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만 민간인학살 사건을 소재로 한 다큐 영화 ‘해원’과 ‘레드 툼’을 비메오 온디맨드 유료서비스로 상영합니다.


영화를 통해 “대한민국이라는 이름에 가린 학살의 역사”, “아직도 과거가 되지 못한 과거”를 만나시게 될 것입니다. 


비메오에서 다큐멘터리 장르를 선택하시고 영화제목, 또는 ‘구자환’을 검색하시면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해원-영문] https://vimeo.com/ondemand/148951 


[레드 툼-한글] https://vimeo.com/ondemand/gj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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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해원] 첫 주차 개봉관 목록입니다.  

해방이후 우리나라에서 발생했던 민간인학살을 소재로 한 영화 <해원>은 오는 5월 10일 전국 극장에서 동시 개봉됩니다.

 

■서울:CGV 압구정/CGV 명동역/인디스페이스/롯데시네마 월드타워 
/롯데시네마 청량리/아리랑시네센터/필름포름 /아트홀 가얏고을(17일 개봉) 
■인천:추억극장 미림/영화공간 주안/메가박스 검단/메가박스 인천논현
■경기 파주:헤이리시네마/메가박스 파주금촌/메가박스 시흥배곧
■경기 고양:고양 영상미디어센터(예정)
■강원도 강릉:강릉독립예술극장 신영
■대전:대전아트시네마/롯데시네마 대전둔산
■충남 천안:인디플러스 천안/메가븍스 천안
■광주:광주독립영화관 기프트/광주극장 (17일 개봉)
■전북 전주:메가박스 전주/전주디지털독립영화관(16일 개봉) 
■전남 목포:목포 시네마라운지 MM 
■대구:오오극장
■경북 포항:인디플러스 포항(17일 개봉)
■경북 안동:안동중앙시네마
■부산:영화의 전당/CGV 서면/메가박스 서면
■울산:메가박스 울산
■경남 창원:시네아트 리좀/CGV 창원/메가박스 창원
■제주:메가박스 제주


[해원] 다음 영화정보 보기  

   

■[해원] 네이버 영화정보 보기




Posted by 구자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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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원 예고편 from 구자환 on Vimeo.


영화 <해원>을 오는 510일 전국 극장에서 동시개봉 합니다.

 

<해원>은 해방이후부터 발생한 대한민국 민간인학살의 역사를 소재로 한 다큐멘터리입니다. 영화는 대구 10월항쟁부터 제주 4.3사건, 여순사건, 한국전쟁기로 이어지는 과정 속에서 벌어진 학살을 소개합니다. 그 과정을 통해 100만 명 이상의 민간인이 어떻게 죽임을 당했는지, 왜 죽어야 했는지, 그 주체가 누구인지 드러냅니다.

 

영화소개

-KBS1 : 지역 예술의 힘... 경남독립영화제 관심


-민중의소리 [리뷰]‘대한민국이란 이름에 가린 학살의 역사, 영화 해원


-경남도민일보 "부끄러운 학살의 역사, 다큐로 정확하게 알리고 싶어"


바이오그래피

성 명 : 구 자 환

거 주 지 : 대한민국 경남 창원시

소 속 : ()한국독립영화협회 다큐멘터리 분과 /

직 업 : 기자 / 영화감독

 

[수상경력]

2016 3회 들꽃영화상 다큐멘터리 신인감독상

2013 39회 서울독립영화제 우수작품상

 

필모그래피

2017: 다큐 <해원> - 2017년 서울독립영화제 특별초청

2013: 다큐 <레드 툼>

- 2013 서울 독립영화제 우수작품상

- 2014 무주산골영화제 경쟁부문 후보

- 2014 19회 인디포럼 초청

- 2014 19회 서울인권영화제 초청

- 2014 14회 인디다큐페스티발 초청

2007: 다큐 <회색도시>- 2007년 서울독립영화제 경쟁부분 본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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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 영화 <레드툼>은 비메오에서 볼 수 있습니다.

 

그동안 유튜브에 올렸던 <레드툼>이 삭제되어서 비메오 영화서비스로 유료전환합니다.

아래는 비메오 링크 주소입니다.

