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이하 진실화해위원회, 위원장 이영조)는 충남지역 민간인 희생사건과 경기 북부지역 적대세력에 의한 피해사건에 대해 진실규명했다.

진실화해위원회는 31일 보도자료를 통해 충남지역 민간인 희생사건은 한국전쟁 중인 1950년 9월28일 수복 후부터 1951년 1․4후퇴 무렵까지 충남 금산군 등 7개 지역 163명 이상의 주민들이 부역혐의가 있다는 이유 등으로 국군과 경찰, 치안대 등에 의해 불법적으로 희생됐다고 밝혔다.


진실화해위원회는 이 희생사건에 대해 금산경찰서의「처형자 명단」,「사실조사서」및 부리지서의「부역자 명부」,「사살자 명부」등의 문헌자료 검토와 신청인 및 당시 경찰이었던  참고인들에 대한 진술조사, 사건 현장조사 등을 통해 사건의 실재여부와 희생 규모를 조사했다고 밝혔다.


진실화해위에 따르면 충남 금산군의 경우, 금산읍 비비미재와 부리면 부리지서의 지하벙커, 어재리 형석굴 등에서 희생됐다. 논산군은 두마지서 천변, 보령군은 남포면 이어니재, 부여군은 부여경찰서, 연기군은 조치원여자중학교 뒤편, 천안군은 삼은리 저수지 등지에서 희생됐다. 

진실화해위는 이 사건이 전쟁 상황에서 발생하였다고 하더라도, 국가기관인 경찰과 국군이 단지 부역혐의만으로 민간인들을 적법절차 없이 살해한 것은 인도주의에 반한 불법행위였다고 밝혔다.

진실화해위원회는 국가에 대해 희생자 유족들에게 사과하고 명예회복을 위한 적절한 조치를 취할 것과 위령사업 지원, 가족관계등록부 정정, 역사기록 정정 및 수정, 평화인권 교육 실시 등을 권고했다.

이와함께 경기 북부지역 적대세력에 의한 피해사건도 진실규명됐다.

경기 북부지역 적대세력에 의한 피해사건은 1950년 7월부터 10월까지 경기도 가평군 등 5개 지역 주민 22명이 공무원, 대한청년단원 등 우익활동을 하였거나 그 가족이라는 이유로 희생당한 것으로 알려진 사건이다.

진실화해위는 이 피해사건은 인민군 점령기에서 퇴각기에 걸쳐 경기도 가평군, 포천군, 양주군, 파주군, 고양군 지역의 주민 다수가 공무원과 대한청년단원 등 우익활동을 했거나 그 가족이라는 이유로 지방좌익에 의해 희생된 것이라고 밝혔다.

또, 이 사건의 가해주체는 자위대원, 내무서원 등의 지방좌익으로 밝혀졌으나 이들의 신원은 정확히 확인할 수 없었다고 밝히고 인민군이 함께 있었다는 증언도 나왔다고 말했다.

진실화해위에 따르면 이번 피해사건으로 신원이 확인된 희생자들은 22명이다. 피해자들은 대부분 성인 남성으로 분주소 및 내무서에서 희생됐다. 포천군의 경우 구읍 뒷산, 양주군은 마치고개, 파주군은 적성면 두포리 전진교 앞, 고양군은 일산내무서 뒷산 등의 특정장소에서 희생되기도 했다.

진실화해위원회는 이 피해사건은 ‘6·25사변피살자명부’등 문헌자료 검토와 신청인 및 참고인 진술조사, 사건현장조사 등을 통해 사건의 실재 여부와 희생규모를 조사했다고 밝히고,
국가에 대해 제적부 및 가족관계등록부 등 공식 문서기록 정정,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위령사업 지원, 역사기록 정정 및 수록 등을 권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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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해 12월 ‘진실과 화해’「Truth and Reconciliation」라는 영문책자 배포를 중단해 논란을 일으킨 보수성향의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가 명예훼손으로 피소됐다.

이 영문책자의 번역, 감수인인 김성수씨 외 2인은 4일 서울중앙지방법원에 낸 손해배상청구소장을 통해 “명확한 번역오류가 밝혀지지 않은 상태에서 진실화해위원장이 번역오류로 인해 발간 배포를 중단했다”고 주장했다. 또, “각 언론사들을 통해 영문번역 오류로 인한 배포중단이라고 보도가 되면서 허위사실이 유포됐고, 이로 인해 영문 통․번역 업무에 손실을 입힐 정도로 큰 명예훼손을 당했다”고 강조했다. 

진실화해위원회가 발간한 ‘진실과 화해’「Truth and Reconciliation」영문책자

이들은 영문책자를 발간할 당시, 원고들이 영문번역한 후 원어민 등에게 감수의뢰를 해서  번역의 오류발생여부를 재확인 받은 바 있고, 이영조위원회장이 상임위원직으로 활동할 당시에 영문책자에 대한 검토를 마치고 최종적으로 발간하고 배포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이영조 위원장이 진실화행위원회 상임위원직을 담당하던 2008년 11월부터 2009년 2월까지 3개월간의 영문원고 검토 기간이 주어졌다며, 당시는 이 위원장이 영어오역에 대해 어떤 지적도 하지 않았다고도 했다.

