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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

옆집 강아지 ‘복실이’와의 이별

애들이 컴퓨터가 고장 났다고 성화를 했다. 녀석들은 새로 사달라고 조른다. 오래되어서 고물이라는 주장이다. 워낙 주기적으로 컴퓨터를 망가뜨리는 녀석들이라 외면하다가 사달라는 말에 어쩔 수 없이 시간을 내어 고쳐보기로 했다.


상태를 보니 아마도 메모리 하나가 문제인 모양이다. 고장 난 메모리를 빼내고 여유분으로 교체를 한 다음 윈도우 설치를 끝냈다. 그런데 메인보드 설치 프로그램을 찾으려 폴더를 뒤지다가 우연히 반갑게 눈에 들어오는 사진이 있다. 옆집 강아지였던 ‘복실이’이다. 몇 번을 찾았던 사진인데 여기에 복사해 놓은 사실을 깜박 잊고 있었다.


"복실이 사진이 여기에 있네... 이놈 우리가 사서 데려올까?"


난 여전히 이놈에게 정이 남아 있다. 정확히는 안타까움이다. 녀석은 지난해 5월께 옆집으로 왔다. 젖먹이 상태였다. 세상에 태어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엄마의 곁을 떠나온 것이다. 주인은 그 놈을 풍산개라고 했다.


복실이 녀석이 어릴 적 모습입니다. 이 놈이 성장한 모습을 촬영하지 못한 것이 안타깝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애완용 동물로 마음의 상처를 입어왔던 까닭에 성장해서는 키우지 않았다. 애들에게도 같은 상처를 주기 싫기도 했다. 하지만 그 녀석과의 인연은 어느 날 불현듯 시작됐다. 주인이 집을 비울 때면 배고파하는 녀석에게 우유를 가져 준 것이 첫 인연이 됐다. 애들도 녀석을 무척이나 귀여워했지만 녀석도 사람을 무척이나 따랐다.


여름이 되면서 녀석과 며칠을 함께 보내는 일이 생겼다. 옆집 주인이 여름휴가를 가면서 녀석을 우리에게 맡긴 것이다. 그 며칠사이 많은 정이 들었다.  


집으로 온 복실이 녀석은 방안으로 들어오려고 무던히 애를 썼다. 어미 없는 녀석이라 사람의 손길을 너무 좋아했다. 그래서 짝지가 없는 동안 몰래 방으로 들였다가 매번 혼이 났다. 밥을 먹으면서도 녀석에게 먹이를 주다가 또 혼이 났다.


그 놈의 장난기에는 모두가 즐거워했다. 잠버릇도 우스꽝스러운 녀석이었다. 네 다리를  큰 대자 모양으로 활짝 펼쳐 놓고 바닥에서 잠을 자는 엉뚱한 녀석이었다. 집을 나설 때면 계단입구까지 따라와 못내 아쉬워 짖는 녀석이기도 했다. 반대로 집으로 돌아오면 기뻐서 껑충 껑충 날뛰며 반겨 주던 녀석이었다.


그 이후로 녀석은 자기 주인집보다 우리 집에 와 있는 때가 많았다. 집이 비어있을 즈음이면 대부분의 시간을 우리집 출입문 앞에서 놀거나 잠들어 있었다. 이 때문에 우리가 옆집 눈치를 봐야 할 정도가 되기도 했다. 때로 옆집 주인이 복실이를 타박할 때면 노골적으로 불쾌감을 나타내기도 했다.


사람의 손길을 너무 좋아했던 녀석입니다.



녀석은 점차 성장하면서 본능인 야성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이빨도 제법 날카로워졌다. 장난스럽게 손을 물곤 했던 녀석인데 상처를 낼 정도가 되었다. 장난기가 많았던 녀석이라 집안을 헤집고 다니며 어지럽혀 놓는 일도 다반사였다. 화분의 화초나 식물을 발로 파헤치고 뒤집어 놓아 야단을 맞기도 했다. 힘이 부쩍 강해진 녀석을 애들은 감당하지 못했다.


결국 녀석은 주인으로부터 목줄을 채였다. 그 때부터 녀석의 울부짖음과 몸부림이 시작됐다. 출퇴근 시간 때면 녀석은 사람을 보고 애처롭게 짖어댔다. 그런 녀석을 외면하고 나오는 생활도 시작됐다. 녀석은 눈길만 줘도 짖기 시작했다. 사람의 손길이 그리웠던 것이다. 녀석이 안쓰러워 옆집 사람이 없을 때면 잠시 놀아주기도 했다. 그럴 때면 녀석은 여지없이 흥분했고 그로인해 거친 행동을 보였다. 갑자기 변해 버린 환경을 녀석은 이해하지 못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몇 개월 사이에 훌쩍 성장해 버린 녀석은 더 이상 강아지가 아니라 맹견다운 자태를 하고 있었다. 대견하게도 그 때부터는 짖지도 않았다. 그러나 애처로운 눈빛으로 사람을 바라보는 일은 계속되고 있었다. 어느 때부턴가 녀석은 2층에서 난간 사이로 난 구멍을 통해 머리를 내밀고 사람을 쳐다보기 시작했다. 가느다란 신음 소리를 내기도 했다. 그 놈의 애처로운 눈빛에 손을 흔들어주는 일도 어느 듯 습관처럼 반복됐다. 녀석은 그때만큼은 단 한번 짧은 목소리로 우렁차게 짖었다.  


마음으로는 녀석을 자유롭게 해주고 싶었다. 산으로 거리로 데리고 가서 맘껏 뛰어 놀게도 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럴 수가 없었다. 내게 그럴 권리가 없었다. 가끔은 풀어놓아도 될 법한데 묶어만 두는 주인이 야속했다. 녀석에게는 마음으로만 정을 줘야 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던 어느 날 녀석은 보이지 않았다. 옆 집 주인이 복실이를 시골로 보냈다는 말을 들은 것은 뽀로통한 얼굴을 한 애들에게 서다. 그날은 괜스레 화가 나 옆집을 원망했다. 차라리 우리가 녀석을 사버릴 걸 하는 후회도 들었다. 이후로도 한동안 슬픈 눈짓을 하고 있던 녀석이 아른거려 애잔하기도 했다.


담배를 태우면서 녀석이 있던 자리로 눈길이 가는 일도 1년여의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줄어들었다. 녀석은 그렇게 점차 잊어져갔다. 어린 시절에 남은 기억과 마찬가지로 순간순간 떠오르는 안타까운 사연으로 남기 시작한 것이다.


장난기가 발동한 녀석으로 인해 화초가 다 사라졌습니다.



‘복실이를 사서 데려오자’는 엉뚱한 말에 같이 사는 짝지는 무표정하게 ‘이제 못 찾는다’고 했다.


옆집의 시골 친정으로 보내진 복실이는 그 집에서도 결국 개장수에게 팔렸다는 것이다. 그 순간 가슴 한편이 무너졌다. 녀석이 죽었을 거라는 생각이 든 것도 그때였다. 잊었다 했는데 녀석은 아직도 기억의 한편에 슬픈 눈빛으로 남아 있었다.  


복실이가 없어진 이후 옆집에 도둑이 들었다. 그래서인지 몇 주 전에 다시 강아지를 들여 놓았다. 이번에도 복실이와 비슷한 녀석이다. 여전히 젖먹이 녀석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제는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다. 눈길마저도 가지 않는다. 같은 아픔을 다시 겪기 싫은 이유일 것이다. 이별이란 것은 여전히 사람과 동물을 가리지 않고 가슴을 짓누르는 짙은 아픔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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