 

영문자막 https://vimeo.com/ondemand/redtomb2

한글자막 https://vimeo.com/ondemand/gjh

 

줄거리 (Synopsis)

 

해방이후부터 53년 휴전을 전후한 기간 동안에 100만 명 이상의 민간인이 희생되었다. 그 속에는 지방좌익과 우익의 보복학살도 자행되었지만, 많은 피해자들은 남한의 군경, 우익단체, 미군의 폭격에 의해 학살을 당했다. 이 가운데 한국전쟁 초기 예비검속 차원에서 구금당하고 학살을 당한 국민보도연맹원이 있다.

 

전국적으로 23~45만 명으로 추산되고 있는 이들은 대다수가 농민이었고, 정치이념과 관계없는 사람이었다. 이들은 국가가 만든 계몽단체에 가입했다는 이유만으로 전쟁과는 직접적인 상관없이 국가의 이념적 잣대로 인해 재판조차 받지 못하고 무고하게 희생된 이들이다.

 

국민보도연맹은 해방 후 1948년 이승만 정권이 정권유지를 위해 고안해낸 좌익 포섭단체였다. 조직결정의 대외적인 명목은 개선의 여지가 있는 좌익세력에게 전향의 기회를 주겠다.”는 것이었고, 조직의 이름도 보호하여 지도한다.”는 뜻인 보도연맹으로 했다.

 

민간단체 성격이었던 국민보도연맹은 1949년 각 지역에서 지부가 구성되면서 관변단체로 변하게 된다. 보도연맹원의 구성은 좌익 활동한 사람뿐만 아니라 공산당으로 몰릴만한 여지가 있는 많은 사람들이 국민보도연맹의 가입대상이었다. 그러나 각 지방행정구역 단위당 할당제를 실시함으로써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의사에 관계없이 보도연맹에 가입하게 된다.

 

보도연맹 학살은 한국전쟁 개전 초기인 19507~8월에 걸쳐 북한군이 점령하지 않은 비전투지역에서 이뤄졌다. 이들은 한국전쟁이 발발하면서 예비검속자로 몰리게 된다. 적을 이롭게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 이승만 정권은 이들을 모아 놓고 전국 각 지역 계곡에서 무차별 학살하거나 바다에 수장을 시키는 범죄를 저질렀다. 학살 주체는 당시 이승만 전 대통령의 친위대였던 특무대(CIC)와 헌병이었으며, 이 과정에서 경찰과 우익단체가 보조적인 역할을 담당했다는 점에서 일관된 명령체계에 의해 자행된 조직적인 학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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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이하 진실화해위원회, 위원장 이영조)는 충남지역 민간인 희생사건과 경기 북부지역 적대세력에 의한 피해사건에 대해 진실규명했다.

진실화해위원회는 31일 보도자료를 통해 충남지역 민간인 희생사건은 한국전쟁 중인 1950년 9월28일 수복 후부터 1951년 1․4후퇴 무렵까지 충남 금산군 등 7개 지역 163명 이상의 주민들이 부역혐의가 있다는 이유 등으로 국군과 경찰, 치안대 등에 의해 불법적으로 희생됐다고 밝혔다.


진실화해위원회는 이 희생사건에 대해 금산경찰서의「처형자 명단」,「사실조사서」및 부리지서의「부역자 명부」,「사살자 명부」등의 문헌자료 검토와 신청인 및 당시 경찰이었던  참고인들에 대한 진술조사, 사건 현장조사 등을 통해 사건의 실재여부와 희생 규모를 조사했다고 밝혔다.


진실화해위에 따르면 충남 금산군의 경우, 금산읍 비비미재와 부리면 부리지서의 지하벙커, 어재리 형석굴 등에서 희생됐다. 논산군은 두마지서 천변, 보령군은 남포면 이어니재, 부여군은 부여경찰서, 연기군은 조치원여자중학교 뒤편, 천안군은 삼은리 저수지 등지에서 희생됐다. 

진실화해위는 이 사건이 전쟁 상황에서 발생하였다고 하더라도, 국가기관인 경찰과 국군이 단지 부역혐의만으로 민간인들을 적법절차 없이 살해한 것은 인도주의에 반한 불법행위였다고 밝혔다.

진실화해위원회는 국가에 대해 희생자 유족들에게 사과하고 명예회복을 위한 적절한 조치를 취할 것과 위령사업 지원, 가족관계등록부 정정, 역사기록 정정 및 수정, 평화인권 교육 실시 등을 권고했다.

이와함께 경기 북부지역 적대세력에 의한 피해사건도 진실규명됐다.

