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터데스크 관리자

도움말
닫기
적용하기   첫페이지 만들기

태터데스크 메시지

저장하였습니다.

내가 꿈꾸는 세상

현재 합천군에서는 대장경천년 문화축전이 열리고 있습니다

 
천년 고찰인 해인사에 보존중인 대장경을 통해 대장경의 가치를 재 발견하고 체험을 통해 고려인의 지혜를 공유하자는 취지의 행사입니다만, 우리 문화의 우수성을 세계에 알리기 위한 행사이기도 합니다

이 행사는
923일에서 116일까지 합천군 가야면 주행사장과 해인사가 주요 무대입니다.

사람들은 이 행사를 쉽게
팔만대장경 축제라고 합니다. 사전전 의미를 찾아보니 축전은 축하하는 뜻으로 행하는 의식이나 행사이니 만큼 다른 표현으로는 축제이기도 합니다.

무릇 축제라고 하면 많은 사람들이 가벼운 마음으로 찾아와 행사를 즐기고
, 그 의미를 깨닫고 가는 행사이어야 합니다. 제가 알고 있는 대부분의 축제는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지요. 축제뿐만이 아니라 많은 유명 관광지도 그렇습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 먹거리는 가장 중요한 부분인데
, 일반 시중의 가격보다 낮지 않은 가격에 어떤 곳은 부실한 음식으로 미관을 찌그리게 하는 곳도 있습니다. 그리고 불친절하거나, 초행길의 여행객에게 충분한 정보를 현지에서 제공하지 않는 곳이 대부분입니다.

이번 행사를
12일로 둘러보며 느낀 아쉬움은 좀 더 친절한 행사가 되었다면 좋았겠다는 것입니다. 친절은 사람에 대한 친절만이 아니라, 관광객에게 다가가는 설비와 안내 등을 말합니다
 

합천 해인사를 찾은 일본인 관광객들.

합천 해인사 장경판전


저 합천군의 대명사처럼 된 해인사와 그 인근 문화유산에서의 아쉬움입니다.

축제가 시작된 해인사로 오르는 길은 일본인 관광객들과 중국인 관광객들이 한국인 만큼이나 많이 보였습니다
. 다들 안내인과 함께 천년고찰의 비문과 역사를 듣는 모습이 내심 뿌듯했습니다.

그런데 불쾌감을 주는 일이 있더군요
. 해인사의 대장경이 보존되고 있는 장경판전 입구입니다. 천년의 숨결을 보존하는 일의 중요성은 잘 알지만, 그렇다고 불친절한 것은 말이 안됩니다. 장경판전 입구에서 제일 먼저 만난 안내인의 불친절이 그것입니다.

문 앞에 선 그들은 다소 억압스런 말투로 사진촬영은 안된다는 뜻으로
카메라 촨이라고 두손을 가위표시로 이야기를 합니다. 등 뒤로는 입구에 들어선 일본인 관광객이 어떤 행동을 했는지 모르지만, ‘허이!’라고 억압스럽게 내뱉습니다. 그 말에 놀란 일본 여성은 외마디 비명을 지릅니다.

천년의 유물을 아끼고 보존해야 한다는 것에 누군도 이견은 없을 것입니다
. 하지만, 축제한다며 사람을 불러놓고 험악한 분위기로 억압하는 것을 보며, 찾아오는 불쾌감은 어찌 할 수 없었습니다

여행이란 것은 자유분방한 분위기에서 이루어 집니다
. 그래서 꼭 필요한 부분에서는 경고문이나 통역을 통해서 관람시 해서는 안될 행동을 친절하게 설명해 주어야 합니다. 그것이 초행길의 여행객을 맞는 첫 일이고 축제의 분위기에도 맞습니다. 아마 그 일본여성들도 내심 마음이 상하지 않았을까요

홍류동 계곡 안내판


두 번째 아쉬움은 해인사 인근에 자리하고 있는 유물들에 대한 설명이 부족해, 그 역사나 내력을 알지못하고 단순히 보고 지나쳐야 했다는 것입니다.

비단 해인사뿐만아니라 다른 유서 깊은 곳도 그렇긴 합니다만
, 작은 석비라도 그 유래를 알 수 있도록 해설을 해 두었으면 여행객에게는 그 고장의 역사까지도 이해할 수 있는 여행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대부분 큰 누각이나 암자같은 대표적인 유물에만 안내판을 세웠습니다.

저는 단순히 기록만을 전하는 안내판만이 아니라
, 그 당시의 이야기들을 스토리텔링하면 어떨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것이 여행객의 이해를 돕고 가치 전달을 하는 여행이 될 수 있도록 안내하는 일이 아닐까 합니다. 현지에서 가져온 여행 안내서를 보면 명소에 대해 그저그런 말들로 평범한 소개만을 하고 있습니다

세 번째는 음식입니다


서두에 이야기 했듯이 축제는 가벼운 마음으로 즐겨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여행지에서의 음식을 비롯한 기념품의 가격이 저렴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행사에 가보면 바가지 상혼들이 힁횡합니다. 한 때의 장사라고 일반 시중의 가격보다 높은 가격에도 그 품질은 형편없는 곳이 많습니다. 그러다보니 대부분의 사람들이 여행지에서 향토색 있는 음식 먹기를 기피합니다. 먹고 나서도 기분 상하는 일이 많기 때문입니다.

팔만대장경 축제에서 저도 음식을 먹지 않았습니다
. 사실 먹을 시간도 없었지만, 여행지에서 먹지않는 것이 습관화된 이유도 있습니다. 하지만 주요 행사장을 둘러보면서 음식점을 찾을 기회가 있었습니다. 대장경 주요 행사장의 음식은 먹어보지 않아 말할 수는 없지만, 그 가격은 역시 일반 시중에 비해 약간 높은 편이었습니다

저는 여행지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먹거리와 친절이라고 봅니다
. 특히 먹거리는 싸고 저렴하게 내놓아 많은 사람들이 찾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행사에도 도움이 되고, 음식점에도 더 많은 이윤을 남긴다고 생각합니다. 박리다매라고 하죠

대부분 여행지의 음식은 제 입맛에 길들여진 이들에게는 호기심의 대상일 뿐
, 실제 먹을 기회는 많지 않습니다. 게다가 가격마저 만만치 않다면 쉽게 손이 가지 않습니다

축제의 현장에서 향토색 짙은 음식을 자유롭게 즐긴다는 것은 또하나의 매력입니다
. 축제는 여행객을 위한 행사입니다. 주최측과 또 그와 관련된 사람들을 위한 행사가 아닙니다. 그래서 관광객의 입장에서 친절한 준비를 하면 더 많은 이들이 찾지 않을까 합니다.
 

합천군 대장경천년 문화축전 주행사장

합천군 용주면 가호리 합천 영상테마파크 내부 세트장


이와 관련해서 덧붙이자면 현지의 인터넷의 문제입니다.

