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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봉하마을 묘지에는 한 줄기 빛이 내리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비극적 죽음을 선택했던 봉하마을의 밤은 고요하고 아름다웠다. 민주화와 통일을 갈망하던 두 전직 대통령을 나란히 보내야 하는 잔인한 2009년 8월의 밤에 찾은 노 전 대통령의 묘지에는 한 줄기 빛이 내린다.  

국장을 맞아 봉하마을에 마련된 김대중 전 대통령의 분향소가 보인다. 노 전 대통령의 분향소가 마련됐던 바로 그 자리다. 몇 차례 취재를 위해 이곳을 찾았지만 정작 노 전 대통령의 유해가 안치된 묘소는 제대로 보지를 못했다. 그가 생전에 새벽을 맞이하며 올랐던 봉화산 등산로 역시 올라 보지를 못했다. 너무 많은 사람이 모인 까닭이었다. 인파가 모인 곳을 한가로이 걸으며 상념에 빠지기란 불가능해서다.

노 전 대통령의 묘소

여름밤 늦은 시각에 묘소를 찾은 이들

묘소앞에는 노 전 대통령의 생전 사진이 활짝 웃고 있다.

봉하마을 노무현 전 대통령 묘소


늦은 여름밤, 묘지 앞에서 밀려오는 후회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서거로 인해 봉하마을에 마련된 김 전 대통령의 분향소를 지나 차를 세운다. 노 전 대통령의 사저를 곧 지난 앞이다. 그 곳 멀지않은 곳에 한 줄기 빛이 보인다. 3달 전에 ‘작은 비석하나만 만들어 달라’는 유언을 남기며 세상을 떠나버린 노무현 전 대통령의 묘지이다.

밤 11시가 가까워지는 무렵에도 한 무리의 추모객이 모여 있다. 한 여성은 묘지에 둔 사진을 감싸 쥐고 손수건으로 닦아 내고 있다. 한 남성은 묘지의 석판을 어루만지며 뭐라 말하고 있다. 가까이 다가서니 생전 모습을 담은 사진 앞에는 담배 연기가 가늘게 오르고 있다. 삶과 죽음의 경계를 앞두고 당신께서 마지막으로 찾았다던 담배의 안타까움이 떠오른다. 일행은 한 동안 묘소주위에 서서 절을 올리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사진에 담긴 활짝 웃는 모습은 세상 근심을 잊은 듯 정겹게 다가온다. 대통령직을 마치고 고향인 봉하마을로 돌아와 ‘속이 시원하다’고 외치며 행복해 하던 대통령의 모습이다. 정치를 떠나 고향에서 한 농부로  남은 여생을 살려고 했던 소박함도 묻어 있다.

사진을 보며 회상에 잠기는 순간 때늦은 후회가 밀려온다. 

노 전 대통령이 임기를 마치고 봉화마을로 돌아온 후 1주일이 지나는 시점에 그에게 한 장의 DVD를 보낸 적이 있다. 2006년 포항건설노조의 투쟁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였다. 그 과정에서 비참하게 목숨을 잃은 하중근 노동자에 대한 진실을 꼭 알리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 내면으로는 원망도 담겨 있었다. 노 전 대통령이 보았는지는 모르지만, 오늘 묘지 앞에서는 후회스럽다. 이렇게 될 줄 알았다면 차라리 보내지 않았으면 좋았을 걸. 괜한 짓을 했다는 생각이 든다. 자연인으로 돌아 간 당신께 못할 짓을 한 것 같아 죄스럽다.

정토원으로 향하는 길

정토원 수광사 전경


봉화산 정토원으로 오른 길

봉화산을 오르면서 만난 야생고양이


봉화산 정토원 오르는 길 

묘지 넘어 보이는 산등성이에는 불빛이 길이로 펼쳐져 있다. 빛이 늘어진 방향으로 보아 정토원으로 가는 길이다. 그냥 돌아갈까 하다가 마음을 되짚는다. 지척이지만 다시 오지 못할 수도 있겠다 싶어서다. 
 