경기 북부지역 적대세력에 의한 피해사건은 1950년 7월부터 10월까지 경기도 가평군 등 5개 지역 주민 22명이 공무원, 대한청년단원 등 우익활동을 하였거나 그 가족이라는 이유로 희생당한 것으로 알려진 사건이다.

진실화해위는 이 피해사건은 인민군 점령기에서 퇴각기에 걸쳐 경기도 가평군, 포천군, 양주군, 파주군, 고양군 지역의 주민 다수가 공무원과 대한청년단원 등 우익활동을 했거나 그 가족이라는 이유로 지방좌익에 의해 희생된 것이라고 밝혔다.

또, 이 사건의 가해주체는 자위대원, 내무서원 등의 지방좌익으로 밝혀졌으나 이들의 신원은 정확히 확인할 수 없었다고 밝히고 인민군이 함께 있었다는 증언도 나왔다고 말했다.

진실화해위에 따르면 이번 피해사건으로 신원이 확인된 희생자들은 22명이다. 피해자들은 대부분 성인 남성으로 분주소 및 내무서에서 희생됐다. 포천군의 경우 구읍 뒷산, 양주군은 마치고개, 파주군은 적성면 두포리 전진교 앞, 고양군은 일산내무서 뒷산 등의 특정장소에서 희생되기도 했다.

진실화해위원회는 이 피해사건은 ‘6·25사변피살자명부’등 문헌자료 검토와 신청인 및 참고인 진술조사, 사건현장조사 등을 통해 사건의 실재 여부와 희생규모를 조사했다고 밝히고,
국가에 대해 제적부 및 가족관계등록부 등 공식 문서기록 정정,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위령사업 지원, 역사기록 정정 및 수록 등을 권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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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전후 경남 함안지역 민간인 희생자를 추모하는 합동위령제가 29일 함안 문화원에서 열렸다.

진실화해위원회는 2009년 5월19일 함안지역 미국폭격사건에 대해 진실을 규명하는 한편, 같은 해 11월17일 에는 함안지역 국민보도연맹사건에 대해서 진실을 규명했다.

진실화해위원회의 조사에 따르면 함안지역은 미군폭격사건으로 최소 200여명의 민간인이 희생됐다. 또, 국민보도연맹 사건으로 450여명, 그리고 마산, 진주, 부산 형무소 재소자 희생사건으로 3417여명의 (국민보도연맹원 포함)무고한 민간인이 희생된 것으로 조사됐다. 
 

진주에서 활동하고 있는 노래패 '맥박' 추모공연.

민간인 희생자들의 영령을 모시는 고유제.


이 날 위령제는 기독교와 천주교, 원불교와 불교의 순서로 진행된 추모행사에 이어, 고유제로 희생자들의 영령을 모신 가운데 진행됐다.

이춘근 함안유족회 대표는 인사말을 통해 “따뜻한 동포애나 다정한 가족애 보다는 사상이나 정치이념에 더 큰 가치를 부여했던 혼돈의 시대에, 국가는 이데올로기의 의미조차도 모르는 이들에게 멍에를 뒤집어씌우고 집단참살 했지만, 6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가해자가 밝혀지지 않고 있다”고 조사기간 연장을 요구했다.

퇴임식을 뒤로 하고 위령제에 참여한 조영규 군수는 “좌익, 우익의 사상적 대립 속에 오욕을 뒤집어 쓴 채 희생되었던 선량한 민간인 희생자 영령 앞에 고개를 조아린다”며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명예훼복에 힘써 나가겠다”고 말했다.

이영조 진실화해위원회 위원장의 추도사는 김진원 조사국장이 대독했다. 유족들은 위원장이 공식행사에 한번도 얼굴을 내밀지 않고 있다며 불만을 나타내기도 했다.

이영조 위원장은 추모사를 통해 “이 참담한 사건을 돌이켜 보면서 비록 국가의 존립자체가 위협받는 비상한 상황이었다고는 하나 국민의 생명권이 경시되는 일은 되풀이 되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을 다지게 된다”며 “60년 전의 사건을 교훈삼아 다시는 이 같은 참상이 되풀이되지 않게 우리 모두 노력할 것을 다짐한다”고 말했다.