이밖에 이들은 당시 이영조 상임위원이 올해 초 진실화해위원회 위원장으로 취임하자마자 영문책자의 번역오류를 이유로 들어 배포중단을 지시하면서도 어떤 부분에서 번역상의 오류가 발생되었는지 지적하지도 않았다고 주장했다. 번역오류를 해명하기 위해 진실화해위원회가 뒤늦게 영문책자 재감수를 의뢰했지만 지금까지 오류가 발생된 부분을 명확히 밝히지 않고 있다고도 했다.

소송인 겸 번역자인 김성수씨는 “자유 민주사회에서는 좌우보혁과 무관하게 생각을 자유롭게 표현 할 수 있어야 한다”며 “이번 영문책자 언론과 표현의 자유가 중시되는 자유민주사회의 원칙과 가치와도 어긋난다”고 지적했다.

또, “진실해야 할 진실화해위원회 위원장의 영문번역 오류라는 거짓해명을 밝히는 것은 한국의 국격을 높이는데 도움이 된다”며, “과거 억울한 사람의 누명을 풀어주고 해결해 주어야 할 진실위 위원장이 오히려 거짓과 허위로서 억울한 사람을 만들어 내는 것은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한편, 지난 해 3월 1,000부가 발행된 이 영문책자는 국제기구와 과거사 연구 외국학자, 주한 외국공관, 외신등 주요 기관에 배포됐고, 2009년 11월에 그 수요가 늘어남에 따라 1000부가 추가로 제작됐다. 

진실화해위원회의 소개와 조사 절차와 처리, 집단학살 장소발굴과 조사활동, 결정사건 분석, 주요 성과와 향후 과제 등의 내용을 담고 있는 이 영문책자는 한국전쟁 시기 국군의 민간인 학살 장면을 표지로 장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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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위원회’가 “5․3 동의대 화재수사과정에서의 가혹행위 의혹사건”(사건번호 라-8074)에 대해 각하결정을 내리면서 진실규명을 회피하고 은폐한다는 내부적인 비판을 받고 있다. 또, 국회에서 야당이 ‘추천’하여 선출된 위원이 위원회에 오기 전에 이 사건을 각하 처리했다는 의혹도 받고 있다. 

2009년 4월부터 조사가 시작되어 사실상 수사과정에서 검경의 가혹행위가 확인된 상태였던  이 사건은 이영조 위원장이 취임한 이후 전원위원회의에 상정됐다. 하지만 사건조작에 대한 판단의 유무를 두고 일부 위원이 문제를 제기해 사건조작에 대해서는 판단을 하지 않는 것으로 결정을 내렸다. 

이후 전원위원회의에서는 그동안 거론되지 않던 시기의 문제가 일부 위원에 의해 다시 제기됐다. 동의대 사건은 노태우 정부시절 발생한 사건으로 노태우 정부는 “권위주의 통치 시기”에 해당하지 않아, 위원회가 이 사건을 다루는 것은 위원회의 권한을 벗어난다는 의견이다.

이영조 진실화해위원회 위원장

일부 위원들은 노태우 전 대통령은 헌법이 개정되어 ‘대통령 직선제’로 당선되었으며, 새로운 공화국이 등장했다는 것으로 권위주의 통치시기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이 사건을 두고 전원위원회는 지난 1월19일 표결을 거처 ‘위원회의 권한 밖의 사항’이라는 이유로 각하 처리했다. 이어 신청인의 이의신청에 대해서도 지난 27일 표결로 다시 기각 처리 결정을 내렸다.

이에 대해 이상환 상임위원과 이기욱 위원은 “이 사건을 각하 처리한 것은 위원회의 조사활동이 거의 끝나 갈 무렵에 지금까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던 사항을 갑자기 제기하여 위원회의 기존 입장을 뒤집는 행위로 위원회의 신뢰성에 큰 훼손을 가져왔다”고 반발했다.    

두 위원은 “이러한 형식 논리라면 이승만 정부와 박정희 정부도 상당한 기간 동안 대통령이 직선제로 당선되었기 때문에 권위주의 통치시기에 포함시키는데 많은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또, 지금까지 위원회는 노태우 정부 시절 발생한 사건을 다루어 4건은 진실규명을 했고, 1건은 진실규명불능 처리를 했다며, 이의신청을 다시 기각한 것은 그릇된 결정을 시정하지 않고 거듭 잘못을 저지른 것이라고 강조했다.

앞서, 진실화해위원회는 노태우 정부 시절에 발생한 강기훈 유서대필 의혹사건과 주민교회 김해성 목사 인권 침해 사건, 김철 간첩조작 의혹사건, 그리고 남현진 의문사 사건에 대해 진실규명 한 바 있다. 또한, 김정환 생매장 협박사건에 대해 진실규명 불능 결정을 내린 바 있다. 

이와 함께 이들 위원은 설령 노태우 정부가 권위주의 통치시기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해도,  이 시기에 발생한 인권침해 사건을 다루지 않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상환 상임위원은 정부 기관이 반성과 화해 차원에서 구성한 '국정원 과거사건 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 '경찰청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 '국방부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는 모두 노태우 정부 시기에 발생한 인권 침해 사건 등을 다루었다고 말했다. 

또, 민주화운동 위원회는 2003년 6월, ‘권위주의 통치 시기’에 대하여 심도 있게 논의해 노태우 정부를 권위주의 통치시기에 포함시켰고, 사안별로는 민주화운동과의 관련성 여부를 살펴 김영삼 정부까지도 포함시키고 있다고 반박했다.