사실 인터넷 한 개 회선을 설치하는데는 불과 몇 만원밖에 하지 않습니다. 특히, 도심을 벗어나 한적한 시골이면 와이파이라고 불리는 무선통신망이 되는 지역을 찾기란 너무도 힘든 현실입니다

세계적인
IT 강국 답게 현대의 젊은이들은 카메라로 무장을 하고, 노트북을 지니고 여행을 떠납니다. 하지만 현지에서는 인터넷에 연결할 수 있는 곳을 찾지 못해 그냥 들고 다니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들에게 현지에서 여행의 소감이나 추억과 기록을 웹상에 올릴 수 있도록 공간을 제공하는 것은 비단 여행객만을 위한 일이 아닙니다


이번 축전의 집행위원회에서는 홍보를 위해 수많은 비용을 들이고 동시에 애를 태웠을 것 입니다
. 그런데도 축전 기간동안 몇 만원 들여서, 수억의 홍보효과를 낼 수도 있는 저렴하고 간단한 방법을 사용하지 않고 있더군요. 친절한 행사였다면 나왔을 법한 기획입니다

현장에서 글을 쓰고 추억을 기록하는 것에 많은 사람들은 관심을 기울입니다
. 현장의 기록은 그만큼 가치가 있고 실시간인만큼 관심의 대상이 됩니다. 더욱이 사람은 그 현장을 벗어나면 그 감동의 기억도 급격하게 감소합니다. 그래서 현장에서 쓰는 글이 중요하기도 합니다

저는 축전기간이 많이 남아 있는 만큼 무선통신망만큼은 빨리 연결해서 휴게실과 함께 제공되었으면 합니다
. 그래서 방문객이 현장에서 행사를 홍보하고, 이를 통해 더 많은 방문객을 찾아오는 성공한 축제가 되었으면 합니다.

Comment +9

  • 잘 읽었습니다. 그런데 글짜가 좀 이상해요.
    한 번 보고 고치시면 좋겠다 싶어서요~~~
    계속 좋은 글 부탁합니당~~~

    • 홧~..우째 이런 현상이.. 구글 크롬으로 올렸는데 이상이 없어 몰랐거든요. 당췌 뭔 소린가 해서 익스플로어로 보았더니 알 수없는 테그가 있네요. 암튼 감사합니다. 흐미~

  • 좋은의견 감사합니다. 합천관광이 나아갈 방향을 정확하게 짚어주신것 같습니다. 합천군민의 한사람으로써 새겨듣고, 개선할수 있는 여지를 찾아보도록 노력하겠습니다.

  • 다른 분들 글 쓰는 걸 보니 포스팅할 자신이 없어집니다.
    역시 베스트 블로그들은 다른 가 봅니다.
    잘 배우고 갑니다.

  • 신여리 2011.10.05 08:06 신고

    보이는것이 다 가 아니예요.. 관점에 따라 그럴수도 있지만 법보전의 아저씨에 대한 기사를 읽은 적이 있었는데요. 그런 분들의 노력과 애씀이 오래된 장경각을 잘 보존하는 행위가 될 수 있지 않을까요?. 언젠가 흔히 식자라고 하시는 분들이 구경오셔서 법보전 주렴을 손가락으로 따라 적다가 부스럭거리며 일부 조각들이 떨어졌다고 합니다 물론 혼나셨겠지요ㅋㅋ 우리의 국보를 잘 보존하여 오래오래 많은 사람들이 볼수있게하고자 하는 아저씨의 사명감일 수도 있겠다싶네요. 워낙 많은 사람들이 오시는 시기 잖아요..^^*

    • 물론 보존에 대한 중요성은 몇번을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고 봅니다만, 그렇다고 고압적인 자세로 관광객을 불쾌하게 하는 방법이 최선 일까요? 그럴것 같은면 축제랍시고 사람들을 불러 모으지 말아야 지요..얼마든지 웃으면서 친절하게 하면서,보존도 잘 할 수 있습니다.

  • 아쉬움 2011.10.08 21:49 신고

    오늘 공부방 애들과 함께 다녀왔습니다 정말 많이 아쉬웠어요 음식도 그렇고 행사장도 그렇고 많이 많이 아쉬웠습니다 공개된 대장경판 이 보관된 곳 입구에 들어서서 설명을 듣는데 사람은 많지 마이크 소리는 쩡쩡 울리지 거기에 경상도 억양까지 저나 우리애들같은 타지역 사람들은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제대로 알아들을 수가 없었습니다

  • Jin;Aqua 2011.10.12 10:16 신고

    여름에 서울 남산 일일답사를 다녀왔는데, 그 때 만난 민속학과 학생이 한 학기 전에 자기가 박물관(중앙박물관인가 고궁박물관인가..)에서 일한 이야기를 조금 해주더라고요. 그 때 와이파이 이야기도 해 줬는데, 유물에 영향을 끼칠까봐 박물관에는 와이파이를 설치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래서 지난번에 의궤 들어왔을 때도 맞이행사 할 때만 잠깐 일시적으로 설치했다가 행사 끝나고 다시 제거했다고 하네요.

  • 이 은실 2011.10.25 19:56 신고

    저도 지난 일요일에 다녀왔는데 정말 황당한 일을 당했어요 관계자들에게 꼭 전하고 싶어요 월광(?)야로면부근 임시주차장에서 임시 버스를 줄지어 기다리던중 (약30분) 버스가 왔는데 관계자들은 관광객들을 차례대로 테우지도 않고 3대의 버스문을 한꺼번에 열고 사람들이 알아서 타게 방치하고 경찰들과 잡담만 하고는있었다 그러니 중간쯤에 서 있던 우리는 첫번째 버스에타기는 했으나 자리가 없어다시 내려오려니까 뒤에 버스에도 자리없다며 그냥 서서 가란다 너무 어처구니 없었다 우리보다 뒤에 온사람들은 앉아가는데 상식밖의 일이다 공짜라고 짐짝보다 못한 취급을 받다니 축전담당자는 제발 행사요원들을 기본적인 교육을 시켜서 멀리서 오는 손님들에게 좋은 인상을 남겼으면 좋겠다

길이 있어 사람이 걸었더니, 그 길은 하늘에 닿았다가 지상으로 내려오더라.

 

이 길은 경남 합천군 황매산 자락에 위치한 모산재에 있다. 합천 해인사 팔만대장경 축제를 탐방을 위해 찾았던 길의 산행. 하늘에 닿았던 이 길은 다시 지상으로 이어져 인간세계와 살을 섞는다.

 

그 길에 서면 무성한 수목은 온데간데 없고, 넓은 평원만이 하늘을 베개 삼아 대지에 누웠다. 갖가지 야생화와 수풀로 이부자리한 평원에는 사람도 풀꽃이 된다.

정상 언저리 능성에 다다르면 시멘트와 아스팔트 냄새 짙은 내 모습은 이미 없다.

겹겹이 쌓인 산봉우리는 오래전의 과거. 그런 까닭에 황매산은 영화나 사극에서 배경이 된다. 시대극에서 말을 타고 달리는 장면은 대부분 이곳에서 촬영되기도 한다.