김태영 국방부 장관의 추모사에 이어 윤호상 전국유족회 공동대표는 “억울하게 희생당한 영령들의 시신수습과 못 다한 유해발굴이나 위령제에 대해서 이 정부는 굳게 입을 다문 채 함구하고 있다”며 “유엔과 세계 인권위원회 및 NGO와 전 세계 언론에 우리의 실정을 알려서 정부에 압력을 가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취임식을 하루 앞둔 김두관 경남지사 당선자의 격려사는 강병기 정무부지사 내정자가 대독했다.

김두관 당선자는 “국가가 나서서 민간인에게 남겨진 전쟁의 아픔을 치유하려는 노력이 부족한 점이 매우 아쉽다”며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적극 나서서 유가족의 아픔을 위로하도록 노력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위령제는 종교의식과 함께 진혼무로 희생자들의 넋을 달랬다.

민간인학살 유족들이 헌화하고 있다.


한편, 진실화해위원회는 30일 공식조사활동을 마무리한다. 참여정부시절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기본법’에 의해 2005년 12월 설립된 진실화해위원회는 2006년 4월부터 진실규명 조사를 시작했다. 
 

Posted by 구자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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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해 12월 ‘진실과 화해’「Truth and Reconciliation」라는 영문책자 배포를 중단해 논란을 일으킨 보수성향의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가 명예훼손으로 피소됐다.

이 영문책자의 번역, 감수인인 김성수씨 외 2인은 4일 서울중앙지방법원에 낸 손해배상청구소장을 통해 “명확한 번역오류가 밝혀지지 않은 상태에서 진실화해위원장이 번역오류로 인해 발간 배포를 중단했다”고 주장했다. 또, “각 언론사들을 통해 영문번역 오류로 인한 배포중단이라고 보도가 되면서 허위사실이 유포됐고, 이로 인해 영문 통․번역 업무에 손실을 입힐 정도로 큰 명예훼손을 당했다”고 강조했다. 

진실화해위원회가 발간한 ‘진실과 화해’「Truth and Reconciliation」영문책자

이들은 영문책자를 발간할 당시, 원고들이 영문번역한 후 원어민 등에게 감수의뢰를 해서  번역의 오류발생여부를 재확인 받은 바 있고, 이영조위원회장이 상임위원직으로 활동할 당시에 영문책자에 대한 검토를 마치고 최종적으로 발간하고 배포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이영조 위원장이 진실화행위원회 상임위원직을 담당하던 2008년 11월부터 2009년 2월까지 3개월간의 영문원고 검토 기간이 주어졌다며, 당시는 이 위원장이 영어오역에 대해 어떤 지적도 하지 않았다고도 했다.

이밖에 이들은 당시 이영조 상임위원이 올해 초 진실화해위원회 위원장으로 취임하자마자 영문책자의 번역오류를 이유로 들어 배포중단을 지시하면서도 어떤 부분에서 번역상의 오류가 발생되었는지 지적하지도 않았다고 주장했다. 번역오류를 해명하기 위해 진실화해위원회가 뒤늦게 영문책자 재감수를 의뢰했지만 지금까지 오류가 발생된 부분을 명확히 밝히지 않고 있다고도 했다.

소송인 겸 번역자인 김성수씨는 “자유 민주사회에서는 좌우보혁과 무관하게 생각을 자유롭게 표현 할 수 있어야 한다”며 “이번 영문책자 언론과 표현의 자유가 중시되는 자유민주사회의 원칙과 가치와도 어긋난다”고 지적했다.

또, “진실해야 할 진실화해위원회 위원장의 영문번역 오류라는 거짓해명을 밝히는 것은 한국의 국격을 높이는데 도움이 된다”며, “과거 억울한 사람의 누명을 풀어주고 해결해 주어야 할 진실위 위원장이 오히려 거짓과 허위로서 억울한 사람을 만들어 내는 것은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한편, 지난 해 3월 1,000부가 발행된 이 영문책자는 국제기구와 과거사 연구 외국학자, 주한 외국공관, 외신등 주요 기관에 배포됐고, 2009년 11월에 그 수요가 늘어남에 따라 1000부가 추가로 제작됐다. 

진실화해위원회의 소개와 조사 절차와 처리, 집단학살 장소발굴과 조사활동, 결정사건 분석, 주요 성과와 향후 과제 등의 내용을 담고 있는 이 영문책자는 한국전쟁 시기 국군의 민간인 학살 장면을 표지로 장식하고 있다.

Posted by 구자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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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당시 경주시 강동면 안계리의 기계천 일대에서 학살된 민간인들은 미 공군의 폭격으로 희생된 것으로 확인됐다. 

