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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MB보다 농민이 더 실용주의다.


이명박 대통령이 취임 후 '이념문제를 극복하고 실용주의로 나아가겠다'고 했던 말을 기억한다. 그 이후로 실용주의는 한동안 언론을 오르내리며 세상이 제대로 돌아 갈 듯 전국에서 화두가 되기도 했다. 물론 지금은 공안정국이 조성되면서 잊어버린 정책이 되어 버렸다.

임진각에서 농민들이 대북쌀지원을 촉구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


8.15 국민대회가 서울 도심에서 진행되는 15일, 임진각에서는 전국에서 농민들이 모였다.

2005년 쌀개방 반대투쟁 이후 망가진 몸으로 농촌으로 되돌아갔던 그들이 몸을 추스르고 다시 목소리를 내기에는 4년이란 시간이 걸렸다. 그만큼 2005년 농민투쟁을 혹독했고, 많은 희생을 치러야 했지만 국내 쌀 시장이 개방되면서 그들의 투쟁은 결과적으로 패배로 끝이 났다. 숫한 희생만큼이나 농민들도 절망에 잠겼다.

농민들이 임진각에 모인 이유는 국내에 남아도는 쌀을 북측에 지원을 하라는 것이다. 2008년 풍작에도 쌀을 수입하면서 미곡처리장에는 쌀이 넘쳐나도록 보관되어 있다는 이야기다. 시장논리에 의해 쌀값이 폭락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농민들은 풍년이 되어도 흉년이 되어도 매년 걱정을 해야 하는 처지가 된 것이다.

이 날 농민들은 이명박 정부심판으로 점철된 ‘8.15국민대회’와는 별도로 ‘대북 쌀지원 법제화’를 요구하며 임진각역에서 나락을 적재했다. 

농민들은 남북이 함께 사는 통일농업을 이루자고 했다

임진각역에 나락과 쌀을 적재하고 있는 농민들


이전 정부에서는 그나마 국내 쌀을 북측으로 인도적 지원을 하면서 미래의 통일비용으로 충당하고 동족의 아픔을 함께 했다. 이것이 남북간의 평화적 관계를 유지하거나 물꼬를 터는 역할을 한 것은 말할 필요가 없다. 농민들 입장에서는 대북 쌀지원이 국내 쌀값의 안정을 가져오고, 그로서 피폐된 농촌을 지킬 수 있는 작은 역할이나마 하고 있었기에 바람직했다.

전국 각지에서 올라 온 농민들은 50여톤에 달하는 나락과 쌀자루를 적재하면서 대북 쌀지원 정책을 이어나가라고 요구했다. 동시에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9월 이후 농민투쟁에 직면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농민들은 정부의 정책에 대해서도 비판했다. 겨우 내놓은 정책이 쌀로 만든 식품 개발과 미곡처리장의 보관료 일부를 지원한다는 것이다. 여기에 한 농민은 “밑돌을 빼서 위에 올려놓는 것과 같은 이치”라며 냉소했다. 쌀로 식품을 만들어도 쌀 소비량은 크게 변하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국내 쌀값이 이상 증세를 보이면서 농민들은 기자회견을 통해 대책을 호소해 왔다. 그 방법으로 ‘대북쌀지원’을 명시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념문제를 극복하고 실용주의로 나아가겠다’고 호들갑을 떨든 이명박 정부는 결국 이념문제에 집착해 쌀지원을 미루고 있다.

그동안 정부는 북측으로 지원해오든 쌀을 ‘핵’문제 등으로 남북관계가 악화되자 중단을 해버렸다. 북한에 ‘퍼주기’라는 수구세력의 억지도 한 몫을 했다. 이로서 국내에 남아도는 쌀은 농가에게도 치명적 타격을 주기 시작했다. 참다못한 농민들은 급기야 망가진 몸을 추스르고 다시 거리로 나서야 했다.

이들이 다시 아스팔트로 나서는 데는 시장논리와 자본의 논리가 깔려 있다. 여기에 더해서 이념문제까지 그들의 삶을 위협하고 있다. 정작 실용을 이야기  하던 정부는  이념문제에 매달려 있다. 

한국전쟁 당시 멈춰버린 열차. '철마는 달리고 싶다'로 표현되고 있다.

경의선을 타고 민통선을 넘어가고 있는 열차. 현재 도라산역까지 왕래가 가능하다.

임진각을 찾은 수많은 이들이 남겨놓은 통일에 대한 열망들.


따지고 보면 북측으로의 쌀 지원은 소위 ‘도랑 치고 가재 잡는 일’이다.

국내 남아도는 쌀을 해결해 농민들의 어려움을 조금이나마 들어 줄 수 있고, 꽉 막힌 남북관계에도 물꼬를 틀 수 있는 일이기에 그렇다. 민족이라는 동포애적 관계에도 중요한 일이다. 무엇보다 인도적 지원에는 이념이나 여타의 문제를 개입시켜서는 안된다. 농민들의 주장이 더욱 현실적이고 실용적으로 여겨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농민들이 다시 거리에 서지 않았으면 한다. 그들이 자연과 함께 살면서 농사일에만 열중했으면 한다. 이미 그들은 2005년과 그 이전의 농민투쟁을 통해서 숫한 희생을 치렀다. 그 속에는 내 아버지 어머니의 모습이 투영되어 있어 더욱 안타깝다. 임진각에서 울리는 농민가는 오늘따라 애처롭다.

민생을 말하는 한나라당과 정부가 정작 민생을 헤아린다면 그들이 거리로 나설 이유는 없다. 일한 만큼만 보상을 받는 세상이어도 그들이 굳이 아스팔트로 나설 이유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