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메라 촬영은 안됩니다”
16일 다문화가정들로 구성된 공연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성산아트홀 소극장으로 들어서는 순간 예술관 소속의 공연도우미가 가로막는다. 어깨에 둘러 맨 카메라 가방을 보고 하는 소리다.
무슨 소린가 싶어 되물었다. 그의 대답은 공연에 대한 저작권 문제도 있고 공연장에서는 원래 촬영이 허가되지 않는다는 요지의 말이었다. 그 규정은 성산아트홀 자체의 규정이라고 했다. 또 행사 주최측과 합의된 사항이라고도 했다. 주최측에 허가를 받으면 가능하다고 덧붙인다.
언뜻 이해가 되지 않았다. 저작권이라니. 나는 상업성을 우선시 하지 않는 결혼이민여성들의 문화공연으로 알고 있었다. 내가 잘못알고 왔나 해서 더 이상 따지지 않고 공연장으로 들어섰다. 어차피 취재를 위해 방문한 것도 아니었기에 굳이 사진까지 필요하지 않았기도 했다. 내가 이 행사를 찾은 이유는 결혼이민여성들을 소재로 한 다큐멘터리 제작을 위한 사전정보 취득이 그 목적이었다.
행사의 명칭은 ‘사람과 사람이 만드는 꿈’이란 주제의 다문화가족 우수동아리 발표회. 다문화가족지원센터가 주최하고 경상남도가 후원하는 의미있는 행사이기도 했다.
문화공연으로만 알고 왔는데 공연보다는 행사의 성격이 강했다. 정확한 팩트를 알려면 역시 현장을 찾아야 한다. 국민의례로부터 시작된 행사는 축사와 우수동아리 시상식을 거쳐 사물놀이, 연극, 댄스, 모듬북, 합창 순으로 공연이 진행됐다. 전체 예정된 시간은 1시간 30분. 공연 이후에는 관객과의 소통자리도 마련됐다.
의미있는 행사에 내가 불편함을 느끼기 시작한 것은 공연에 앞서 시작된 식전행사부터다.
축사에 이어 우수동아리 시상식이 진행되면서 좌석을 대부분 메운 결혼이민여성들의 손에서 일명 ‘똑딱이’라고 불리는 디지털카메라가 등장했다. 더러는 휴대폰을 이용해 친구이자 이웃의 시상 장면을 촬영하려 했다. 배우자로 여겨지는 남성들도 보였다.
이 때 유니폼을 입고 허리에 부착한 무전기와 하얀 줄이 귀에 걸린 이어폰을 착용한 공연도우미(?)가 좌석으로 내려가 이들을 저지한다. 표정과 치장에서 공연도우미보다는 경호원에 가까워 보일 정도다. 뒤를 돌아보니 좌석 뒤로 줄지어 선 3~4명의 남녀는 굳은 얼굴로 좌석을 감시하듯 응시하고 있다. 감시당하는 느낌을 어쩔 수 없다.
그 모습을 보면서 불편했던 건 오히려 도우미였지 카메라를 든 관람객이 아니었다. 대부분 여성인지라 많은 이들이 아이들과 함께 왔고, 때문에 소란도 일었다. 관람예절이 이처럼 엄격하게 적용하려면 8세 이하의 아동들의 입장을 제한해야 했다. 이렇듯 행사의 성격으로 볼 때 공연을 위한 예술관의 엄격한 관람 잣대보다는 그들의 입장과 처지에 맞는 행사가 오히려 자연스럽다.
물론 예술극장에서 공연을 위해서, 또, 타인을 위해 지켜야 할 예절은 분명히 있다. 더러는 창작물에 대한 저작권 문제도 있다. 하지만 이는 공연물의 성격에 따라 규정되어야 할 문제다. 유연성이란 이런 경우에 적용되는 것이 적합하다.
공연 중에 도우미가 통로를 이동하며 카메라를 든 이를 저지하는 모습도 무척 역설적이었다.
공연이 진행되는 와중에도 여전히 사진촬영을 시도하는 이가 있었고 이때마다 도우미는 어김없이 좌석으로 내려섰다. 공연 중에는 좌석을 이동하지 않는 것이 관람예절인 것은 누구나 안다. 관람예절을 권유하기 위해 예술관측이 스스로 관람예절을 어기고 있는 모양새다.