진실화해위원회는 한국전쟁기인 1950년 8월, 경상북도 경주시 강동면 안계리의 기계천 일대에 가해진 미군의 폭격으로 민간인 수십 여 명의 희생자가 발생하였고, 이 중 피해 신청인을 중심으로 조사한 결과 35명의 구체적 신원을 확인했다고 25일 밝혔다.

이번 진실규명에 대해서 진실화해위원회는 미국 국립문서보관소(NARA)에서 입수한 제18폭격단(18th Fighter Bomber Wing)의 제39폭격편대(39th Fighter Squadron)의『임무보고서(Mission Report)』등의 자료조사와 생존자 및 참고인에 대한 진술조사, 현장조사를 통해 사건의 실재 여부와 희생규모를 조사한 결과를 근거로 했다.  

당시 유엔군이 낙동강 전선까지 밀린 상황에서 북한군이 낙동강을 경계로 북부, 서부, 동해안으로 동시 다발적으로 침투하고 있는 상황. 

미 공군 제18폭격단 제39폭격편대의 임무보고서(Mission Report)/출처:미국립문서보관소(NARA) /진실화해위원회 제공.

조사결과에 따르면 유엔군은 우세한 공군력을 사용하여 북한군의 남하를 저지하려고 기계와 안강 부근에서 지연전을 펼치고 있었으며, 미 제5공군은 경주지역의 담당 지상군인 미 육군과 한국군을 근접 지원하는 과정에서 형산강 지류인 기계천 일대를 폭격했다. 

미 공군의 폭격은 8월14일께 피난지역인 기계천에 폭격과 기총소사가 이뤄졌으며, 미 공군은 이 지역의 사람들이 피난민임을 인지하고도 공격한 것으로 미공군 문서에 의해 드러났다. 

기계․안강지역에 대한 폭격은 당시 구성된 전술항공통제체계에 의해 전술항공통제센터(Tactical Air Control Center)와 전술항공통제반(Tactical Air Control Party)의 폭격지시와 통제 하에 미 제5공군 제18폭격단 제39폭격편대 소속 공군기(F-51)에 의해 실행된 것으로 나타났다.

신청인들은 진실화해위원회 조사과정에서 “사건 발생지역이 당시 전투가 치열했던 기계와 안강의 인근지역이기는 했지만, 폭격 당시에는 피난지역에는 인민군이 존재하지 않았다”고 일관되게 진술했다.   

또, “폭격 당일 오전에 정찰기 1대가 와서 피난지역을 2바퀴 정도 둘러보고 갔으며, 점심께에는  은색 전폭기 3~5대가 남쪽에서 날아와 1대씩 번갈아 가며 20분 정도 폭격과 기총소사를 했다”라고 진술했다. 

사건 당시, 경주 안계리 마을 사람들은 북한군이 밀고 내려온다는 소식을 접하고, 폭격 전 가족들과 함께 군인의 눈에 잘 띄는 곳으로 피난을 가야 피해가 없다는 마을어른들의 말에 따라 마을 인근의 기계천으로 피난을 간 것으로 조사됐다. 

희생자들은 가족단위로 희생된 경우가 많았으며, 노인을 비롯해 여성, 어린이 등이 희생됐다. 진실화해위원회는 사건 당시 아무런 사전 경고 없이 기계천을 대상으로 폭격이 이루어졌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진실화해위원회는 이 사건의 발생지역이 교전지역과는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있었는데도, 인민군의 위장침투를 의심하여 무리지어 있는 민간인도 폭격 목표물에 포함시킴으로써 희생이 발생한 것으로 판단했다.  

또한, 군인의 눈에 잘 띄도록 일부러 노출된 장소에 피난해 있었던 다수의 민간인에 대해 사전 경고나 확인 등의 조치나 민간인과 적을 구별할 의무를 무시하고 폭격한 것은 국제인도법 및 당시 미군교범을 위반한 것이라고 밝혔다. 

이번 집단희생사건 역시 신청인들을 중심으로 조사한 결과로 일가족이 몰살됐거나 유족이 타 지역으로 이주한 경우, 진실규명을 신청하지 않은 경우까지 포함한다면, 신원이 확인된 35명은 최소한의 희생자 수로 판단되고 있다. 생존자 중 당시 폭격으로 인해 부상을 당한 민간인은 7명으로 확인되고 있다.  