 

합천군 황매산 능선에서 모산재로 향하는 길

석산인 모산재는 기암괴석과 풍광이 절묘하다.


황매산 정상을 뒤로 하고 영암사지 방향으로 발길을 돌리면, 전국 최대의 철쭉 군락지가 나온다. 이곳을 지나면 길은 모산재로 이어진다. 황매산의 철쭉군락이 유명세를 얻었지만, 모산재를 잇는 이 길은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 드문, 두어 번의 등산객을 만날 뿐이다. 때문에 모산재는 산을 즐기는 산사람들만이 애용하는 길이 됐다.

 

평원을 가득 메운 철쭉 군락지는 하늘에 닿아 있다. 아주 오래 된 시간, 지금은 불혹을 넘겨버린 한 사내가 청소년기에 어느 촌락의 한 봉우리에서 보았던 그 하늘이다. 산 능선에 누워 깊이를 알 수 없는 하늘과 수만 가지 형상의 구름에 머리가 텅 비어 버렸던 바로 그 하늘이다. 하늘과 맞닿은 이 곳에는 수 겹의 봉우리들이 두 손으로는 가릴 수 없는 위엄으로 버티고 섰다.

 

모산재로 접어들면 잠시 호흡을 정리하는 길이 된다. 수림이 하늘을 얇게 가릴 즈음이면 어느새 하늘과 땅을 걷고 있다. 가파르게 이어진 초입의 길은 세상의 모든 애욕을 한꺼번에 토해내라는 듯 성큼 다가온다. 그러나 마음을 비우고 정화된 몸을 만들기에는 짧은 거리다. 그 짧은 시간에 스스로 몸을 정화시켜야 한다.

 

암반 사이로 버티고 선 소나무의 생명력이 경이롭다.

겹겹이 쌓인 산봉우리 위로 구름이 날고 있다.


이윽고 산봉우리에 서면 멀리로 땅이 보인다. 마치 하늘에서 내려온 신선이 인간세계를 내려 보며 느꼈을 법한 감흥마저 든다.

 

초입 길에서 마음을 비웠다면 사방으로 넓게 펼쳐진 자연의 일부가 되었을 것이다. 기암괴석이 내 안에 섰고, 산허리에 굵게 박힌 석벽에 내가 들어간다. 그 석벽과 기암괴석은 어느새 또 하늘에 닿아, 하늘인지 땅인지 헤아리기 어렵다. 영겁의 세월동안 바람에 안긴 거대한 바위는 그 표면이 제법 넓고 매끄럽다.

 

암산인 모산재 길은 세속의 애욕을 허용하지 않는다. 하늘과 닿은 길이 끝날 즈음, 지상으로 향하는 길에는 순결을 요구하는 거대한 바위가 있다. 순결한 자만이 그 바위 안으로 손을 넣을 수 있다.

 

무덤을 세우면 후대에 제왕이 나온다는 명당자리인 무지개 터에서 한 때나마 가졌던 세속의 욕망도 모두 털어내야 한다. 길은 그 허망한 꿈에 젖었다가는 필시 실족할 만한 가파름을 가지고 있다. 마음을 비우지 않고서는 두려움으로 설 수 밖에 없는 가파름이다.

 

모산재의 철 계단. 그 가파름은 아찔한 두려움을 안겨 준다.


가파름의 절정은 철 계단으로 이어진다. 철 계단은 인간의 땅으로 향하는 접경지. 온통 사방에 도사리고 있는 불안과 근심, 애욕과 이기심의 땅으로 향하는 접경지다. 그래서 현기증 나는 공포를 안겨준다. 한 걸음, 한 걸음 내딛는 순간마다 아찔함과 전율로 온 몸을 떨어야 한다.

 

수 미터 거리의 낭떠러지를 두 눈으로 보아야 하는 철 계단은 인간의 땅에서 살아야 하는 두려움과 공포 그 자체다. 인간이 사는 땅에서의 삶처럼 이 곳 저 곳을 얇게 기웃거리며 재빠르게 움직이는 것을 길은 결코 용납하지 않는다.

 

그 공포를 충분히 겪은 다음에야 밟을 수 있는 곳이 인간의 땅이다. 암반으로 만들어진 인간의 땅은 그 시작부터 얕은 선택을 하지 말라는 듯이 조심스런 걸음을 요구한다. 두 손과 두 발을 모두 사용한 태초의 원시인이 되어야 한다. 그 안에는 합천 해인사에서 입적한 성철스님의 길이 있다. 한 걸음 한 걸음에는 자신의 얼굴도 새겨야 한다.

 

모산재에서 바라 본 영암사지


이렇게 한걸음씩 걷다 보면 비로써 인간에게 허용된 땅에 서게 된다. 이 순간부터 걸음이 빨라진다. 다시 익숙한 인간의 땅으로 돌아온 것이다. 하지만 길은 다시 인간의 욕심이 파괴한 자아를 되새겨준다.

 

바로 신선이 인간의 땅에 접경한 첫 발치에 세운 구도의 불사, 영암사지다.

 

영암사지는 땅이 하늘로 향하는 길에 섰다. 오래전 인간의 모습으로 내려온 신선이 하늘을 향해 걸음하던 인간에게 깨달음을 얻게 한 곳이다. 하지만, 스스로의 오만함과 이기심으로 가득 찬 인간은 신선의 가르침을 거부하고 끝내 이곳을 파괴해 버렸다.

 

수도승이 떠나고 폐사지로만 남은 영암사는 그래도 위풍스런 모습으로 자리하고 있다. 불사의 흔적이 남아 있는 축대에는 사자 한 마리가 웃는 표정을 하고 누웠다. 마치 인간의 어리석음을 비웃으며 조롱하는 모습이다.

 

그 앞으로는 어린 사자 두 마리가 하부의 각선미를 드러내며 석등을 바쳐 들고 섰다.

 

영암사의 축대 사자모양의 조각.

영암사지 석등. 하단부를 바치고 선 사자의 하체는 마치 어린아이의 엉덩이처럼 곡선미를 풍기고 있다.


오랜 세월 동안 석등은 영암사지 삼층석탑 앞을 밝히며 외롭게 절터를 지켜왔다. 그 사이 어떤 이는 깨달음을 얻기 위해 다녀갔고, , 어떤 이는 재물을 탐해 석등을 훔치고자 다녀갔다. 하지만 석등은 오늘도 바람에 깎이고 비에 그을린 채로, 변함없이 하늘과 땅을 잇는 길에 우뚝 버티고 있다

1

Comment +13

 어찌하다 보니 이번 주일에도 함안을 향하게 됐다. 고속도로에서 여수 향일암이 전소됐다는 불쾌한 소식이 전해진다. 남는 시간에 문화유산을 찾아보기로 하고 일정을 다시 맞춘다. 이날 찾은 곳은 경남 함안군 군북면 방어산에 자리한 천년의 신비를 간직한 마애약사삼존불이다. 보물 제159호 마애약사삼존불은 통일신라시대 조성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마애사를 거쳐 방어산으로 향하는 길. 마애약사삼존불은 500m라는 이정표가 보인다. 이 정도면 한달음에 오를 수 있을 것 같다. 등산길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산책로와 같다. 산길 치고는 꽤 넓은 길이 열려져 있다. 
 