아울러, “‘반민주적 또는 반인권적 행위에 의한 인권유린과 폭력․학살․의문사 사건 등을 조사하여 왜곡되거나 은폐된 진실을 밝혀냄으로써... 과거와의 화해를 통해 미래로 나아가기 위한 국민통합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한다’는 것이 위원회의 설치 목적”이라며, “이번 사건의 처리 과정 및 그 결정을 보면 과연 위원회가 독립된 위원회로서 주어진 책임과 의무를 다하고 있는지, 진실규명을 정직하게 하고 있는지, 화해를 진정성 있게 권고하고 있는지에 대하여 근본적인 의문을 갖게 한다”고 밝혔다.

또한 “진실규명을 다수결로 무시한 위원회의 결정은 향후 조사활동을 마무리 하고 종합보고서를 작성하는 경우에 어느 일방의 입장만이 대변되는 결정이 반복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을까 하는 깊은 우려를 하게 된다”고도 덧붙였다. 

한편, 진실화해위원회 전원위원회는 여당 9명 (대통령 추천 4명, 국회 추천 5명)과 야당 추천 3명(민주당 추천 2명, 자유선진당 추천 1명), 그리고 대법원 추천 3명으로 총 15명으로 구성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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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화해위원회가 진보성향의 안병욱 전 위원장 시절에 발간하고 배포했던 영문책자의 배포를 중단하자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또 진실화해위가 배포 중단 사유로 '영문번역상의 오류'를 든 데 대해서도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진실화해위 이영조 위원장은 지난 5일 '영어번역상 오류가 많다'는 이유로 안 전 위원장 시절 발간, 배포된 ‘truth and reconciliation’ (진실과 화해) 제하의 영문책자의 배포를 중단하라고 지시했다. 이 전 위원장은 지난해 12월 1일 취임했으며 보수성향 인사로 평가받고 있다.

 

이 영문책자는 지난해 3월 발간됐으며 1,000부를 초판 인쇄해 국내외 관련기관에 배포한 후, 11월께 1,000부를 다시 인쇄했다. 하지만 이 위원장의 배포중단 지시로 현재 800여부가 남아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배포중단, '불편한 내용' 담겨서?



‘truth and reconciliation’ (진실과 화해) 제하의 영문책자. 진실화해위원회 이영조 위원장은 영문번역 오기를 들어 배포 중단 지시를 내렸다.ⓒ 진실화해위원회

이 영문책자에는 안 전 위원장이 서술한 'Historical Background of Korea's Past Settlement'('한국 과거사 해결의 역사적 배경')란 글이 담겨있다.

 

안 전 위원장은 이 글을 통해 “미국과 이승만 정부는 한국 민중으로부터 민족 반역자라고 비난받아 처벌당할 상황에 놓여 있던 친일파들을 재활용... (후략)”, “박정희 군부세력은 (중략) 일본군국주의의 극우사상 그리고 미국군대로부터 고도의 통제기술을 전수 받아 극우 파시스트 체제를 한국사회에 접목시켰다”고 기술하고 있다.

 

또한 “한국정부는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이른바 '폭동을 일으키고 적을 도울 것으로 의심되는' 사람들을 대대적으로 학살했다. (중략) 학살은 대부분 한국군, 경찰, 우익테러단체에 의해 자행됐다. (중략) 당시 학살의 주도자들은 지배 권력의 중심에서 한국사회를 사실상 좌우해 왔으며 지난 50년간 한국 현대사를 학살자의 관점에서 정당화해 왔다”고 서술했다.

 

영문책자 배포중단에 대해 반발이 일자 진실화해위원회는 6일 보도자료를 통해 “영어 번역상의 오류가 너무나 많다는 지적이 발행단계부터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어 배포를 중단하게 됐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이에 대해 번역자들은 명예를 심각하게 훼손당했다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또 일각에서는 진실화해위원회의 해명에도 불구하고 진보성향 안 전 위원장의 글이 보수성향의 이 위원장의 심기를 불편하게 한 것이 배포를 중단하게 된 직접적인 이유가 아니냐는 의혹이 이어지고 있다.

 

또한 이 위원장이 안 전 위원장 시절엔 상임위원을 지내면서도 아무런 문제제기를 하지 않다가, 자신이 위원장이 된 후 '잘못된 번역'을 이유로 배포 중단을 지시한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그는 당시 '좌익에 의한 학살과 민족독립운동' 상임위를 담당하면서 이 분야에 대해 사건조사와 지휘, 내용검토와 결재 권한을 갖는 총체적인 책임자 지위에 있었다.

 

이 같은 논란에 대해 진실화해위 홍보담당관실은 6일 정정보도문을 낸 것이 공식입장이라며 더 이상의 언급을 피했다. 또 안 전 위원장의 글에 대해 동의하는지 여부도 홍보담당관실에서 언급할 수 있는 내용이 아니라고 밝혔다.

 

번역자들, 명예훼손으로 소송 검토

 

진실화해위가 배포 중단의 이유를 '번역'의 문제로 들자 당시 번역을 담당했던 이들은 이 위원장을 상대로 소송을 검토하고 있다.

 

당시 번역을 담당했던 A씨는 “이영조 위원장이 안병욱 전 위원장 시절에 상임위원을 역임하면서 내용과 번역에 대해서 충분히 검토할 시간이 있었을 것”이라며 “당시 결재 등 총체적인 책임을 가졌던 이가 왜 지금에 와서 문제를 삼는지 이해를 할 수 없다”고 했다.