진실화해위원회는 국가에 대해 미군의 폭격으로 희생당한 피해자를 구제하기 위해 미국정부와 협의할 것과 위령사업의 지원, 유족의 심리치료 지원 등을 권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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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lux99.tistory.com BlogIcon 기브코리아 2009.09.25 18:0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썩을 넘들

    잘 보고 갑니다.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위원장 안병욱, 이하 진실화해위)는 전남 화순지역에서 한국전쟁기 인민군과 지방좌익, 그리고 국군과 경찰에 의해 308명의 민간인이 집단학살된 사실을 확인했다고 18일 밝혔다.

이번 진실규명결정은 ‘화순지역 빨치산 등 적대세력에 의한 희생사건’, ‘화순지역 경찰에 의한 민간인희생 사건’,  ‘전남지역(화순․담양․장성․영광) 11사단 사건’이다. 

진실화해위의 조사결과 이들 중 인민군에 의한 희생자는 143명, 그리고 11사단 국군의 의해 103명, 경찰에 의한 희생자는 62명으로 나타났다. 이 같은 수치는 사건이 발생한지 60여 년이 지난 뒤, 진실화해위원회에 신청된 사건에 대한 조사 통해 확인된 최소한의 결과로  일가족이 몰살됐거나 타 지역으로 이주, 진실규명 신청을 하지 않은 경우까지 포함하면 실제 희생자는 훨씬 많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화순지역을 사례로 조사한 결과, 좌우익세력의 구분 없이 만삭의 임산부를 비롯해 젖먹이 유아와 노인, 장애인 등 지역주민들을 무차별적이고 잔인하게 살해한 것으로 드러났다. 또, 일가족이 한꺼번에 희생되거나 집 안의 노인과 장애인들이 불에 타 죽는 등 전쟁의 잔혹성도 그대로 나타났다.

진실화해위는 “전남 화순지역은 한국전쟁기에 지역 주민들이 점령세력에 따라 번갈아 희생된 사례는 당시 전국적으로 발생한 현상이었다”며 “좌우대립이 심하지 않았던 화순지역에서도 수많은 민간인 희생이 발생했는데, 이는 전쟁으로 인해 이성을 잃은 잔인한 현실을 보여준 전형적인 사례”라고 했다.

자료사진


지방좌익과 인민군에 의한 학살

진실화해위원회 조사결과에 따르면 화순지역에서는 1950년 7월께 인민군이 점령한 이후, 지방좌익에 의해 1명의 행방불명사건이 발생했다. 이어 인민군 퇴각기인 9월 말에는 광주형무소와 화순내무서에 갇힌 12명의 경찰과 대한청년단원, 공직자 등이 정치보위부원과 자위대원, 인민군에 의해 화순저수지에서 희생됐다.

또한 1950년 10월부터 1952년 4월 사이에는 빨치산과 군경토벌대간의 교전이 벌어지면서 화순 지역주민들은 군경에 협조했다거나, 빨치산에 협조했다는 이유로 좌우세력에 의해 번갈아 희생되었다. 그 숫자는 295명으로 밝혀지고 있다.

화순지역에서의 빨치산에 의한 희생자들은 1950년 1월 초부터 발생했다. 군경 가족이나 대한청년단원 등 우익인사들이 그 대상이었다. 또 공무원가족이라는 이유로 10살 미만의 어린이와 여성 등 일가족 19명이 살해되었으며, 경찰의 지시로 전선과 전주를 지키던 주민들도 빨치산에 의해 살해되기도 했다.

자료사진



국군과 경찰에 의한 학살

경찰에 의한 화순지역 희생자는 1950년 10월 중순 경부터 발생했다. 당시 민간인들은 무차별로 총을 쏘며 마을로 진입하는 경찰을 피해 도망가다 현장에서 사살되거나, 지서가 피습을 받았다는 이유로 마을 청년 10여 명이 본보기로 사살됐다. 또한 야간에 빨치산에 의해 전주가 잘렸다는 이유로 경비를 맡은 주민을 경찰이 사살하기도 했다.

이 밖에 담양, 장성, 영광지역에서는 1950년 10월 말부터 국군 11사단에 의해 수복작전이 벌어지면서 학살이 일어났다.  이들 지역에서 국군에 의한 희생자는 담양 94명, 장성 67명, 영광․함평에서 27명으로 확인되고 있다.