그렇다고 완전히 통제한 것도 아니었다. 공연도중 후레쉬를 터뜨려 공연을 방해한 이도 물론 있었다. 최고의 공연을 약속한다는 예술관의 입장에서는 난처할 사안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은 이날 공간의 분위기로 보아 크게 부담스럽지는 않았다.
공연이 끝난 후 ‘관객과의 소통’ 행사가 진행되는 과정에서도 여전히 카메라에 대한 통제는 계속됐다. 앞서 취재를 나온 지역일간지 사진기자도 통제를 받았다. 물론 그는 기자라는 신분으로 촬영이 가능했다. 그에게 물어보니 불편한 심정은 마찬가지였다. 행사내용으로 보아 굳이 사진촬영을 막을 이유가 없어 보인다는 것이다.
공연 도중의 촬영 금지는 기본적인 예절이어서 엄격한 규정을 이해할 수도 있다. 하지만 공연과 상관없는 행사순서마저도 예술관의 엄격한 공연질서의 잣대를 적용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그것은 공연물의 성격으로 규정되어야 할 문제다.
더군다나 공연장의 예의나 질서문제는 사회자가 관람객에게 이해를 구하는 것이 통상의 절차이다. 주최측이 판단할 문제이지 시설관리자측이 무리하게 개입할 문제는 아닌 것이다. 확인해보니 성산아트홀도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고, 주최측도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성산아트홀은 자체의 규정을 지키려 했고 주최측은 대관의 조건인 이를 받아들여야 했다.
주최측인 다문화가족 지원센터는 허가받지 않은 이에 대한 사진촬영을 불허하는 것으로 협의를 했다고 한다. 이유는 성산아트홀 대관규정이 촬영을 금하고 있었기에 거기에 따른 것이라고 했다. 물론 공연을 방해하지 않으려는 의도도 있었다고 했다.
대관을 위한 조건을 수용한 주최측이 결혼이민여성들에게 사진기념물을 모두 전해 줄지는 모를 일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상식선으로도 이해되지 않는 필요이상의 통제로 인해 불편을 겪은 이들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이용자에게 불편스러울 수 있다면 굳이 성산아트홀을 선택해야 할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최상의 대관시설을 자랑하며 최고의 공연과 전시를 약속하고 있는 성산아트홀의 대관절차나 규약도 역시 문제스럽다. 대관전시 성격과 출연자의 수준을 심의해 가부를 결정한다는 대관절차나 까다로운 대관규정은 한 눈에 보아도 부담스러울 정도다.
대관규정이 까다로운 이유를 모를리 없지만, 일반시민이 자유롭게 이용하기에는 규제가 많다. 결국 유명한 공연물이나 전시만를 위한 규정으로 보일 정도다. 대표적으로 녹음, 녹화등의 규제가 그렇고, 하우스 매니저라 칭한 이의 역활이 그렇다. 대관규약에는 하우스 매니저가 시설운영및 행사진행 감독을 맡게 되어 있다.
이러한 까다로운 규제는 결국 일반시민들의 자유로운 대관이나 이용을 가로 막는다. 최고의 공연물, 품위있는 공연만을 위한 규정으로 보여서다. 규정을 읽어봐도 공연물이나 행사의 성격에 따른 예외의 조치는 없다. 시설물의 보호와 최고의 공연만이 중심이 된 규정들이다.
‘왜?’란 의문으로 곱씹어 보면 이렇게 될 수 있다. 성산아트홀은 시설보호와 엄격한 관람예절만을 강조해 예술관의 권위와 품위를 강요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창원지역의 다른 문화시설에서 이렇게 운영하는 곳은 보지 못했다.). 최고의 공연과 최고의 시설만이 명품 예술관을 만드는 것은 아니다. 내게 문화적 수준이 낮다는 비판이 오면 그대로 받아들이겠다. 사실이기 때문이다.
이날 성산아트홀에서 행사 내내 불편했던 이유는 시민의 재산인 예술관에서 통제된 예술적 질서의 강요를 보았기 때문이다. 그것은 한편으로 문화적 우위의 권력으로 여겨지기도 했고 강요된 권위로도 느껴지기도 했다. 필요이상으로 강제된 질서는 이미 문화가 아니다. 그것은 단지 통제된 질서에 지나지 않는다.
