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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진실화해위 영문책자 배포중단, '불편한 진실' 담겨서?

진실화해위원회가 진보성향의 안병욱 전 위원장 시절에 발간하고 배포했던 영문책자의 배포를 중단하자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또 진실화해위가 배포 중단 사유로 '영문번역상의 오류'를 든 데 대해서도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진실화해위 이영조 위원장은 지난 5일 '영어번역상 오류가 많다'는 이유로 안 전 위원장 시절 발간, 배포된 ‘truth and reconciliation’ (진실과 화해) 제하의 영문책자의 배포를 중단하라고 지시했다. 이 전 위원장은 지난해 12월 1일 취임했으며 보수성향 인사로 평가받고 있다.

 

이 영문책자는 지난해 3월 발간됐으며 1,000부를 초판 인쇄해 국내외 관련기관에 배포한 후, 11월께 1,000부를 다시 인쇄했다. 하지만 이 위원장의 배포중단 지시로 현재 800여부가 남아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배포중단, '불편한 내용' 담겨서?



‘truth and reconciliation’ (진실과 화해) 제하의 영문책자. 진실화해위원회 이영조 위원장은 영문번역 오기를 들어 배포 중단 지시를 내렸다.ⓒ 진실화해위원회

이 영문책자에는 안 전 위원장이 서술한 'Historical Background of Korea's Past Settlement'('한국 과거사 해결의 역사적 배경')란 글이 담겨있다.

 

안 전 위원장은 이 글을 통해 “미국과 이승만 정부는 한국 민중으로부터 민족 반역자라고 비난받아 처벌당할 상황에 놓여 있던 친일파들을 재활용... (후략)”, “박정희 군부세력은 (중략) 일본군국주의의 극우사상 그리고 미국군대로부터 고도의 통제기술을 전수 받아 극우 파시스트 체제를 한국사회에 접목시켰다”고 기술하고 있다.

 

또한 “한국정부는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이른바 '폭동을 일으키고 적을 도울 것으로 의심되는' 사람들을 대대적으로 학살했다. (중략) 학살은 대부분 한국군, 경찰, 우익테러단체에 의해 자행됐다. (중략) 당시 학살의 주도자들은 지배 권력의 중심에서 한국사회를 사실상 좌우해 왔으며 지난 50년간 한국 현대사를 학살자의 관점에서 정당화해 왔다”고 서술했다.

 

영문책자 배포중단에 대해 반발이 일자 진실화해위원회는 6일 보도자료를 통해 “영어 번역상의 오류가 너무나 많다는 지적이 발행단계부터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어 배포를 중단하게 됐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이에 대해 번역자들은 명예를 심각하게 훼손당했다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또 일각에서는 진실화해위원회의 해명에도 불구하고 진보성향 안 전 위원장의 글이 보수성향의 이 위원장의 심기를 불편하게 한 것이 배포를 중단하게 된 직접적인 이유가 아니냐는 의혹이 이어지고 있다.

 

또한 이 위원장이 안 전 위원장 시절엔 상임위원을 지내면서도 아무런 문제제기를 하지 않다가, 자신이 위원장이 된 후 '잘못된 번역'을 이유로 배포 중단을 지시한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그는 당시 '좌익에 의한 학살과 민족독립운동' 상임위를 담당하면서 이 분야에 대해 사건조사와 지휘, 내용검토와 결재 권한을 갖는 총체적인 책임자 지위에 있었다.

 

이 같은 논란에 대해 진실화해위 홍보담당관실은 6일 정정보도문을 낸 것이 공식입장이라며 더 이상의 언급을 피했다. 또 안 전 위원장의 글에 대해 동의하는지 여부도 홍보담당관실에서 언급할 수 있는 내용이 아니라고 밝혔다.

 

번역자들, 명예훼손으로 소송 검토

 

진실화해위가 배포 중단의 이유를 '번역'의 문제로 들자 당시 번역을 담당했던 이들은 이 위원장을 상대로 소송을 검토하고 있다.

 

당시 번역을 담당했던 A씨는 “이영조 위원장이 안병욱 전 위원장 시절에 상임위원을 역임하면서 내용과 번역에 대해서 충분히 검토할 시간이 있었을 것”이라며 “당시 결재 등 총체적인 책임을 가졌던 이가 왜 지금에 와서 문제를 삼는지 이해를 할 수 없다”고 했다.

 

또 다른 번역자인 C씨는 "지금 봐도 잘된 번역"이라고 '번역상 오류'라는 주장을 일축했다. 그는 자신이 2009년 10월 진실화해위 개최 국제심포지엄에서 통번역을 맡았었다고 강조하면서 번역이 잘못됐다면 국제행사 통번역을 다시 맡을 수 있었겠냐고 반박했다.

 

이들은 진실화해위가 영문책자 배포를 중단한 이유가 번역상의 오류라면 구체적인 자료를 공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영문책자 배포중단은 사실상 금서조치에 해당하는 것으로 이는 "언론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를 진실화해위가 스스로 어기고 있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끝으로 이들은 번역자의 한사람으로서 “과거 억울한 사람의 누명을 풀어주고 해결해 주어야 할 진실화해위원회가 진실을 감추고 오히려 거짓과 허위로 억울한 사람을 만들어 내고 있다”고 호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