당시 국군 11사단은 마을에 진입해 가옥에 불을 지르거나, 주민들을 끌어내 부역혐의자 가족과 청장년 등을 사살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은 지휘관의 명령과 사전교육에 따라 작전지역 주민들을 적으로 간주해 사살한 것으로 판단되고 있다. 또, 부역자들을 색출하기 위해 인민군복으로 위장한 채 마을에 진주하기도 했다.

진실화해위원회는 각 지역의 민간인 희생자들은 가해주체가 인민군이든, 국군이든, 경찰이든 간에 전쟁 참극에 의한 희생자라는 점에서 동일하다며, 국가에 대해서 이들 희생자들을 위한 사과와 더불어 합동으로 위령하도록 하고 참상을 널리 알리도록 권고했다.


Posted by 구자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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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2kim.idomin.com BlogIcon 2009.08.19 18:0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군군'이라고라?


이번 발굴에서는 54구의 유골이 나왔다. 희생자들의 연령은 대부분 20대에서 30대의 남성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해기(80세.진주 하봉면) 할머니는 현장에 도착하자 말자 그대로 주저앉아 흐느껴 울었다.


진주지역 국민보도연맹 희생자로 추정되는 민간인의 유골이 60여년만에 참혹한 모습으로 세상밖으로 나왔다.  

진실화해위원회는 30일 진주시 문산읍 상문리 진성고개 가늘골에서 발굴중인 민간인 피학살자들의 유골발굴 현장을 공개했다. 이번 발굴에서는 54구의 유골이 나왔다. 희생자들의 연령은 대부분 20대에서 30대의 남성으로 추정되고 있다. 진성고개 3곳에는 150여명이 집단 학살된 것으로도 추정되고 있다.
 

진주 주변 각지에 집단으로 학살되어 매장된 민간인들은 대체로 1950년 7월 당시 진주형무소 재소자이거나 한국전쟁직후 예비검속되어 진주형무소에 일시적으로 수감되었던 국민보도연맹원들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번 발굴현장 중간보고회에는 전국유족회와 진주유족회, 마산유족회 소속 유족회, 진실화해위원회 김동춘 상임위원등 관계자가 참석했다.

희생자들은 두 사람이 팔을 서로 교차되도록 손목을 묶인 채 순차적으로 사살됐다.

희생자들은 학살현장 위에서 부터 사살한 후 다시 그 시신 사이로 희생자들을 엎드리게 한 후 사살하는 과정을 거친 것으로 보인다.

 

가해자는 군인, 희생자들은 국민보도연맹원으로 추정 

발굴을 담당하고 있는 경남대학교 이상길 교수(사학과)는 주민들의 증언을 토대로 “1950년 7월 말 희생자들이 이곳으로 끌려와 학살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목격한 주민들은 3대의 차량으로 끌려와 진성고개와 까치골, 웃법륜골 3개소에서 학살된 것으로 증언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발굴된 의류품으로 볼 때 이곳에서 학살된 민간인들은 진주형무소제소자가 아니라 국민보도연맹원들로 보인다”며 “가해자는 M1을 소유했던 사람”이라고 덧붙였다. 한국전쟁 발발당시 M1 소총은 제한된 소수의 군인, 또는 관련자가 소지했던 것으로 미루어 볼 때 국군에 의한 학살이라는 소리다.
 

1950년 당시 이곳으로 끌려와 학살된 희생자들은 발굴현장 윗 열부터 순차적으로 학살된 것으로 보인다. 
 

이 교수의 현장설명에 따르면 희생자들은 두 사람이 팔을 서로 교차되도록 손목을 묶인 채 순차적으로 사살됐다. 맨 윗줄에 8명이 2명씩 그 아래 열로 7명 등 아래 방향으로 같은 형태로 질서 있게 쓰러져 있다. 이 교수는 가해자가 희생자들을 학살현장 위로에서 부터 사살한 후 다시 그 시신 사이로 희생자들을 엎드리게 한 후 사살하는 과정을 거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발굴된 유품으로는 11점의 허리띠와 버클, 38짝의 구두와 작업화, 지퍼, 칫솔, 빗 등이 나왔다. 또, 당시 물약으로 보이는 적은 병도 함께 나왔다. 발굴현장에는 M1소충과 권총의 탄피가 나온 것으로 보아 군인에게 학살된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경남대 이상길 교수가 유골발굴 현장을 설명하고 있다.