산길을 쉽게 생각하다가는 낭패를 당할 수 있다. 한창 젊은 시절인 대학 1년 여름날, 동네 산속에서 뛰고 달리며 성장했던 시골촌놈은 지리산의 산세를 가볍게 보았다가 거의 조난을 당할 위기에 처했다.

지리산을 뛰어다니듯 급히 오르다가 저체온증으로 꼼짝 못하는 처지가 됐다. 그날 매년 지리산을 두 번 찾는다는 60대 부부를 만났다. 그분들의 도움이 아니었으면 끔찍한 일을 당할 수도 있었다. 쓰러져 있는 모습을 보고 급히 커피를 끓인 그분들은 “산을 오를 때는 생각을 정리하며 소의 걸음으로 걷는 게 좋다”고 가르쳤다. 이후로 산을 오를 때면 천천히 여유롭게 걷는다. 
 

이날은 마음이 좀 급했나보다. 500m를 쉽게 보고 처음부터 무리를 했더니 숨이 턱까지 차오른다. 여전히 조급한 성격을 못 버린 모양이다. 오르는 길은 사람이 없다. 중간 중간 하늘을 향해 선 돌무더기가 보인다. 몇 개는 무너져 내려 돌무덤이 되었다. 
 


마애약사삼존불에 도착한다. 방어산 7부 능성에 위치한 듯싶다. 산속의 평지에 우뚝 서 있는 석벽에 음각기법으로 새긴 마애불이다. 얼핏 보면 암각화 같다는 느낌도 있다. 천년의 세월만큼이나 그 흔적을 남겼다. 
 

그 천년의 세월동안 이곳을 찾았을 세속 사람들의 사연은 수만 가지였을 것이다. 대부분 가정적인 사연일 것이다. 삼존불은 파산과 업보에 고통 받는 가정을 구제하고, 병을 고쳐주며, 자식이 귀한 집에는 자식을 낳게 해 주는 신비한 영험을 가지고 있다고 전해진다. 이곳을 찾은 이들은 간절히 그런 욕망들을 채워주기를 눈물로 소원했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이곳은 한겨울의 삭풍도 없이 온화하다. 
 

50m거리에 비로자나 불상이 있다는 안내판이 보인다. 그 곳으로 발길을 돌린다. 비로자나 불상은 세워진지 오래된 것 같지 않다. 제법 넓은 평지에 석벽이 병풍처럼 불상을 감싸 안고 있는 형태가 특이하다. 그 옆으로는 약수가 있다. 그러나 초행의 사람들은 발견하기 어렵다. 약수를 유리문으로 보호해 놓았기 때문에 열어보기 전에는 알 수가 없다.
 


불상 좌측 바위사이로는 몽돌로 구성된 조형물이 있다. 그 위쪽으로는 유리창이 보인다. 오래 된 듯 한 가스통도 있다. 사람이 거주했던 흔적이다. 그 옆에는 두 개의 큰 바위 사이로 난 좁은 공간이 보인다. 날씬한 사람만이 드나 들 수 있는 정도의 공간이다. 안쪽에는 미닫이문이 보인다. 자세히 보니 열쇠가 보이고, 묵언이라고 새긴 메모지가 있다. 누군가 이곳에 거주하며 수행을 했던 모양이다. 
 

혹 사람이 있나 불러보려다  ‘묵언’이라고 새긴 메모가 부담스러워 포기를 한다. 그런데 이놈의 호기심은 어쩔 수 없다. 내부가 너무 궁금했다. 실례를 무릅쓰고 바위 틈 사이를 헤집고 들어가니 문이 잠겼다. 사람은 없는 모양이다. 문 사이로 난 공간으로 내부를 들여다보니 좁은 공간에 정리된 이불이 보인다. 천정도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다. 
 

세상일이 골치 아플 때 며칠 쉬면 좋을 장소 같다. 이곳에는 자본주의 사회의 생존공포도 느끼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사람이 없으니 물욕이 빚은 세상근심도 없다. 사람과 사람의 만남은 온통 근심 그 자체다. 한번은 이별의 고통을 겪어야 한다. 사별은 피할 수 없는 아픔이다. 개인간의 만남에서도 이해관계가 성립되면 그 자체가 고통이다. 요즘 세상에는 동지가 없다.
 

다시 마애사로 향한다. 내려가는 길에 한 무리의 답사객이 가픈 숨을 헤치며 힘겹게 오르고 있다. 주차장의 버스로 보아 경주에서 온 유적지 답사 교사모임인 모양이다. 
 


주차장에는 길 다방이 보인다. 나는 이곳을 지나치는 법이 없다. 한 개비의 담배를 꺼내며 달콤한 맛을 음미하는 동안 행복을 느낀다. 어느 사이에 풍산개로 보이는 녀석들이 어슬렁거리며 다가온다. 날씨 탓인지 눈망울에 힘이 없어 보이지만 건강한 모습이다. 이름을 물어도 답을 않으니 그냥 황구와 백구로 부른다. 녀석들은 사람을 피하지 않는다. 
 

이 녀석들은 발아래까지 와서 커피 먹는 모습을 빤히 쳐다보고 있다. 음식 먹는 것을 쳐다보는 눈을 외면하는 것만큼 치사한 일은 없다. 그래서 커피를 바닥에 조금 부어준다. 뜻밖에 녀석은 커피를 즐긴다. 바닥에 부어 준 것이 되레 미안할 정도다. 바닥에 걸쳐 앉아 종이컵을 내민다. 머뭇거리던 황구 녀석이 혀로 먹기 시작한다. 이곳에 와서 처음으로 말을 건넨다. 커피를 나눠 마시며 말동무가 되 주길 바랐지만 녀석들은 눈만으로 쳐다본다.
 

이놈들은 둘이 뭉쳐 어슬렁거리며 같이 다니며 쓰레기통을 뒤진다. 배가 고픈 모양이다. 미리 알았다면 과자라도 사가지고 올 걸 그랬다. 
그래도 녀석들은 도심에서 목줄에 묶여 사는 놈들보다 행복한 놈들이다. 도심에 사는 녀석들은 인간이 만든 규칙 내에서 살아가야 한다. 규칙을 어기고 자유를 찾는 순간 도심에서는 위험이 따른다. 그것을 어긴 녀석들은 대부분 문명의 이기에 의해 죽임을 당한다. 


Comment +0

내가 청소년 시절을 보냈던 곳에도 고분은 있었다. 유소년기의 기억으로는 거인무덤으로 불렸다. 거인무덤이 있었고, 거인 발자국도 있었다. 그것이 가야시대의 고분이었고, 공룡발자국이었다는 사실은 성장을 한 후 알게 된 사실이다. 복원이 된 지금에서야 그곳은 고분이 되었고, 공룡화석지가 되었다. 