16일 다문화가정들로 구성된 공연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성산아트홀 소극장으로 들어서는 순간 예술관 소속의 공연도우미가 가로막는다. 어깨에 둘러 맨 카메라 가방을 보고 하는 소리다.
무슨 소린가 싶어 되물었다. 그의 대답은 공연에 대한 저작권 문제도 있고 공연장에서는 원래 촬영이 허가되지 않는다는 요지의 말이었다. 그 규정은 성산아트홀 자체의 규정이라고 했다. 또 행사 주최측과 합의된 사항이라고도 했다. 주최측에 허가를 받으면 가능하다고 덧붙인다.
언뜻 이해가 되지 않았다. 저작권이라니. 나는 상업성을 우선시 하지 않는 결혼이민여성들의 문화공연으로 알고 있었다. 내가 잘못알고 왔나 해서 더 이상 따지지 않고 공연장으로 들어섰다. 어차피 취재를 위해 방문한 것도 아니었기에 굳이 사진까지 필요하지 않았기도 했다. 내가 이 행사를 찾은 이유는 결혼이민여성들을 소재로 한 다큐멘터리 제작을 위한 사전정보 취득이 그 목적이었다.
행사의 명칭은 ‘사람과 사람이 만드는 꿈’이란 주제의 다문화가족 우수동아리 발표회. 다문화가족지원센터가 주최하고 경상남도가 후원하는 의미있는 행사이기도 했다.
문화공연으로만 알고 왔는데 공연보다는 행사의 성격이 강했다. 정확한 팩트를 알려면 역시 현장을 찾아야 한다. 국민의례로부터 시작된 행사는 축사와 우수동아리 시상식을 거쳐 사물놀이, 연극, 댄스, 모듬북, 합창 순으로 공연이 진행됐다. 전체 예정된 시간은 1시간 30분. 공연 이후에는 관객과의 소통자리도 마련됐다.
창원시 성산아트홀
의미있는 행사에 내가 불편함을 느끼기 시작한 것은 공연에 앞서 시작된 식전행사부터다.
축사에 이어 우수동아리 시상식이 진행되면서 좌석을 대부분 메운 결혼이민여성들의 손에서 일명 ‘똑딱이’라고 불리는 디지털카메라가 등장했다. 더러는 휴대폰을 이용해 친구이자 이웃의 시상 장면을 촬영하려 했다. 배우자로 여겨지는 남성들도 보였다.
이 때 유니폼을 입고 허리에 부착한 무전기와 하얀 줄이 귀에 걸린 이어폰을 착용한 공연도우미(?)가 좌석으로 내려가 이들을 저지한다. 표정과 치장에서 공연도우미보다는 경호원에 가까워 보일 정도다. 뒤를 돌아보니 좌석 뒤로 줄지어 선 3~4명의 남녀는 굳은 얼굴로 좌석을 감시하듯 응시하고 있다. 감시당하는 느낌을 어쩔 수 없다.
그 모습을 보면서 불편했던 건 오히려 도우미였지 카메라를 든 관람객이 아니었다. 대부분 여성인지라 많은 이들이 아이들과 함께 왔고, 때문에 소란도 일었다. 관람예절이 이처럼 엄격하게 적용하려면 8세 이하의 아동들의 입장을 제한해야 했다. 이렇듯 행사의 성격으로 볼 때 공연을 위한 예술관의 엄격한 관람 잣대보다는 그들의 입장과 처지에 맞는 행사가 오히려 자연스럽다.
물론 예술극장에서 공연을 위해서, 또, 타인을 위해 지켜야 할 예절은 분명히 있다. 더러는 창작물에 대한 저작권 문제도 있다. 하지만 이는 공연물의 성격에 따라 규정되어야 할 문제다. 유연성이란 이런 경우에 적용되는 것이 적합하다.
공연 중에 도우미가 통로를 이동하며 카메라를 든 이를 저지하는 모습도 무척 역설적이었다.
공연이 진행되는 와중에도 여전히 사진촬영을 시도하는 이가 있었고 이때마다 도우미는 어김없이 좌석으로 내려섰다. 공연 중에는 좌석을 이동하지 않는 것이 관람예절인 것은 누구나 안다. 관람예절을 권유하기 위해 예술관측이 스스로 관람예절을 어기고 있는 모양새다.