 

또 다른 번역자인 C씨는 "지금 봐도 잘된 번역"이라고 '번역상 오류'라는 주장을 일축했다. 그는 자신이 2009년 10월 진실화해위 개최 국제심포지엄에서 통번역을 맡았었다고 강조하면서 번역이 잘못됐다면 국제행사 통번역을 다시 맡을 수 있었겠냐고 반박했다.

 

이들은 진실화해위가 영문책자 배포를 중단한 이유가 번역상의 오류라면 구체적인 자료를 공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영문책자 배포중단은 사실상 금서조치에 해당하는 것으로 이는 "언론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를 진실화해위가 스스로 어기고 있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끝으로 이들은 번역자의 한사람으로서 “과거 억울한 사람의 누명을 풀어주고 해결해 주어야 할 진실화해위원회가 진실을 감추고 오히려 거짓과 허위로 억울한 사람을 만들어 내고 있다”고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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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꼬장선비 2010.01.19 09:5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권 눈치보기하는 불쌍한 한 개인의 소신이 안타깝게 느껴집니다.

한국전쟁당시 경주시 강동면 안계리의 기계천 일대에서 학살된 민간인들은 미 공군의 폭격으로 희생된 것으로 확인됐다. 

진실화해위원회는 한국전쟁기인 1950년 8월, 경상북도 경주시 강동면 안계리의 기계천 일대에 가해진 미군의 폭격으로 민간인 수십 여 명의 희생자가 발생하였고, 이 중 피해 신청인을 중심으로 조사한 결과 35명의 구체적 신원을 확인했다고 25일 밝혔다.

이번 진실규명에 대해서 진실화해위원회는 미국 국립문서보관소(NARA)에서 입수한 제18폭격단(18th Fighter Bomber Wing)의 제39폭격편대(39th Fighter Squadron)의『임무보고서(Mission Report)』등의 자료조사와 생존자 및 참고인에 대한 진술조사, 현장조사를 통해 사건의 실재 여부와 희생규모를 조사한 결과를 근거로 했다.  

당시 유엔군이 낙동강 전선까지 밀린 상황에서 북한군이 낙동강을 경계로 북부, 서부, 동해안으로 동시 다발적으로 침투하고 있는 상황. 

미 공군 제18폭격단 제39폭격편대의 임무보고서(Mission Report)/출처:미국립문서보관소(NARA) /진실화해위원회 제공.

조사결과에 따르면 유엔군은 우세한 공군력을 사용하여 북한군의 남하를 저지하려고 기계와 안강 부근에서 지연전을 펼치고 있었으며, 미 제5공군은 경주지역의 담당 지상군인 미 육군과 한국군을 근접 지원하는 과정에서 형산강 지류인 기계천 일대를 폭격했다. 

미 공군의 폭격은 8월14일께 피난지역인 기계천에 폭격과 기총소사가 이뤄졌으며, 미 공군은 이 지역의 사람들이 피난민임을 인지하고도 공격한 것으로 미공군 문서에 의해 드러났다. 

기계․안강지역에 대한 폭격은 당시 구성된 전술항공통제체계에 의해 전술항공통제센터(Tactical Air Control Center)와 전술항공통제반(Tactical Air Control Party)의 폭격지시와 통제 하에 미 제5공군 제18폭격단 제39폭격편대 소속 공군기(F-51)에 의해 실행된 것으로 나타났다.

신청인들은 진실화해위원회 조사과정에서 “사건 발생지역이 당시 전투가 치열했던 기계와 안강의 인근지역이기는 했지만, 폭격 당시에는 피난지역에는 인민군이 존재하지 않았다”고 일관되게 진술했다.   

또, “폭격 당일 오전에 정찰기 1대가 와서 피난지역을 2바퀴 정도 둘러보고 갔으며, 점심께에는  은색 전폭기 3~5대가 남쪽에서 날아와 1대씩 번갈아 가며 20분 정도 폭격과 기총소사를 했다”라고 진술했다. 

사건 당시, 경주 안계리 마을 사람들은 북한군이 밀고 내려온다는 소식을 접하고, 폭격 전 가족들과 함께 군인의 눈에 잘 띄는 곳으로 피난을 가야 피해가 없다는 마을어른들의 말에 따라 마을 인근의 기계천으로 피난을 간 것으로 조사됐다. 

희생자들은 가족단위로 희생된 경우가 많았으며, 노인을 비롯해 여성, 어린이 등이 희생됐다. 진실화해위원회는 사건 당시 아무런 사전 경고 없이 기계천을 대상으로 폭격이 이루어졌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진실화해위원회는 이 사건의 발생지역이 교전지역과는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있었는데도, 인민군의 위장침투를 의심하여 무리지어 있는 민간인도 폭격 목표물에 포함시킴으로써 희생이 발생한 것으로 판단했다.  

또한, 군인의 눈에 잘 띄도록 일부러 노출된 장소에 피난해 있었던 다수의 민간인에 대해 사전 경고나 확인 등의 조치나 민간인과 적을 구별할 의무를 무시하고 폭격한 것은 국제인도법 및 당시 미군교범을 위반한 것이라고 밝혔다. 

이번 집단희생사건 역시 신청인들을 중심으로 조사한 결과로 일가족이 몰살됐거나 유족이 타 지역으로 이주한 경우, 진실규명을 신청하지 않은 경우까지 포함한다면, 신원이 확인된 35명은 최소한의 희생자 수로 판단되고 있다. 생존자 중 당시 폭격으로 인해 부상을 당한 민간인은 7명으로 확인되고 있다.  