유적에 대한 관심은 많지만, 전문적으로 배우고 탐구하지 못한 탓에 고분은 나에게 옛사람들의 삶과 당대의 사건들을 돌이켜 보는 역할만 한다. 내가 선 이곳에서 벌어졌을 옛 이야기들. 그 속에는 순장을 기다리며 죽음을 앞 둔 소녀의 두려움과 권력과 힘의 논리에 의해 지배당했을 민중의 아픔이 있다. 
 

함안박물관 전경입니다.

함안 아라가야 고분군


경남 함안군 도향리와 말산리 일대 야산 구릉지에는 남북으로 2km 이상 대형 고분 40여기 등, 총 153기가 밀집되어 있다. 전국 최대의 고분지역이리라고도 불린다. 이들 모두 신라에 의해 멸망했던 아라가야의 유적들이다. 이곳 역시 스쳐지나가며 직접 가보지를 못한 곳이다. 

13일 촬영차 함안군을 방문한 그날은 시간을 내어 고분을 향했다. 함안 박물관을 거쳐 오르는 길이다. 고분에 오르고 난 이후에 안 사실이지만 그곳은 함안군청 뒤편의 야산이기도 했다.
 

차도와 접한 고인돌은 내려오는 길에 찾기로 하고 현대식 건물 앞에 차를 세운다. 함안 문화원이다. 문화원다운 자태로 위풍을 자랑하고 있다. 그 뒤편으로는 고분들이 이어져 있다. 그길로 오르면 8호 고분을 먼저 접하게 된다. 
 

고분 주위를 둘러보며 옛사람들의 이야기를 상상한다. 지금 멈춰선 이 공간에서 벌어졌을 옛사람들의 삶, 각가지의 사연들. 순장을 당하는 소녀는 어떤 모습으로 이곳에 있었는지. 그는 자신의 죽음을 어떻게 알고나 있었는지. 자식을 죽음으로 내몰아야 하는 부모의 심정은 어떠했는지가 궁금해진다. 멀리로 보이는 저 산의 능선과 펼쳐진 들녘은 4세기 당대와 같은 모습인지도 궁금하기는 마찬가지다. 
 

옛 고분을 곁에 두고 상념에 빠지며 호적이 걷는 길이 좋다. 오르는 길은 흙을 밟지 않도록 도로가 포장되어 있다. 주변경관도 공원처럼 정리가 되어 있다. 
 

함안 아라가야 1호 고분

함안 문화원 뒤로 펼쳐진 억새무리


1호 고분을 찾는 길은 다시 산 아래로 내려가야 한다. 내려가는 길은 도심에서 볼 수 없는 정겨움이 있다. 양 옆으로 대나무가 있고, 가시나무가 있고, 낙엽에 싸인 숲의 고요함이 있다. 드문드문 고분을 향해 오르는 사람들과 마주친다. 
 

외떨어진 1호 고분은 왠지 방치된 느낌이 든다. 고분을 보호하기 위한 흔한 구조물도 없다. 자연 상태로 방치하는 것이 좋을 수도 있다. 그런데 방치된 듯한 아쉬움은 어쩔 수 없다.
 

능선의 정상에서 바라본 고분군의 모습은 아스라한 느낌을 준다. 당대의 풍경은 지금의 느낌과 또 어떻게 다를까? 넓게 정리된 주변의 잔디는 비록 계절속에 그 색깔을 잃었어도 단아한 느낌을 주기에는 충분하다. 
 

사람 키의 몇 곱절 높이의 고분은 겉으로 경이로움과 신비로움의 대상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동원돼 고분을 만들었을 테다. 고분은 당대 실세들의 힘과 권력의 상징으로 위용을 자랑한다. 현대에서도 그 웅장함과 문화적 가치가 먼저 기억된다. 그러나 이들을 위해 힘겨운 노역을 해야 했던 민중들의 아픔이 역사의 근간이다. 역사는 가진 자의 역사라고 했다. 그때도 사람들은 권력과 힘이 있는 곳으로만 모였을까?
 

12호 고분(?)에는 삼각모양의 콘크리트 구조물과 그곳에 세웠을 구조물의 흔적이 있다. 잘라낸 쇳조각 모양을 보고 일제국시대의 흔적이라고 짐작해 본다. 수많은 문화재와 유서 깊은 곳에 일제국주의는 민족을 맥을 끓기 위해 쇠말뚝을 박았다. 
 

줄지어선 고분을 따라 걷기 시작한다. 주민들이 석양을 바라보며 가로로 앉아 여가를 즐기는 모습이 이채롭다. 저렇듯 여유로운 삶의 모습은 현대인들에게는 쉽지 않다. 오직 이곳에서만 가능하다는 생각도 든다. 
 

함안 아라가야 고분

고분에서 석양을 바라보며 여가를 즐기는 시민들

놀이터가 되어 버린 고분. 몇 기의 고분에는 길이 나있다.


몇 기의 고분을 지나면서 더 이상의 걷기를 포기하며 발길을 돌린다. 운동을 한답시고 발목에 채워둔 모래주머니를 떼는 것을 잊어버렸다. 제대로 운동한 셈이다. 지나치며 나타나는 고분들의 둘레를 걷는다. 이 고분들이 만들어지기 까지 얼마의 세월과 얼마의 사람들이 필요했을까. 
 

특이하게 몇 기의 고분에는 위로부터 아래로 줄이 내려져 있다. 고교시절 두발 단속을 당한 이의 머리모양이다. 눈살이 찌푸려진다. 사람이 오르내리며 생긴 흔적이다. 고분을 보호하는 테두리가 없어 자연스러움이 좋았지만, 사람들은 즐기는 방법을 모른다. 

멀리로 한 어린이가 고분의 정상에서 괴성을 지르며 아래로 미끄럼을 타고 있다. 그 아래로 부모는 즐거운 미소만을 짓고 있다.

Comment +5

  • 2009.12.15 19:50

    비밀댓글입니다

    • 오랜만에 뵙네요. 잘 지내시죠? 함안문화원이 맞군요. 이게 공식명인듯 합니다. 금송도 있었군요. 머릴 숙이고 걷는 버릇이 있어 미처 보지를 못한 듯 합니다. 그리고 갈대와 억새... 식물종에 익숙하지 못한지라 너그러이 이해 바랍니다. ^^;

  • 오랜만에 글을 올렸군. 그동안 돈은 좀 벌었을까? 바쁜 일 끝났으면 블공에도 좀 나오지...

  • 탕탕탕 2009.12.16 12:51 신고

    좋은 사진과 글 잘 감상하고 갑니다.
    하나만 지적하자면 님이 사진과 글에서 언급한 함안문화원은
    문화원이 아니고 함안박물관입니다.
    수정을 하시면 보다 정확한 설명이 될 듯 합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비극적 죽음을 선택했던 봉하마을의 밤은 고요하고 아름다웠다. 민주화와 통일을 갈망하던 두 전직 대통령을 나란히 보내야 하는 잔인한 2009년 8월의 밤에 찾은 노 전 대통령의 묘지에는 한 줄기 빛이 내린다.  

