자언론’이 되고자 했던 <노동일보>의 매체 정신을 볼 때 노동계의 무관심은 언뜻 이해가 되지 않는다.

‘세계 최초, 세계 유일의 노동자 종합일간지’를 만들고자 했던 미디어전사들이 지금 거리로, 산으로, 자신만의 골방에 갇혀있다.

노동일보 홈페이지 ⓒwww.laborw.com
ⓒ 민중의소리

노동일보, 그들만의 짝사랑?

<노동일보>의 한 여기자는 무겁고 힘없는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그녀는 좌절과 미련으로 "아무것도 하지못하고 있다"며 말문을 열었다.

"너무 마음이 안좋아 고개를 돌리고 싶은 심정 아세요?"
"이제는 정말 너무 힘들어 고개를 돌리고 싶어요."

그녀에게 <노동일보>는 기자라는 직업이 아니라 노동운동에 복무한다는 활동가적 자부심으로 다가왔다. 지금의 떨리는 목소리가 이를 증명한다.

그녀는 노동일보의 기자들이 대부분 아쉬워하고 절망하고 자기처럼 지내고 있다고 한다. 두문불출, 산으로, 바다로, 더러는 골방에서.

그들만의 공간이 노동조합 홈페이지에는 '아쉬움과 절망, 서로를 위로하는 글들과 함께 새로운 매체의 탄생을 희망하는 글들이 즐비하게 올라와 있다.

“우리들의 노력이 지금은 비록 허공에 소리치는 꼴이 되었다 하더라도, 비록 역사에 남지 못하더라도, 새 세상을 열어가는 밑거름이 될 것이 분명합니다”
“아직 가족 아무에게도 회사사정을 말하지 못한 벙어리 냉가슴을 소주잔을 기울이며 달래볼까 합니다. 작으나마 희망도 함께 담아서..”

그들은 한달 70여만의 월급에도 <노동일보>와 노동운동에 복무하고 있다는 자부심으로 살아왔다. 노동운동의 이해와 입장을 대변하기 위해서 힘든 고통을 감내하며 달려왔던 미디어 전사들은 막상 결정적인 어려움에 처해서는 ‘동지’들의 도움을 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노동계를 포함한 진보진영의 언론에 대한 이중적 시각

진보진영의 활동가들은 종종 진보적 언론에 대해 묘한 이중기준을 보여준다. 자신들의 주장을 그대로 인용하면 지루해하고, 막상 노동운동에 대한 비판적 기사를 실으면 ‘이럴 수 있느냐’고 항의한다.

“노동일보가 처음 나왔을때, 노동계에서는 기사의 내용이 자신들이 아는 내용이라며 오히려 비판적인 기사를 원했었는데, 막상 비판적인 기사가 나가자 ‘노동일보가 이럴수 있느냐'며 항의가 들어왔었어요. 심지어는 절독까지 하겠다는 항의도 들어오고..."

기사의 소스(Source)를 다루는 데서도 이러한 이중성은 곧잘 드러난다.

진보적 매체들은 아직 부수나 논조의 측면에서 큰 영향력을 갖고 있지 못하다. 부수가 작다보니 이를 읽는 사람들의 숫자가 적고, 사회지도층에 끼치는 파급력도 약하다. 무엇보다도 진보적 매체는 ‘진보운동’ 자체의 실력과 비례할 수 밖에 없으므로, 진보운동의 힘이 아직 약한 이 사회에서 진보적 매체의 실력 역시 작은 것이 현실이다.

<노동일보>의 경우에도 이것은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막상 진보진영내에서 커다란 사회적 이슈가 되는 사건이 생겨나면 활동가들조차 제도권의 거대언론에게만 빠르고 중요한 정보를 제공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물론 당장의 싸움이 급하다보니 생기는 일이지만 평소 ‘진보적 대안언론’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과는 모순이 된다.

<노동일보>기자는 자신이 취재하면서 느꼈던 생각들을 털어 놓았다.

“독선인지도 모르겠다"
그녀에게 이 부분은 여전히 부담스럽다.

"말하기 어렵지만 노동단체 실무자들에게 아쉬운 것은 영향력이 작은 진보언론보다는 당장 자신들에 더 이익이 되는 보수언론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기사의 질에 대해 반성해야 할 부분이 많지만, 취재비나 지원역량의 부족으로 취재의 한계성을 느낄 수 밖에 없었다.”

진보적 성향의 매체에서 일하는 사람이라면 대부분 겪어본 일일 것이다.
진보운동은 그 동안 보수적 언론에 의해 ‘왕따’를 당해왔다. 정치권의 시시콜콜한 뒷이야기까지 밤을 새가면서 쫒아다니는 기자들도 목숨을 건 노동자의 투쟁에 대해서는 ‘냉정하고’, ‘객관적인’ 한줄짜리 보도로 그친다.

민주노동당의 주간지 '진보정치' 131호에는 "언론, 민주노동당 외면심각..기사거리 제공하고도 무시당하기 일쑤"라는 기사마저 등장할 정도다.

이에 대한 책임은 물론 진보적 대안 매체 스스로가 져야 한다.
그러나 노동계나 진보적 단체들이 ‘진보적 언론’의 중요성을 말하면서도, 중요한 사회적 이슈가 발생하면 기존보수성향의 언론에 접근하고 매달리는 모습은 진보적 대안매체의 위축과 발전을 저해하는 요인이 된다.

가령 <노동일보>가 언론사로서 중요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었다면, 오늘의 폐간위기에 노동계가 ‘강건너 불구경’만 하고 있었을 것인가. ‘진보언론이 살아남는 것은 어차피 어려운 것 아니냐’고 한다면 스스로 조직하고 있는 ‘연대’투쟁의 이미지와 상반된다.

<노동일보> 기자가 말한 것처럼, 진보진영에도 조직 내부의 보수화와 정치적인 이해타산이 스며들지 않았는지 돌이켜 볼 필요가 있다.

"생각하면 자꾸만 눈물이 납니다"
"<노동일보>를 생각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점차 울먹거리는 소리끝에 결국 그녀는 아쉬움과 절망의 울음을 터뜨려버렸다.
ⓒ민중의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