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말에 ‘처삼촌 묘 벌초하듯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하면서 정성을 다하지 않고 대충 흉내만 낸 일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멀리서 본 수정마을 수림대. 멀리서 보면 그럴 듯 해 보인다. 구산중학교 운동장에서 본 수림대. 소음과 분진이 자유롭게 왕래하도록 배려를 해 놓은 듯 하다. 2008년 6월께 수정마을 뉴타운추진위원회가 마을 주민에게 1천만원을 지급하며 받은 동의서.
지금은 창원시가 되어버린 수정마을에도 ‘처삼촌 묘 벌초 하듯’ 일을 해 둔 곳이 있습니다. 바로 STX중공업이 벽면 하나로 붙어 있는 구산중학교를 위해 설치한 수림대입니다.
수림대는 경계부지에 나무를 심어 경관이 불량한 곳을 가로막고 소음이나 분진을 낮추기 위해 하는 환경개선사업입니다.
수정마을과 구산중학교를 위해 조성한 수림대는 공장가동이나 공사중의 분진이나 소음을 낮추어 일상생활과 학습권을 보장해 주기 위해 설치한 것이겠죠.
그런데 구산중학교 운동장에서 본 수림대는 대나무 꼬챙이 몇 개를 꽂아 둔 것처럼 보입니다. 대나무 사이로 하늘이 훤하게 보이고 수풀은커녕 고작 대나무 잎이 윗부분에 걸쳐 있을 정도입니다.
저 정도가 수림대라고 한다면 지나가는 소가 웃을 일입니다. 주민들도 처음에는 무엇인지 몰랐다고 합니다. 그만큼 눈 가리고 아웅하는 식입니다.
그런데 이해하지 못할 일이 또 하나 있습니다. 수정마을에 STX조선소유치를 찬성하고 있는 주민들의 반응입니다. 이들 주민들은 이 수림대 조성에 대해서 자신들이 먼저 진행해 달라고 요청했고 조성을 완료했다고 기자회견을 통해 말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태를 두고 완료된 것이라고 한다면 수림대를 조성한 목적이 무엇인지 의문스럽습니다. 더구나 대나무는 수림대 조성용으로는 적합하지 않은 수목이라고 합니다.
무엇보다 더욱 이해가 안 되는 것이 있습니다. STX유치반대주민들과 함께 하고 있는 트라피스트 수녀원에 따르면 공사소음으로 구산중학교에서는 운동장 수업을 못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도 접수된 민원이 없다고 하더군요.
트라피스트 수녀원의 말을 빌리자면 찬성주민들 상당수가 2008년 6월께 위로금 형태로 1천만원을 지급하면서 받은 동의서 때문에 이의를 제기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이미 보도한 내용(수정마을, 내용도 모르는 동의서에 “속았다”)이지만 ‘동의서’를 다시 보면 △STX의 수정지구 개발에 대해 수정뉴타운추진위원회를 수정주민의 대리인으로 인정한다. △STX건설공사와 STX중공업의 조선기자재 생산 활동에 이의가 없음을 동의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이 동의서는 어촌보상 문제에 반발해 지난 달 17일 수정뉴타운추위원회에서 탈퇴한 마을주민이 반대주민에게 건네주면서 알려졌습니다. 이 돈은 2008년 STX가 마을발전기금으로 은행에 유치한 40억을 수정뉴타운추진위원회가 마을 각 세대에게 1천만원을 지급하면서 서명날인 받은 것입니다.
그런데 찬성주민들도 민원을 넣지 못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구산 초·중학교는 학생 수가 적어 폐교 대상에 올라가 있다고 합니다. 민원을 넣었다가 자칫 교육청이 폐교조치를 내릴까 두려워서 못한다는 것입니다.
현재 통합창원시가 출범하면서 수정만 매립지 STX조선 기자재공장 조성에 따른 갈등 해결에 나서고 있습니다.
창원시는 반대 주민과 시민사회단체가 요구한 민관협의회 구성을 받아들이겠다는 입장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찬성주민들이 민관협의회 구성에 대해서 받아들일 수 없다고 나서고 있어 쉽지만 않을 것 같습니다.
창원시가 옛 마산시와 STX, 그리고 찬성주민들로 구성된 민원조정위원회와 새로 구성될 민관협의회를 어떻게 풀어나갈지 지켜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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