진실화해위원회는 국가에 대해 미군의 폭격으로 희생당한 피해자를 구제하기 위해 미국정부와 협의할 것과 위령사업의 지원, 유족의 심리치료 지원 등을 권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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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lux99.tistory.com BlogIcon 기브코리아 2009.09.25 18:0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썩을 넘들

    잘 보고 갑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근현대사에 대한 관심이 많습니다. 드러나지 않은 사실을 알게 되면서 오늘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을 북파되어 임무를 수행하다 귀환한 북파공작원이 오히려 이중간첩으로 몰려 사형을 당한 사실을 진실화해위원회가 밝혔습니다. 특수임무수행자 단체에 계신 분들이 여전히 반공논리에 갖혀 있는 것은 안타깝기도 하지만, 한 개인의 억울한 사연이 밝혀진 것은 무척이나 다행한 일입니다.

진실화해위원회 조사결과를 보니  ‘특수임무수행자 심문규 이중간첩사건’은 북파됐던 특수임무수행자가 귀환한 뒤 자수했으나, 육군첩보부대(HID)는 이를 위장 자수한 것으로 판단하고 처형했던 것이라고 합니다. ‘간첩심문규 심문경위’에 들어 있는 위장자수의 근거들은 북파공작원 심문규를 위장자수로 몰기위해 조작되었다는 것이지요. 

자료사진 : 이경재의원실


북파공작원인 심문규는 1955년 9월 동해안을 통해 북파된 뒤 임무를 수행하던 중 북한군에 체포되어 약 1년 7개월 동안 북한에 머물면서 대남간첩교육을 받았던 인물입니다. 그는 1957년 10월 남한 육군첩보부대 기밀탐지 및 요인암살 등의 지령을 받고 다시 남하했지만 서울에 도착하자마자 육군첩보부대에 자수를 했다는군요. 

그런데 육군첩보부대는 심문규를 563일 동안 불법구금한 상태에서 심문 또는 북에 대한 정보입수, 남파간첩 검거 등에 활용한 후 육군특무부대에 사건을 이관했다고 합니다.  민간인에 대한 수사권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육군특무부대 또한 심문규에 대한 재판권이 일반법원에 있음을 알고 있었지만 군사기밀 등의 이유를 들어 사건을 군검찰에 송치했고, 군검찰도 이를 묵인한 채 중앙고등군법회의에 기소해 결국 1961년 5월에 대구교도소에서 처형했다고 합니다.

진실화해위원회는, 처형의 근거가 된 ‘간첩심문규 심문경위’는 ‘위장 자수한 것’을 드러낼 목적으로 사실과 다르게 만들어 진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심문규가 남파 당시 간첩할 의사가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심문규의 주관적인 의사를 확인할 방법이 없는 가운데,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증거도 역시 전혀 없었다고 합니다. 남북대립의 시기에 억울하게 희생된 것이죠.

진실화해위원회의 맨트를 빌리자면 당시 첩보부대 장교 등은 “첩보부대는 북파공작원이 공작활동 중 체포되어 간첩교육을 받고 내려온 경우, 즉시 자수하였더라도 특무부대 등 수사기관에 넘기지 않고 북한에 대한 정보 입수, 간첩검거, 간첩선 검거 등에 2년 정도 활용한 후 다시 북파를 시켰다”고 진술했다고 합니다. 이를 거절하는 경우 제거하거나 군사재판에 회부해 사형시키기도 했다는 것입니다.  

결국 심문규씨와 같은 북파공작원은 냉전의 시기에 남북대결 구도에 의해 인권은 커녕 국가의 보호조차도 받지 못한 채 도구로서만 활용되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자료사진 : 이경재의원실


자료사진 : 이경재의원실


이해가 안되는 것은 이 사건에 대해 국방부는 심문규의 사형이 집행된 사실 조차 가족에게 통보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현재까지도 가족에게 시신을 인도하지 않고 있고 가족들도 2006년 4월에야 심문규씨가 사망한 사실을 확인했다고 합니다.  

하나가 더 있군요. 육군첩보부대는 북파한 심문규가 귀대하지 않자, 부대에서 숙식하면서초등학교에 다니던 당시 8세인 아들에게 아버지를 만나게 해 준다며 제식훈련, 산악훈련을 비롯한 강도 높은 군사훈련을 시켰다고 합니다. 

남북대결의 시대, 반공논리에 사로잡혀 인권이 무시당했던 현실을 다시 접하면서 안타까움이 입니다. 그 안에는 북파공작원들도 있고, 국민보도연맹 희생자들이 있으며, 부역혐의로 몰려 당시 남측과 북측에 의해 희생된 민간인들이 있습니다. 역사가 반복되지 말아야 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습니다.  



Posted by 구자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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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blog.jayuin.co.kr BlogIcon 자유인 2009.09.15 11:2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냉전시대의 비극입니다.
    저런 분들도 억울하지만 국군 포로 송환이나 생사여부에 대한 목소리가 우선은 더 커야 한다고 봐요//
    저도 특수부대에서 좀 오랜기간 근무를 했습니다만, 민간에서 들이대는 이런 글 따위(?) 신경안씁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더 많은 사람들의 안위겠지요?
    한생각 돌리세요.^^

    • 미친 ㅡㅡ 2010.01.01 16:5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한생각 돌리라고?? >>이런 글 따위(?) 신경안씁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더 많은 사람들의 안위겠지요?<<

      어이가없네요. 뭘한생각 돌려요?? 님아버님께서

      북파공작원이시라면 이런소리 할수있나요?