국장을 맞아 봉하마을에 마련된 김대중 전 대통령의 분향소가 보인다. 노 전 대통령의 분향소가 마련됐던 바로 그 자리다. 몇 차례 취재를 위해 이곳을 찾았지만 정작 노 전 대통령의 유해가 안치된 묘소는 제대로 보지를 못했다. 그가 생전에 새벽을 맞이하며 올랐던 봉화산 등산로 역시 올라 보지를 못했다. 너무 많은 사람이 모인 까닭이었다. 인파가 모인 곳을 한가로이 걸으며 상념에 빠지기란 불가능해서다.

노 전 대통령의 묘소

여름밤 늦은 시각에 묘소를 찾은 이들

묘소앞에는 노 전 대통령의 생전 사진이 활짝 웃고 있다.

봉하마을 노무현 전 대통령 묘소


늦은 여름밤, 묘지 앞에서 밀려오는 후회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서거로 인해 봉하마을에 마련된 김 전 대통령의 분향소를 지나 차를 세운다. 노 전 대통령의 사저를 곧 지난 앞이다. 그 곳 멀지않은 곳에 한 줄기 빛이 보인다. 3달 전에 ‘작은 비석하나만 만들어 달라’는 유언을 남기며 세상을 떠나버린 노무현 전 대통령의 묘지이다.

밤 11시가 가까워지는 무렵에도 한 무리의 추모객이 모여 있다. 한 여성은 묘지에 둔 사진을 감싸 쥐고 손수건으로 닦아 내고 있다. 한 남성은 묘지의 석판을 어루만지며 뭐라 말하고 있다. 가까이 다가서니 생전 모습을 담은 사진 앞에는 담배 연기가 가늘게 오르고 있다. 삶과 죽음의 경계를 앞두고 당신께서 마지막으로 찾았다던 담배의 안타까움이 떠오른다. 일행은 한 동안 묘소주위에 서서 절을 올리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사진에 담긴 활짝 웃는 모습은 세상 근심을 잊은 듯 정겹게 다가온다. 대통령직을 마치고 고향인 봉하마을로 돌아와 ‘속이 시원하다’고 외치며 행복해 하던 대통령의 모습이다. 정치를 떠나 고향에서 한 농부로  남은 여생을 살려고 했던 소박함도 묻어 있다.

사진을 보며 회상에 잠기는 순간 때늦은 후회가 밀려온다. 

노 전 대통령이 임기를 마치고 봉화마을로 돌아온 후 1주일이 지나는 시점에 그에게 한 장의 DVD를 보낸 적이 있다. 2006년 포항건설노조의 투쟁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였다. 그 과정에서 비참하게 목숨을 잃은 하중근 노동자에 대한 진실을 꼭 알리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 내면으로는 원망도 담겨 있었다. 노 전 대통령이 보았는지는 모르지만, 오늘 묘지 앞에서는 후회스럽다. 이렇게 될 줄 알았다면 차라리 보내지 않았으면 좋았을 걸. 괜한 짓을 했다는 생각이 든다. 자연인으로 돌아 간 당신께 못할 짓을 한 것 같아 죄스럽다.

정토원으로 향하는 길

정토원 수광사 전경


봉화산 정토원으로 오른 길

봉화산을 오르면서 만난 야생고양이


봉화산 정토원 오르는 길 

묘지 넘어 보이는 산등성이에는 불빛이 길이로 펼쳐져 있다. 빛이 늘어진 방향으로 보아 정토원으로 가는 길이다. 그냥 돌아갈까 하다가 마음을 되짚는다. 지척이지만 다시 오지 못할 수도 있겠다 싶어서다. 
 
봉화산을 오르는 길은 돌계단과 나무계단으로 만들어져 있다. 자연 상태라면 꽤 비탈진 길이다. 발걸음을 옮기며 노 전 대통령의 생전에 만들어진 길이었으면 하는 바람이 인다. 알려졌듯이 이 길은 노 전 대통령이 하루를 시작하며 이른 아침에 걷던 길이다. 먼저 세상을 떠난 이를 생각하며 걷기에는 그 당시와 같이 보존된 길이 좋다.

험난했던 정치를 떠나 고향으로 돌아온 그는 처음에는 가벼운 마음으로 이 길을 걸으며 하늘과 숲을 보았을 것이다. 하지만 무심한 세상이 그를 짓누르면서 점차 땅을 보며 걷은 일이 많아졌을 것이다. 어쩌면 그가 하늘과 숲을  마지막으로 바라본 때는 부엉이 바위에서 몸을 던지는 그 순간이 아니었을까. 나도 자꾸만 땅을 바라보며 걷는다. 중간 중간 나타나는 이정표가 갈 길을 알려준다.

중간 정도 올랐을까. 마애석불(?) 암벽화가 있는 곳에서 잠깐 발길을 멈춘다. 암벽화를 찾아보았지만 어둠 탓에 찾을 수가 없다. 한켠 바위 위에서 이 모습을 내려다보고 있는 이가 있다. 야생 고양이다. 녀석은 한 동안이나 쳐다보고 있다가 어둠속으로 사라진다.

부엉이 바위의 한 부분에 이르면서 아래에서 흐르는 물소리가 적막을 깨운다. 순간 당신께서 마지막으로 선 곳이 어딜까 싶어 사방을 둘러본다. 어둠에 궁금증만 들뿐 알 수가 없다. 멀리로 봉화마을과 그 너머 산 정상위에는 수많은 별들이 펼쳐진다. 당신께서 본 마지막 세상은 일출이 든 풍경이겠다는 상념도 든다. 

그 위쪽으로 길은 정토원과 봉화산 등산로로 나누어진다. 정토원은 100미터 남짓한 거리를 두고 있는 모양이다. 몸에 베이는 땀을 씻어 주는 산바람을 맞으며 정토원에 도착한다. 그곳 입구에는 강아지 두 마리가 불청객을 맞는다. 한 놈은 일어나 다가오는 반면, 한 놈은 눈짓만 주고 있다.

한 여름 밤, 늦은 시각의 정토원에는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 땀을 씻겨주려는 듯 산자락의 바람만이 계속 밀려오고 있다. 수광전도 침묵에 들었다. 희미한 불빛만이 어둠을 밝히고 있다.

수광전 안에서는 두 전직 대통령의 영정이 나란히 앉아 세상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테다. 감히 문을 열지 못한다. 그저 떨어져 수광전의 외형만 카메라에 담는다. 그 앞으로 마당에는 추모객들이 남긴 방명록이 펼쳐져 있다. 모두들 하나같은 마음을 빼곡이 새겼다.  

수광전 앞으로는 아래로 내려선 돌계단이 짧게 자리하고 있다. 그곳을 내려서면 부처상이 나타난다.  석불상은 어둠과 조명이 어우러져 묘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그리 오래되지 않아 보이는 석불에는 아쉽게도 설명이 없다.

