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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

주차쪽지, 그 작은 배려의 감동


작은 배려는 공동체를 아름답게 한다.

배려있는 행동은 상대방을 감동시킨다. 그 감동조차 느끼지 못하고 자신의 권리처럼 당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삶은 불행할 수밖에 없다.  

저녁시간 도로를 혼잡하게 만드는 퇴근시간 즈음. 낯선 전화번호를 띄운 손전화가 바르르 뜬다. 바쁜 시간에 울리는 전화는 정말 성가시다. 
 

“여보세요...” “네...”
 

굵은 목소리를 가진 남성의 전화다. 목소리만으로도 50대 이상의 나이인 듯하다. 전화의 요지는 이랬다. 자신이 주차를 했는데 차를 너무 가까이 붙여서 세워놓았으니 나중에 차를 뺄 때 전화를 해 달라는 것이다. 순간 무슨 말인지 언득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네??” 
 

전화기 속의 굶은 목소리는 다시 설명을 한다. 그제서야 무슨 말인지 확연히 알아들을 수 있었다. 자신의 집 앞에 세워둔 내 차를 빼달라는 소린가 했지만 그게 아니었다. 그 반대로 자신이 차를 너무 붙여서 세워놓았다고 미안하다고 연락을 한 것이다. 
 

순간 차를 골목길 담벼락에 세워두고 온 기억이 났다. 전화의 주인공은 바로 그 골목 담 벽의 집주인이었다.
 

“이런...죄송합니다. 제가 차를 어중간하게 세운 모양이네요. 죄송합니다”
“괜찮습니다. 나중에 차 뺄 때 이 번호로 전화주세요. 미안합니다.” 

보편의 인물이라면 자신의 집 앞에 주차한 차량에 대해 먼저 불쾌감을 느낀다. 그것도 퇴근시간이다. 차를 바짝 붙여서 출발할 때 애를 먹도록 앙갚음을 하는 이도 있다. 더러는 주차문제로 시비가 붙어 폭행사건으로 비하되기도 한다. 
 

그 배려에 미안한 마음이 자연스럽게 밀려온다. 감사하다는 말로 통화는 짧게 끝났다. 그리고 통화에 대한 기억은 곧 잊어버렸다. 
 

신라 문무대왕 수중릉에서 본 일출. 일출은 마음을 비울 때 더욱 아름다워 보인다.


밤 10시가 넘는 시각. 퇴근을 하면서 습관적으로 차를 찾는다. 주차할 곳이 없어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이곳저곳 세우다 보면 주차를 한 위치에 대한 기억이 사라져 난감할 때가 많다. 그 순간 전화 통화를 했던 기억이 났다. 

가로등으로도 조금은 어두운 골목길에는 승용차들이 양편으로 가지런하게 줄지어 서 있다. 잠시 내려가니 검정색 세단의 고급 승용차 무리속에서 어울리지 않는 차가 보인다. 녹슬고 먼지로 덮여 주변과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다. 
 

가까이 가서 앞뒤를 보니 차를 빼 낼 수 없는 거리다. 앞 차와 뒤차의 간격이 약 30cm를 두고 있다. 이 시간에 전화를 해야 하나... 미안스럽기도 하다. 전화기를 만지작거리며 망설이는 동안 운전석 문짝에 하얀 메모지가 걸려 있는 것이 보인다. 
 

“차 빼실려면 대문 초인종이나 019-000-0000으로 연락주세요. 미안합니다”
 

차를 움직이지도 못할 정로도 붙여 세워놓으면 짜증이 먼저 나는 것은 자연스럽다. 급할때는 욕이 먼저 나오는 법이다. 그런데 오히려 미안하다. 소방도로의 소유권은 개인이 가지고 있지 않아 사실상 미안할 이유는 없다. 그런데도 미안하다. 늦은 시간에 차 빼달라고 전화하기란 더욱 미안하다. 그래도 2시간 정도 일찍 나와서 다행이다. 여느 때처럼 밤 12시가 넘는 시각에 퇴근을 했더라면 참으로 난감했을 것이다. 
 

초인종을 누를까 하다가 혹시 다른 집이면 어떡하나 해서 전화를 걸었다. 오랫동안 벨이 울린 다음에야 굵은 목소리의 소유자는 나즉한 음성으로 전화를 받는다. 잠에 들었던 것일까. 난감해진다.
 

짧은 통화가 끝난 후 굵은 목소리의 소유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50대 초반으로 보이는 남성이다. 잠옷을 입고 있는 것으로 봐서 잠에 들었다 깬 모습이다.
 

“아... 정말 죄송합니다. 일찍 차를 빼야 했는데...”
“괜찮습니다. 공간이 없으니 어쩔 수 없죠...” 

말은 그렇게 해도 불편한 기색은 무거운 몸에서 보인다. 그래도 괜찮다는 표정을 하고 있는 그다. 그의 차량 후미를 봐 주면서 약간의 공간을 더 확보한 다음에야 내 차를 출발할 수 있었다. 그는 그 자리에 다시 여유 있게 주차를 한다. 
 

차를 움직이면서도 내내 미안한 마음이 든다. 한편으로 참 좋은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도 스민다. 그러고 보니 한동안 쌍용차 사태를 지켜보면서 너무 메마른 곳만 보았다는 생각도 든다. 나 자신도 메말라 있었나하는 생각도 인다. 그래서인지 이 순간 다가오는 감동은 몇 배로 크다. 
 

지금만큼은 사회가 훈훈해 보인다. 작은 배려가 함께 살아가야 하는 공동체를 더욱 여유롭게 만든다는 것을 굵은 목소리를 소유한 그로부터 다시금 깨닫게 되는 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