봉화산을 오르는 길은 돌계단과 나무계단으로 만들어져 있다. 자연 상태라면 꽤 비탈진 길이다. 발걸음을 옮기며 노 전 대통령의 생전에 만들어진 길이었으면 하는 바람이 인다. 알려졌듯이 이 길은 노 전 대통령이 하루를 시작하며 이른 아침에 걷던 길이다. 먼저 세상을 떠난 이를 생각하며 걷기에는 그 당시와 같이 보존된 길이 좋다.

험난했던 정치를 떠나 고향으로 돌아온 그는 처음에는 가벼운 마음으로 이 길을 걸으며 하늘과 숲을 보았을 것이다. 하지만 무심한 세상이 그를 짓누르면서 점차 땅을 보며 걷은 일이 많아졌을 것이다. 어쩌면 그가 하늘과 숲을  마지막으로 바라본 때는 부엉이 바위에서 몸을 던지는 그 순간이 아니었을까. 나도 자꾸만 땅을 바라보며 걷는다. 중간 중간 나타나는 이정표가 갈 길을 알려준다.

중간 정도 올랐을까. 마애석불(?) 암벽화가 있는 곳에서 잠깐 발길을 멈춘다. 암벽화를 찾아보았지만 어둠 탓에 찾을 수가 없다. 한켠 바위 위에서 이 모습을 내려다보고 있는 이가 있다. 야생 고양이다. 녀석은 한 동안이나 쳐다보고 있다가 어둠속으로 사라진다.

부엉이 바위의 한 부분에 이르면서 아래에서 흐르는 물소리가 적막을 깨운다. 순간 당신께서 마지막으로 선 곳이 어딜까 싶어 사방을 둘러본다. 어둠에 궁금증만 들뿐 알 수가 없다. 멀리로 봉화마을과 그 너머 산 정상위에는 수많은 별들이 펼쳐진다. 당신께서 본 마지막 세상은 일출이 든 풍경이겠다는 상념도 든다. 

그 위쪽으로 길은 정토원과 봉화산 등산로로 나누어진다. 정토원은 100미터 남짓한 거리를 두고 있는 모양이다. 몸에 베이는 땀을 씻어 주는 산바람을 맞으며 정토원에 도착한다. 그곳 입구에는 강아지 두 마리가 불청객을 맞는다. 한 놈은 일어나 다가오는 반면, 한 놈은 눈짓만 주고 있다.

한 여름 밤, 늦은 시각의 정토원에는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 땀을 씻겨주려는 듯 산자락의 바람만이 계속 밀려오고 있다. 수광전도 침묵에 들었다. 희미한 불빛만이 어둠을 밝히고 있다.

수광전 안에서는 두 전직 대통령의 영정이 나란히 앉아 세상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테다. 감히 문을 열지 못한다. 그저 떨어져 수광전의 외형만 카메라에 담는다. 그 앞으로 마당에는 추모객들이 남긴 방명록이 펼쳐져 있다. 모두들 하나같은 마음을 빼곡이 새겼다.  

수광전 앞으로는 아래로 내려선 돌계단이 짧게 자리하고 있다. 그곳을 내려서면 부처상이 나타난다.  석불상은 어둠과 조명이 어우러져 묘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그리 오래되지 않아 보이는 석불에는 아쉽게도 설명이 없다.

이제 내려가야 하는 길이다. 카메라 셔터를 누르며 옮기는 발걸음에 무언가가 채인다. 입구에서 먼저 만났던 녀석이다. 그 두 녀석 중 한 녀석이 무슨 이유에선지 계속 따라다니고 있다. 사람을 겁내거나 피하지 않는다. 더러는 발 앞까지 다가와 지켜보기도 한다. 이름이 궁금했지만 녀석에게 물어 볼 수도 없다. 아래의 석상까지 따라 내려온 녀석에게 조바심이 들어 한마디 던진다.

“임마. 이제 그만 따라와”

말을 알아들었을까? 녀석은 신기하게도 바닥에 주저앉아 한 여름의 불청객을 배웅한다. 짧게 이어진 숲을 지나 부엉이 바위쯤에서 본 세상은 잡다한 세상사를 잊고 적막속에 빠져 있다.  

정토원 수광전 앞마당의 방명록

정토원에 있는 석불

정토원에서 만난 녀석, 녀석은 정토원에서 줄곧 따라 다녔다.

    

봉하마을 묘소를 지키고 있는 전경대원, 24시간을 지키고 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