이제 내려가야 하는 길이다. 카메라 셔터를 누르며 옮기는 발걸음에 무언가가 채인다. 입구에서 먼저 만났던 녀석이다. 그 두 녀석 중 한 녀석이 무슨 이유에선지 계속 따라다니고 있다. 사람을 겁내거나 피하지 않는다. 더러는 발 앞까지 다가와 지켜보기도 한다. 이름이 궁금했지만 녀석에게 물어 볼 수도 없다. 아래의 석상까지 따라 내려온 녀석에게 조바심이 들어 한마디 던진다.

“임마. 이제 그만 따라와”

말을 알아들었을까? 녀석은 신기하게도 바닥에 주저앉아 한 여름의 불청객을 배웅한다. 짧게 이어진 숲을 지나 부엉이 바위쯤에서 본 세상은 잡다한 세상사를 잊고 적막속에 빠져 있다.  

정토원 수광전 앞마당의 방명록

정토원에 있는 석불

정토원에서 만난 녀석, 녀석은 정토원에서 줄곧 따라 다녔다.

    

봉하마을 묘소를 지키고 있는 전경대원, 24시간을 지키고 있다고 한다.


Comment +69

  • 이전 댓글 더보기
  • jinrich 2009.08.24 08:10 신고

    유언 아닌 유언을 받든답시고 전직대통령을 부랴부랴 화장해서,그것도 국가묘역에 모시는 것이 아니고 시골 봉하마을의 무거운 돌 밑에 계신 분 "노무현 대통령님" 도대체 이현실이 믿기지 않아요.

    노무현대통령님도 국립묘지에 모시고 싶습니다.저 무거운 바위가 님을 짓누르고 계신 것같아 속상합니다.그리고 빨리 시간이 흘러 님이 진정으로 자살을 했는지 사실을 알고싶습니다.

  • 보고싶어요. 2009.08.24 08:48 신고

    아침부터 눈물이 나네요. 정말 다시 한번 보고싶습니다. 진정으로..

  • 사모하는이... 2009.08.24 08:57 신고

    이분 사진만 봐도 왜이리 눈물이 나는지......너무 보고싶습니다....한번 뵙지도 못했지만 노통의 사진과 이름만 들어도 가슴이 메어집니다.....당신이 농사지은 봉하쌀로 밥도 먹어봤지만 왜이리 빨리 가셨는지.....당신이 계시는것만으로도 힘이 났었는데......마지막 보루였던 우리는 그를 지켜주지도 못하고 억울하게 돌아가시게 했습니다....

    우리를 너무 믿으셨나봅니다.......당신 스스로 지켜야 하는것을 ................이기적인 우리들을 너무 굳게 믿으셨습니다....우린 그것도 모르고.....흑흑흑

  • 노무현과 김대중 서거시

    시민들은 그들에게 꽃과 눈물을 던졌지만..

    앞으로...디질..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이명박 일당들한테는.....짱돌을 던지리라!!!!!!!!!!!!!!!!!!!!!!!

  • 노무현과 김대중 서거시

    시민들은 그들에게 꽃과 눈물을 던졌지만..

    앞으로...디질..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이명박 일당들한테는.....짱돌을 던지리라!!!!!!!!!!!!!!!!!!!!!!!

  • 디져야 할 쓰레기들은 왜 이렇게 오래 이땅에 서있냐????

    노무현때..전두환사형수는 안왔었는데..

    김대중때....이 사형수가 왜 왔냐??..씨..팔놈..

    무슨 낮짝으로....왔을까???씨...팔놈..

  • ljk 2009.08.24 09:40 신고

    그렇지 않아도 묘역이 너무 간소해서, 초라해 보이는데
    주변에 나무 한그루 없고,
    상판마저 녹이 슬어서

    이건 일반인의 묘지보다도 못한 느낌입니다.

    도대체 녹슨 상판은 어쩌려고 저리 방치 하는지

    이거 설계하신분은 어찌 생각하는지 묻고 싶네요

    아무리 봐도 이건 아니란 생각이 드는군요.

  • 사랑하는 이.. 2009.08.24 09:56 신고

    그 분은 민주주의의 빛으로 영원이 남으실겁니다.
    저도 이번 30일 노무현대통령님 100제때 봉화마을에 갑니다.
    그 곳을 미리 볼수있어서 감사했습니다.

  • 노무현당신의이름석자만불러도마음속깊은곳부터눈물이고입니다.김대중대통령님의서거로인해노무현당신의모습이더더욱그립습니다.민주주의를너무나사랑하기에약한국민을사랑하신당신이였기에저역시당신을너무나사랑하고지지했던약한국민으로써죽는날까지노무현대통령님그리고김대중대통령님.민주주의를결코잊지않겠습니다.

  • 시민행동=적극투표 2009.08.24 10:09 신고

    역대 대통령중 말로 다 표현못할 후대에 길이 남을 대통령 두분을 보내고 나니 마음이 영 허전합니다.
    하지만 이대로 있을수만은 없습니다...
    시민들의 힘은 무엇으로 보여줄까요?폭력,폭동,시위? 무엇보다 선거로 비혈한 정권을 심판하여 끝장내야 합니다.선거는 어떤 공권력보다 강한 시민의 자발적인 힘입니다.
    다시는 이땅에 그들같이 후안무치한 정권을 탄생시키지 맙시다.후대에 부끄러울 일을 두번 만들면 안되죠.
    지금부터 차근차근 준비해야 합니다.인물을 모으고 시민세력의 힘을 결집시켜야 합니다.
    민주시민 여러분 힘 냅시다!!!

  • 그저 눈물이 흐릅니다..가슴메이도록 그저 눈물이 흐릅니다..언제쯤 이눈물이 멈출까요..너무도 보고싶은 그마음..먼 하늘나라에서도 그마음이 퍼지지않을 까요..두분 대통령님따사한 빛으로 계시리라믿습니다..

  • 그저 눈물이 흐릅니다..가슴메이도록 그저 눈물이 흐릅니다..언제쯤 이눈물이 멈출까요..너무도 보고싶은 그마음..먼 하늘나라에서도 그마음이 퍼지지않을 까요..두분 대통령님따사한 빛으로 계시리라믿습니다..

  • 행복주니 2009.08.24 10:17 신고

    제 가슴에 병이 생겼습니다.
    억장이 무너진다고 표현해얄까요?
    언제나 강건하고 씩씩한 제가 어찌된일인지 노통의 사진만 봐도 눈믈이 줄줄흐릅니다.
    부모가 돌아가셨다고 이리 애통할건지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노통은 부모와는 또 다른 제마음속의 버팀목이였나봅니다.
    이놈의 눈물은 언제 마르려는지 노통사진만 보면 직빵이네요ㅜㅜ
    노통이 봉하마을 초라한 묘지에 남겨진것같아 가슴 아픕니다.
    다른 대통령들과 나란히 묻혔으면 좋겠어요.

  • 지리산 2009.08.24 10:47 신고

    노무현을 찍었고 지지했었다.
    노무현이 국가와 국민을 사랑하는 방식이 좋아서 였다!!
    그런데 어느날 그 노무현은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도덕성파탄자 아끼히로가 노무현 네 넘도 도덕성에서 오십보 백보 아니냐는
    개인적 자위와 자족을 위해 불법적인 포괄적 살인에 의한 것이였다!!