      남일이라고 진짜 함부로 말하네 뭐이도저도 아무말도

      못하고 찍박아져만있으실거면 그냥 가만히있으세요

      하는것도없으면서 괜히 무게잡으시네

  2. Favicon of http://blog.daum.net/mylovemay BlogIcon 실비단안개 2009.09.15 13:3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 읽었습니다.
    도구일 뿐이었군요.

    훈련을 받은 아들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 Favicon of http://go.idomin.com BlogIcon 파비 2009.09.15 14:1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제가 북파공작원들이랑 해수욕장 백사장에서 축구를 해본 경험이 있는데요. 3년 전이네요. 한 세시간 찼나? 환갑 넘은 아저씨가 20대 애들도 못 따라가겠더라니까요. 발목까지 푹푹 빠지는 곳에서. 확실히 대단하긴 하더군요. 술이 들어가니까 울더군요. 너무 순수하고 착해 보였지요. 종로거리에서 가스통 차고 시위하던 모습과는 딴판이더구먼요. 이중적인 모습이지만, 이 또한 역사의 아픔이죠. 저는 사실 그분들이 오리지날인지는 모르지만, 그렇다고 하니까 그런 줄 아는 정도에요.

  3. Favicon of http://hotthink.net BlogIcon 구르다 2009.09.15 14:1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실미도 말고 또하나의 영화 소재로도 가능한 비운의 역사입니다..

  4. 머루 2009.09.16 08:4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러나 이사람의 해방이전 약력은 일본군 자원입대에 만주 관동군 소속 첩보활동이 업무였네요...독립군 때려잡던...

  5. 심우영 2009.09.23 00:5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안녕 하세요
    저는 실제 심문규씨의 손녀 입니다.
    여러분들이 들어도 이렇게 가슴이 찡하고 아픈데
    가족인 저희는 얼마나 아팠을까요. 솔직히 예전에는 제가 어렸을때
    북파공작원이라는 단어 자체도 몰랐습니다.
    근데 이제 점차 한두살 먹으면서 알아가게 되었습니다.
    저희 할아버지께서는 정말 억울하게 돌아 가셨습니다....
    이 일을 밝혀 내기 위해서는 여러분들이 필요 합니다...

  6. 심한운 2009.10.02 15:2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선생님 착하고 좋은일 하지 마세요 국가는 돕지를 않읍니다