그렇다고 완전히 통제한 것도 아니었다. 공연도중 후레쉬를 터뜨려 공연을 방해한 이도 물론 있었다. 최고의 공연을 약속한다는 예술관의 입장에서는 난처할 사안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은 이날 공간의 분위기로 보아 크게 부담스럽지는 않았다.
공연이 끝난 후 ‘관객과의 소통’ 행사가 진행되는 과정에서도 여전히 카메라에 대한 통제는 계속됐다. 앞서 취재를 나온 지역일간지 사진기자도 통제를 받았다. 물론 그는 기자라는 신분으로 촬영이 가능했다. 그에게 물어보니 불편한 심정은 마찬가지였다. 행사내용으로 보아 굳이 사진촬영을 막을 이유가 없어 보인다는 것이다.
공연 도중의 촬영 금지는 기본적인 예절이어서 엄격한 규정을 이해할 수도 있다. 하지만 공연과 상관없는 행사순서마저도 예술관의 엄격한 공연질서의 잣대를 적용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그것은 공연물의 성격으로 규정되어야 할 문제다.
더군다나 공연장의 예의나 질서문제는 사회자가 관람객에게 이해를 구하는 것이 통상의 절차이다. 주최측이 판단할 문제이지 시설관리자측이 무리하게 개입할 문제는 아닌 것이다. 확인해보니 성산아트홀도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고, 주최측도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성산아트홀은 자체의 규정을 지키려 했고 주최측은 대관의 조건인 이를 받아들여야 했다.
관객과의 소통 순서. 도우미의 양해를 받고 촬영한 사진이다.
주최측인 다문화가족 지원센터는 허가받지 않은 이에 대한 사진촬영을 불허하는 것으로 협의를 했다고 한다. 이유는 성산아트홀 대관규정이 촬영을 금하고 있었기에 거기에 따른 것이라고 했다. 물론 공연을 방해하지 않으려는 의도도 있었다고 했다.
대관을 위한 조건을 수용한 주최측이 결혼이민여성들에게 사진기념물을 모두 전해 줄지는 모를 일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상식선으로도 이해되지 않는 필요이상의 통제로 인해 불편을 겪은 이들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이용자에게 불편스러울 수 있다면 굳이 성산아트홀을 선택해야 할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최상의 대관시설을 자랑하며 최고의 공연과 전시를 약속하고 있는 성산아트홀의 대관절차나 규약도 역시 문제스럽다. 대관전시 성격과 출연자의 수준을 심의해 가부를 결정한다는 대관절차나 까다로운 대관규정은 한 눈에 보아도 부담스러울 정도다.
대관규정이 까다로운 이유를 모를리 없지만, 일반시민이 자유롭게 이용하기에는 규제가 많다. 결국 유명한 공연물이나 전시만를 위한 규정으로 보일 정도다. 대표적으로 녹음, 녹화등의 규제가 그렇고, 하우스 매니저라 칭한 이의 역활이 그렇다. 대관규약에는 하우스 매니저가 시설운영및 행사진행 감독을 맡게 되어 있다.
이러한 까다로운 규제는 결국 일반시민들의 자유로운 대관이나 이용을 가로 막는다. 최고의 공연물, 품위있는 공연만을 위한 규정으로 보여서다. 규정을 읽어봐도 공연물이나 행사의 성격에 따른 예외의 조치는 없다. 시설물의 보호와 최고의 공연만이 중심이 된 규정들이다.
‘왜?’란 의문으로 곱씹어 보면 이렇게 될 수 있다. 성산아트홀은 시설보호와 엄격한 관람예절만을 강조해 예술관의 권위와 품위를 강요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창원지역의 다른 문화시설에서 이렇게 운영하는 곳은 보지 못했다.). 최고의 공연과 최고의 시설만이 명품 예술관을 만드는 것은 아니다. 내게 문화적 수준이 낮다는 비판이 오면 그대로 받아들이겠다. 사실이기 때문이다.
이날 성산아트홀에서 행사 내내 불편했던 이유는 시민의 재산인 예술관에서 통제된 예술적 질서의 강요를 보았기 때문이다. 그것은 한편으로 문화적 우위의 권력으로 여겨지기도 했고 강요된 권위로도 느껴지기도 했다. 필요이상으로 강제된 질서는 이미 문화가 아니다. 그것은 단지 통제된 질서에 지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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