    그런데 노무현은 왜 자살을 했는가?
    국가를 위해서 자살하지는 않은 것 같고 결국 개인적인 문제 가족적인 문제로
    일국의 대통령을 했던 분이 자살을 하다니?

    이건 아니였다!!!!
    국가와 국민을 위해 일국의 대통령을 했던 분이 자살이라는 형식은
    애국심에 치명적인 결함이 있었음을 강변하는 것이 된것이다!

    결국 자기를 만들어 준 민주당을 깨고 분당으로 배은망덕이란 소리 들으모
    총선에서 일시적인 이득은 취했으나
    그러나 엄청난 정치적 부담으로 정권 재창출은 아예 생각도 못했고
    노명박이라고 까지 불리우며 집권 때 악의 축 삼성과 국정농간 까지 했던 것

    이런 면으로 볼 때 노무현에 대한 맹목적인 평가에 제동이 걸림은 어쩔 수 없다!
    노무현은 물론 당신 스스로 애기 하셨다시피 직위를 이용해 돈 한 푼 받지 안았다는 건 사실이고
    도덕성은 청렴했다는 것은 의심하지 않는다!
    민주의 화신 김대중이란 거목이 돌아가신 이때 노무현님이라도 있었어야 했는데
    없는 이 현실에 애국자 노무현에 대한 원망과 서운함에
    몇 자 적어 봤다!!!

  • 부엉이 2009.08.24 11:09 신고

    님은 가셨지만 저는 님을 아직도 보내드리지 못한 것 같습니다.
    님의 사진을 볼때면 울컥하는 이 마음은 언제나 없어지려나

  • BlogIcon end 2009.08.24 11:52 신고

    김대중대통령님의 뒤를 이어 최소한 20년은 노무현대통령님이 버텨주셨으면 뒤를이어 민주주의를 이어갈
    후대가 나왔을텐데 ~~~에고 이제는 누가 이나라 민주주의를 위해 자신을 희생할꼬 ㅠㅠ

  • 또 눈물나게 만드시는 ㅠㅠ

  • 안녕하세요 보안세상입니다.


    그분은 정말 가셨군요
    요새 갑자기 바빠진 제 자신을 돌보느라
    세상일에 잠시 어두웠었는데

    어느새 시간은 지나고
    저 자신도 훌쩍 자라 버린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분은 가셨습니다

  • 노짱 2009.08.24 18:04 신고

    보고싶어요. 사랑합니다.

  • 09 2009.08.25 07:55 신고

    노무현 전대통령과 김대중 전대통령이 같은 선상에 놓인다는건 옳지 않다고 봅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재직 시 부패사건 수사 중에 자살을 한 사람입니다.

    물론 이명박 정부의 치졸함에 의해 들춰진 소규모 비리 사건이었지만, 그 외에 더 많은 큰 비리 사건들을 예상해 볼 수 있고 그에 직간접 관련이 있다는 걸 예상했을 때, 노전통이 말한 "청렴한 이미지" 외에 남은 게 없다는 말과 자살이 연결이 되는 대목입니다. 다 발가 벗겨지면 본인이 말한 거와는 정반대로 흘러 갔을 테니까요. 그리고, 그는 분명 "개인적 목적으로 돈을 받지 않았다"고 했지 "돈을 받지 않았다"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돈을 받았다는 유추가 가능해지는데 과연 개인적인 목적이 아닌 다른 목적이란 과연 또 무엇일까요?

    노전통은 실체에 비해 자살과 이명박 정부에 대한 거부감 등으로 인해 필요 이상의 성인으로 치장이 된 듯 해서 영 입맛이 씁니다. 아래에서 가장 높은 곳까지 힘들게 가신 분이라 연민을 느끼지만, 이 정도로 존경을 받아야 분이라는데는 좀 다른 의견을 가지게 됩니다.

    그리고, 사후에 있어도 두 전직 대통령이 남긴 유산은 차이가 큽니다. 노전통은 다시 한번 사회를 두 부류로 나눠 놓으셨고, 김전통은 다시 한번 남북교류의 기회를 제공했으니 말입니다.

얼음골로 잘 알려진 밀양 산내면 방향에 집회 취재를 하러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표충사에 잠깐 들렀습니다. 산내면에서 산봉우리를 하나 넘으면 바로 사명대사 호국성지로 유명한 표충사가 있는 단장면입니다.


이곳은 오래전 학창시절에 두 번 와 본적이 있는 곳이기도 하고, 먼 기억속으로 남아있는 옛 연인과의 추억도 남겨진 곳이기도 합니다. 아마도 그 시절의 기억이 이곳을 찾게 만들었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학창시절에도 여행을 좋아 했지만 많이 다니지는 못했습니다. 그 당시 많이 찾았던 곳이 사찰이기도 했습니다.


다행히 이곳은 크게 변한 것이 없어 보입니다. 그래서 옛 기억을 더듬는데 적당한 곳이기도 합니다. 덕분에 오랜만에 한동안 잊고 지냈던 먼 기억을 마음껏 떠 올릴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표충사 입구에서 부터 옛 사람들의 모습이 떠오르기 시작합니다. 그 속에는 옛 연인의 모습도 있습니다. 계단을 오르면서도, 영정약수에서 목을 축이면서도 옛 사람의 자태가 느껴집니다.


카메라로 옛 기억을 담는 동안에 사천왕문 안에 있는 삼청석탑 주위를 돌고 있는 여성이 눈에 들어옵니다. 대광전 주위를 돌며 깊은 생각에 잠겨 있던 그 여성입니다. 무엇인가를 골똘하게 생각하며 나적하게 걷는 모습에 감성이 움직입니다.  그 모습에 먼 어느 날의 같은 그림이 교차되면서 잠시 착시현상이 일어납니다. 

과거의 어느 이도 저렇게 석탑 주위를 조용히 돌곤 했습니다.


그때의 사람들이 어떤 모습으로 사는지 몹시 궁금해지기도 합니다. 이곳을 함께 거닐었던 옛 연인도 궁금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그 시절에 대한 아련한 향수가 이는 것은 이제는 되돌아갈 수 없는 시간에 대한 아쉬움일 겁니다.





먼 산자락을 보다가 문득 사찰 내 나무에 새순이 올라 있는 것이 보입니다. 표충사에 봄이 찾아오고 있는 가 봅니다. 새순을 보면서 개똥철학도 생깁니다. '시간을 넘어서 계절은 돌아오지만 삶의 시간은 되돌아오지 않는다'.  이래서 절에 오래 있으면 안 되나 봅니다.


한 동안 접어들었던 옛 시간의 기억을 다시 사찰에 남겨두고 현실로 되돌아옵니다. 또 먼 훗날에 다시 이곳을 찾을 때에도 같은 상념에 젖게 될 것입니다. 돌아오는 길에서 ‘추억은 추억으로 남아 있을 때에 아름답다’는 말을 떠올립니다. 누가 한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진리입니다.
 

Comment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