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여행

아라가야에는 찬란한 문화만 있었을까

내가 청소년 시절을 보냈던 곳에도 고분은 있었다. 유소년기의 기억으로는 거인무덤으로 불렸다. 거인무덤이 있었고, 거인 발자국도 있었다. 그것이 가야시대의 고분이었고, 공룡발자국이었다는 사실은 성장을 한 후 알게 된 사실이다. 복원이 된 지금에서야 그곳은 고분이 되었고, 공룡화석지가 되었다. 

유적에 대한 관심은 많지만, 전문적으로 배우고 탐구하지 못한 탓에 고분은 나에게 옛사람들의 삶과 당대의 사건들을 돌이켜 보는 역할만 한다. 내가 선 이곳에서 벌어졌을 옛 이야기들. 그 속에는 순장을 기다리며 죽음을 앞 둔 소녀의 두려움과 권력과 힘의 논리에 의해 지배당했을 민중의 아픔이 있다. 
 

함안박물관 전경입니다.

함안 아라가야 고분군


경남 함안군 도향리와 말산리 일대 야산 구릉지에는 남북으로 2km 이상 대형 고분 40여기 등, 총 153기가 밀집되어 있다. 전국 최대의 고분지역이리라고도 불린다. 이들 모두 신라에 의해 멸망했던 아라가야의 유적들이다. 이곳 역시 스쳐지나가며 직접 가보지를 못한 곳이다. 

13일 촬영차 함안군을 방문한 그날은 시간을 내어 고분을 향했다. 함안 박물관을 거쳐 오르는 길이다. 고분에 오르고 난 이후에 안 사실이지만 그곳은 함안군청 뒤편의 야산이기도 했다.
 

차도와 접한 고인돌은 내려오는 길에 찾기로 하고 현대식 건물 앞에 차를 세운다. 함안 문화원이다. 문화원다운 자태로 위풍을 자랑하고 있다. 그 뒤편으로는 고분들이 이어져 있다. 그길로 오르면 8호 고분을 먼저 접하게 된다. 
 

고분 주위를 둘러보며 옛사람들의 이야기를 상상한다. 지금 멈춰선 이 공간에서 벌어졌을 옛사람들의 삶, 각가지의 사연들. 순장을 당하는 소녀는 어떤 모습으로 이곳에 있었는지. 그는 자신의 죽음을 어떻게 알고나 있었는지. 자식을 죽음으로 내몰아야 하는 부모의 심정은 어떠했는지가 궁금해진다. 멀리로 보이는 저 산의 능선과 펼쳐진 들녘은 4세기 당대와 같은 모습인지도 궁금하기는 마찬가지다. 
 

옛 고분을 곁에 두고 상념에 빠지며 호적이 걷는 길이 좋다. 오르는 길은 흙을 밟지 않도록 도로가 포장되어 있다. 주변경관도 공원처럼 정리가 되어 있다. 
 

함안 아라가야 1호 고분

함안 문화원 뒤로 펼쳐진 억새무리


1호 고분을 찾는 길은 다시 산 아래로 내려가야 한다. 내려가는 길은 도심에서 볼 수 없는 정겨움이 있다. 양 옆으로 대나무가 있고, 가시나무가 있고, 낙엽에 싸인 숲의 고요함이 있다. 드문드문 고분을 향해 오르는 사람들과 마주친다. 
 

외떨어진 1호 고분은 왠지 방치된 느낌이 든다. 고분을 보호하기 위한 흔한 구조물도 없다. 자연 상태로 방치하는 것이 좋을 수도 있다. 그런데 방치된 듯한 아쉬움은 어쩔 수 없다.
 

능선의 정상에서 바라본 고분군의 모습은 아스라한 느낌을 준다. 당대의 풍경은 지금의 느낌과 또 어떻게 다를까? 넓게 정리된 주변의 잔디는 비록 계절속에 그 색깔을 잃었어도 단아한 느낌을 주기에는 충분하다. 
 

사람 키의 몇 곱절 높이의 고분은 겉으로 경이로움과 신비로움의 대상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동원돼 고분을 만들었을 테다. 고분은 당대 실세들의 힘과 권력의 상징으로 위용을 자랑한다. 현대에서도 그 웅장함과 문화적 가치가 먼저 기억된다. 그러나 이들을 위해 힘겨운 노역을 해야 했던 민중들의 아픔이 역사의 근간이다. 역사는 가진 자의 역사라고 했다. 그때도 사람들은 권력과 힘이 있는 곳으로만 모였을까?
 

12호 고분(?)에는 삼각모양의 콘크리트 구조물과 그곳에 세웠을 구조물의 흔적이 있다. 잘라낸 쇳조각 모양을 보고 일제국시대의 흔적이라고 짐작해 본다. 수많은 문화재와 유서 깊은 곳에 일제국주의는 민족을 맥을 끓기 위해 쇠말뚝을 박았다. 
 

줄지어선 고분을 따라 걷기 시작한다. 주민들이 석양을 바라보며 가로로 앉아 여가를 즐기는 모습이 이채롭다. 저렇듯 여유로운 삶의 모습은 현대인들에게는 쉽지 않다. 오직 이곳에서만 가능하다는 생각도 든다. 
 

함안 아라가야 고분

고분에서 석양을 바라보며 여가를 즐기는 시민들

놀이터가 되어 버린 고분. 몇 기의 고분에는 길이 나있다.


몇 기의 고분을 지나면서 더 이상의 걷기를 포기하며 발길을 돌린다. 운동을 한답시고 발목에 채워둔 모래주머니를 떼는 것을 잊어버렸다. 제대로 운동한 셈이다. 지나치며 나타나는 고분들의 둘레를 걷는다. 이 고분들이 만들어지기 까지 얼마의 세월과 얼마의 사람들이 필요했을까. 
 

특이하게 몇 기의 고분에는 위로부터 아래로 줄이 내려져 있다. 고교시절 두발 단속을 당한 이의 머리모양이다. 눈살이 찌푸려진다. 사람이 오르내리며 생긴 흔적이다. 고분을 보호하는 테두리가 없어 자연스러움이 좋았지만, 사람들은 즐기는 방법을 모른다. 

멀리로 한 어린이가 고분의 정상에서 괴성을 지르며 아래로 미끄럼을 타고 있다. 그 아래로 부모는 즐거운 미소만을 짓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