    바로이사실에 당사자인 심문규씨에 아들 심한운 입니다 옛날에 남대문 문지방 나무에 대한 경언에 숫자가 우세한쪽이 직접가서 경험하고 확인한 사람을 병신 만드는것 거짓말 쟁이로 만드는건 시간문제다 본인이 못하면 다른쪽도 못하고 본인상상이 부정이면 상대들도 그려너니 하고 못밖는건 삼가해야 할것이다 위제목에 말은 내가 양부모님 양부친 진동식 양모친 서삼순 이분들을 알게된 시작은 1971년 3월4일 나는 나에딸 한식구를 얻게되어 너무기뻐 알리기는 알려야 하는 데 자랑할 만한데가 없어다 그럴수록 어릴때 헤어진 남동생이 얼나 좋와할까 하는 생각에 나는 늦게라도 찿아서 보여주고 싶어 이곳저곳 귀동냥을하며 춘천 샘밭까지 확인 했지만 헛탕이었다 할수없이 삶이라는 벽을 넘기위해 도중하차를 하고 서울 상도동 귀가 그후 1973년 예상치도않은데서 내동생에 소식을 전해듣게되다 동기는 나와같은 양화일을 하는 아현동친구가 야니동생 양고모 아들이 내친군데 니동생 양부모가 너를 찿아 다닌다는 데 만나보라는 말을 듣고 꿈인지 생시인지 정신이 멍멍했다 항상 술좌석이나 외로울 때면 떠들어댓던 과거사가 메아리쳐 돌아온것이다 나는 불야불야 준비를 하고 마장동 시외뻐쓰 터미널에 내려 화천행을 타고 내동생 모습에 상상을 떠올리며 화천에 도착해 진동식 존암을 대며 찿았다 바닥이 좁아 찿기가 쉬웠다 길가에 있는 주막에서 친구분과 약주를 하시던 양부친이 내동생 이름을 대며 형댑니다 그러자 부친께서 형제라 닮은데가 많군 하시며 엄마한테 가자 하시며 앞서안내 하기에 동생을 만난다는 생각으로 꽉찬 나는 골목어귀로 들어서는 양부친을 따라 들어서니 헌 함석 싸리문으로 좁은골목 안쪽집을 향해서 여보 효철이 형왔어 잠시후 왠노인이 맨발로 뛰어나오며 이놈아 어디같다가 인제와 하며 끌어않고 울어댓다 나는 엄마 아버지란 단어가 생소하다 어느정도우시고나서 양부친에게 물어본다 누구냐고 부친은 효철이 형이야 그래 들어가자 하시며끈다 방에들어가 조심스레 동생 어디가냐고 물어봤다 그소리가 나오자 두분은 대성통곡을 하며 울기 시작했다 나는 갑자기 닥쳐온 순간을 감지를 못하고 있을 때 양모친께서 우리둘만 나기고 가버렸다 하며울기에 나는 무었을 알아찿리고 친부모를 찿아 집으 나간줄 알았다 그러나 그것과는 정반대 였다 얼마전에 병원에서 수술하고 6달만에 죽었다고한다 기대했던 내심정은 산산이 흐트려져 증발했다 그런인현으로 나는 두분을 동생대신 모셔야만되다 그러던 19년전 양부친께서 타게하셨다 나는 상주로써역활을 하고 돌아오려는데 양모친은 아범아 이집을 아범앞으로 이전했으면하신다 그리고 나에호적도 당신 앞으로 옮겨으면하신다 나는 조심스레 거절했다 섭섭하신것같다 나는 심시가문에 장손이기때문이다 그후 지금을로부터 10년전 양모님도 타게하셨다 이웃에서 집을 비워놓지말고 조치하라는 성화다 나는 집을 수리하여 세를 놓고 동네분들에게 사실을 말씀드렸다 사실은 친아들이 아니라고 죽은 동생도 양자로 왔노라고 사람들은 수근거린다 집나가던 아들이 돌아 왓다고하여 정말인줄 알아았는데 그후 주위분들에 그집을 상속받기위해 화천에서 20여분 본인이 살고있는 남양주에서 20여분 증인을 받고 내동생과 헤여진 사연 야부모니을 모시게된 게기를 다음과같이 올려다[ 1955년 나는 북파공작원 교육대장으로 가셔서 소식이없던 아버지를 기다리다 어머니는 큰외삼촌에게 식량구걸을 갔다가 노여워하시는 외삼촌에 꾸지람을 듣고 약잡수고 돌아가시어 나는 아버지를 만나기위해 강원도 고성 초도리 김일성별자아래 36지구대 소속 65지대에서 아버지를 기다리던중 아버지가 오시지 않자 아버지 에게 데려가준다며 북파교육을 받았다는 이야기와 그리고 65지대를 어렵게 빠져나오게된이야기 지금은 현집에서 같이지내지만 양모친은 당신집에서 제사를 지내기 원하셔서 명절이나 추석때는 우리부모님 제사를 모시고 다시화천으로 가서 제사를 모셨던 사실을 적어올다 얼마후 출두날짜에 법원에 도착하니 판사님은 일어서 어서오세요 하시면서 참고생많이 하셨네요 하시며 사망신고 할때에 신고자이름을 대시며 이사람은 누구냐고 묻기에 양어머니 친정조카라고 하자 그러면 이사람 주민 등록을보내 주실수 있었요 네 하고 조카에게 연락을 하여 주민등록을 제출한후 얼마후 출두 시간마춰 출두한바 판사님 말씀 조카가있었서 상속이 안됩니다 그렇읍니까 알겠읍니다 돌아서 나왔다 변호사가 뒤를 따라나오며 선생님 앞으로 착하고 좋은일 하지마세요 국가는 돕지를 않읍니다 나는 이글을 쓰면서 분노를 수없이 삼킨다 우리아버지는 일본군에 가고싶어서 입대한것이 아니다 그당시 담임선생이 비행기조종사모집을 부추기며 감언이설로 입대시킨것이다 17살때 앞서 자기식대로에 자대로 남에 영혼을 흔들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들에 아버지는 조국을위해 무었을 했는가 아니면 조국발전을 위해 부동산 투기를 일삼아왔는가 뒤를 돌아보고 타에 일에 비방하라

  7. WSHKKR 2010.01.23 20:1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육군첩보부대님 이글을 읽고 아직도 늟지 않앗으니 서로 힘을 합쳐 전에 간첩몰린 억울하게 돌아가신분들 위해서 전에 교관 및 청와대 특별명령자 색출하여 끝까지 추적 하셔서 일가족들 구석구섯 파해쳐서 잔인하게 죽여야 합니다 자녀들까지 잔인하게 죽여야지요 얼마든지 맘만 먹으면 쥐도 새도 없이 죽여야만 억울하게 돌아가신분들 위해서 한을 풀어 드려야지요

  8. Favicon of http://kij1955@chol.com BlogIcon yys550521 2010.08.27 12:5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해방.육이오.그러나 현실이 다급 합니다.성경의 구약성서 신약성서 현 21세기 현제현실 중요한 시대적 정신 각자 고취 하여야 한다는 세계적 추세입니다. 구약의 생명 .그리고 아담과하와 에덴의 동쪽 지금 어린 청소녀 성 문제 잘못된 어른들의 성관리로 인하여 잘못된 사회 구성 그럼 지금 우리의 어린자식들 어떻게 키우며 앞으로 한민족 사회 는 어디로 간다는 메체 방송보도 학생들의 보도는 하면서 지나간 전쟁의 상처 그야물론 경험으로 간직하시고 대대적인 홍보와보도 는 어른들의 바른 도덕성.윤리 를 바로 잡아야 하여야 할것이다는 다수분들의 생각 이라 하여도 후회는 안하리라 할것입니다.그럼 21세기 (신약) 말씀 으로 살것이라.함은 이시대적은 듣기평가 시대라 하여도 부족 하지아느리라. 잘못된 기성세대들의 관행 속은 검정색 겉은 하얀색 요즈음 어린아이들 모두 하나님의 자녀로 되어다함.부모의 디엔에이가 안이라 홍보메체 에서 보고 듣고 바로 배운다.예 xx라고 길거리나 가정에서 한다면 바로미터 입니다.좋은 환경 이란 행동과 도적적 윤리에서 나온다.겉은 하얀 천사이고 속은 저승사자 라면 이사회 비젼과 희방은 ...이글접하시는 여러분 이제 생각을 긍정적이고 마음에 담아 베이비 처럼 서로 주고 받는다면 종교.정치.경제가 새로운 옷으로 단장 하리라 좋은 생각으로 중추절 잘보내시고 안전한 생활 되시길 진심으로 바랍니다.m 의 가오가 각가정 마다.사회 나라 지구촌 ...대전 대덕구 법2동 삼성 전자 에이에스 에서 尹汝心