발굴현장에서는 M1탄피등 유류품이 다수 나왔다.

 

진성고개의 민간인 학살사건의 전말 

주민들의 증언과 발굴현장을 종합하여 알려진 진성고개 민간인 학살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한국전쟁이 발발한 1950년 7월 하순(25일 추정) 진주형무소를 출발한 3대의 차량에는 각각 50여명의 민간인과 다수의 군인들이 타고 있었다. 그들은 모두 민간인이었고 그 중에는 교복을 입은 학생도 썩혀 있었다. 
 

문산읍을 통과해 현재 한국국제대학을 막 지난 까치골 입구에 1대의 차가 멈추었다. 군인들은 사람들을 끌고 산 속으로 사라졌다. 다시 고개를 향해 올라가던 2대의 차량 가운데 1대가 현재 발굴하고 있는 가늘골에 서고, 나머지 1대는 200여 미터를 올라가서 웃법륜골 깊은 골짜기로 들어갔다. 차에서 내린 사람들은 모두 2명씩 짝을 지어 손이 뒤로 묶인 상태였고, 그들의 손목을 묶은 끈은 죄수복을 찢은 천이었다.
 

몇 몇 학살지와 같이 가늘골에서도 구덩이 내에서 학살이 이루어졌다. 50여명의 민간인들은 2명씩 뒤로 묶인 상태에서 산으로 올라가 매장지 근처에서 줄지어 서서 죽는 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맨 먼저 8명이 구덩이의 가장 높은 곳에서 엎드렸고, 뒤에 서 있던 군인들은 총을 쏘았다. 그리고 다음 7명이 먼저 죽은 사람들의 다리 사이에 머리를 두고 엎으렸고 다시 총성이 울렸다. 이러한 과정은 9번이 반복됐다. 학살이 끝난 후 억지로 끌려 온 마을 주민들은 소나무 가지를 덮고 좌우의 흙을 파서 시신위를 간단하게 덮는 것으로 모든 것은 마무리됐다.
 

당시 까치골과 가늘골은 문산에서 온 주민들이 시신을 매장하는데 동원됐고, 웃법륜골은 진성에서 온 주민들이 시신을 매장하는데 동원됐다. 희생자들을 싣고 온 차가 마을 주민들을 태우고 왔고, 주민을 동원하는 과정에는 현지 경찰도 참여했다.

유족들이 학살현장에서 발굴된 유골들을 바라보고 있다.

발굴현장 설명회에는 진실화회위원회와 전국유족회,진주유족회,마산유족회 등 회원들이 참석했다.

 

유족들의 통곡 

이해기(80세.진주 하봉면) 할머니는 현장에 도착하자 말자 그대로 주저앉아 흐느껴 울었다.
 

그는 결혼 3년 만에 국민보도연맹으로 남편을 잃었다. 당시 남편의 나이는 21세. 1950년 음력으로 6월1일 남편은 친척집으로 상망제( 3년 상에서 보름 만에 지내는 제사)를 지내러 갔다가 돌아오지 않았다. 군 입대 1주일을 남겨놓고 있던 남편은 경찰서에 잡혀있다는 이유로 입대를 하지 못하고 희생되었다.
 

부친을 잃은 성증수 할머니는 이곳을 지날 때 마다 머리를 조아리고 다닌다고 했다. 혹시나 선친이 유골이 여기에 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다. 오늘도 그는 ‘개승만’을 연신 외치면 당시 정권에 대한 극도의 증오감을 나타냈다.
 

김동춘 진실화해위원회 상임위원은 “유족과 위원회가 머리를 맞대로 학살현장을 통해 아픈 역사를 알려내야 할 책임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억울한 분들을 기억하고 알려내는 사업을 계속해야 한다며 청와대에 보고서를 제출하면서 특별법 제정과 조사 발굴 사업이 계속 이루어지도록 요구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한편, 가늘골의 매장지는 과수원 소유자인 이봉춘 할머니의 제보로 알려졌다. 이 할머니는 1980년대 초반 산을 매입하면서 당시 산주로부터 이곳이 학살지라는 이야기를 듣고 지금까지 원상을 유지하면서 관리해 오고 있었다. 

유해발굴을 담당하고 있는 경남대학교 박물관은 가늘골에서의 발굴이 끝난 후 나머지 2개소에 대해서도 발굴 작업을 진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Posted by 구자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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