  9. BlogIcon 남현 2016.01.05 10:5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진은 전부 UDU 사진이네...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위원장 안병욱, 이하 진실화해위)는 전남 화순지역에서 한국전쟁기 인민군과 지방좌익, 그리고 국군과 경찰에 의해 308명의 민간인이 집단학살된 사실을 확인했다고 18일 밝혔다.

이번 진실규명결정은 ‘화순지역 빨치산 등 적대세력에 의한 희생사건’, ‘화순지역 경찰에 의한 민간인희생 사건’,  ‘전남지역(화순․담양․장성․영광) 11사단 사건’이다. 

진실화해위의 조사결과 이들 중 인민군에 의한 희생자는 143명, 그리고 11사단 국군의 의해 103명, 경찰에 의한 희생자는 62명으로 나타났다. 이 같은 수치는 사건이 발생한지 60여 년이 지난 뒤, 진실화해위원회에 신청된 사건에 대한 조사 통해 확인된 최소한의 결과로  일가족이 몰살됐거나 타 지역으로 이주, 진실규명 신청을 하지 않은 경우까지 포함하면 실제 희생자는 훨씬 많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화순지역을 사례로 조사한 결과, 좌우익세력의 구분 없이 만삭의 임산부를 비롯해 젖먹이 유아와 노인, 장애인 등 지역주민들을 무차별적이고 잔인하게 살해한 것으로 드러났다. 또, 일가족이 한꺼번에 희생되거나 집 안의 노인과 장애인들이 불에 타 죽는 등 전쟁의 잔혹성도 그대로 나타났다.

진실화해위는 “전남 화순지역은 한국전쟁기에 지역 주민들이 점령세력에 따라 번갈아 희생된 사례는 당시 전국적으로 발생한 현상이었다”며 “좌우대립이 심하지 않았던 화순지역에서도 수많은 민간인 희생이 발생했는데, 이는 전쟁으로 인해 이성을 잃은 잔인한 현실을 보여준 전형적인 사례”라고 했다.

자료사진


지방좌익과 인민군에 의한 학살

진실화해위원회 조사결과에 따르면 화순지역에서는 1950년 7월께 인민군이 점령한 이후, 지방좌익에 의해 1명의 행방불명사건이 발생했다. 이어 인민군 퇴각기인 9월 말에는 광주형무소와 화순내무서에 갇힌 12명의 경찰과 대한청년단원, 공직자 등이 정치보위부원과 자위대원, 인민군에 의해 화순저수지에서 희생됐다.

또한 1950년 10월부터 1952년 4월 사이에는 빨치산과 군경토벌대간의 교전이 벌어지면서 화순 지역주민들은 군경에 협조했다거나, 빨치산에 협조했다는 이유로 좌우세력에 의해 번갈아 희생되었다. 그 숫자는 295명으로 밝혀지고 있다.

화순지역에서의 빨치산에 의한 희생자들은 1950년 1월 초부터 발생했다. 군경 가족이나 대한청년단원 등 우익인사들이 그 대상이었다. 또 공무원가족이라는 이유로 10살 미만의 어린이와 여성 등 일가족 19명이 살해되었으며, 경찰의 지시로 전선과 전주를 지키던 주민들도 빨치산에 의해 살해되기도 했다.

자료사진



국군과 경찰에 의한 학살

경찰에 의한 화순지역 희생자는 1950년 10월 중순 경부터 발생했다. 당시 민간인들은 무차별로 총을 쏘며 마을로 진입하는 경찰을 피해 도망가다 현장에서 사살되거나, 지서가 피습을 받았다는 이유로 마을 청년 10여 명이 본보기로 사살됐다. 또한 야간에 빨치산에 의해 전주가 잘렸다는 이유로 경비를 맡은 주민을 경찰이 사살하기도 했다.

이 밖에 담양, 장성, 영광지역에서는 1950년 10월 말부터 국군 11사단에 의해 수복작전이 벌어지면서 학살이 일어났다.  이들 지역에서 국군에 의한 희생자는 담양 94명, 장성 67명, 영광․함평에서 27명으로 확인되고 있다.

당시 국군 11사단은 마을에 진입해 가옥에 불을 지르거나, 주민들을 끌어내 부역혐의자 가족과 청장년 등을 사살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은 지휘관의 명령과 사전교육에 따라 작전지역 주민들을 적으로 간주해 사살한 것으로 판단되고 있다. 또, 부역자들을 색출하기 위해 인민군복으로 위장한 채 마을에 진주하기도 했다.

진실화해위원회는 각 지역의 민간인 희생자들은 가해주체가 인민군이든, 국군이든, 경찰이든 간에 전쟁 참극에 의한 희생자라는 점에서 동일하다며, 국가에 대해서 이들 희생자들을 위한 사과와 더불어 합동으로 위령하도록 하고 참상을 널리 알리도록 권고했다.


Posted by 구자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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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2kim.idomin.com BlogIcon 2009.08.19 18:0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군군'이라고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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