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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이 겨울에 어디로 가노...”

“이 겨울에 우리는 어디로 가노....” 

강제철거가 실시되고 있는 창원시 가음정 본동 주민들이 창원시의 행정대집행에 속만 끓이고 있다. 생활보호대상자가 대부분인 이곳 본동 세입자들은 강제집행을 당하면서도 당장 이주할 만한 공간을 찾지 못하고 있다. 차가워지는 날씨 속에 주민들은 당장 찬이슬을 피하기 위해 천막을 준비해야 하는 딱한 처지가 된 것이다. 
 

창원시는 11일 가음정지구 23세대 33개동에 대해 행정대집행을 했다. 지난 2월부터 공사에 들어가 4월께 실제적인 철거작업에 들어간 창원시는 11월까지는 철거를 완료한다는 계획이다. 
 

창원에서 70년대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던 본동 마을은 지난 7월 말께 이미 100여가구가 철거됐지만 여전히 이주대책이 없는 주민들은 폐허가 된 마을에서 거주하고 있다.
 

도로를 인접한 상점에는 아직도 장사를 하고 있는 주민들이 있다. 70. 80년대의 술집으로 보이는 간판도 인접도로에 늘어서 있다. 강제철거가 실시되고 있는 오늘도 마을 구멍가게를 비롯한 상점은 문을 열었다. 
 

상점 앞에는 손님대신에 마을 주민 몇몇이 모여 근심스런 표정을 하고 있다. 사람이 거주하는 주택과 상점 곳곳은 지붕의 일부가 벗겨진 채로 위험스럽게 방치되어 있다.
 
 
문을 연 상점의 인접한 가게는 주인이 떠났고 건물은 허물어진 채 비어있다. 마을 어귀로 들어서면 철거공사로 인해 마을은 폭탄을 맞은 듯 흉흉한 형상을 하고 있다. 마을 도로에는 벽돌과 나무기둥 등 철거 주택에서 나온 쓰레기들이 여기저기 쌓여 있다. 그 속에서도 세입자들은 어쩔 수 없이 생계를 유지해 오고 있다. 

강제철거 당한 주택

 
가음정동 개발 사업은 1999년 주택단지로 승인이 나면서 시작됐다. 일부 주택소유자들은 보상금을 받고 이곳을 떠난 지 이미 오래됐다. 하지만 이주택지 문제 등 보상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집주인들은 이곳에 계속 머물렀고, 이곳에서 문화재까지 나오면서 10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가음정에 택지를 받을 사람은 남아라 해서 있었는데, 10년이 지났어요. 그 돈이 어떻게 남아 있습니까” 
 

마을 어귀에서 만난 익명은 요구한 집주인은 “1순위로 나갔어야 하는데, 시의 말을 듣고 미루다 오도 갈 데도 없이 되어버렸다”고 한탄했다. 강산이 변한다는 긴 세월동안에 받은 보상금이 어려운 살림살이에 여태까지 남아 있을 리가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다가 재개발 될 아파트 분양가도 평당 150만원이 되어버렸다. 그는 “시가 개발 사업을 10년을 끌어오면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게 되었다”며 원망을 했다.
 

최영태 가음정동 이주대책위원장은 “시의 행정 지연으로 10년이나 흘러 보냈다”며 “보상을 주고도 이주대책이 수립이 안 된 상태에서 철거를 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그는 “철거로 인하여 삶의 질을 상실한 자에게는 그 이상의 삶의 질을 보장하는 대책을 세우는 것이 원칙”이라며 “시가 막무가내로 영장조차 보여주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강제철거되는 가음정 본동 주택


철거반이 가재도구를 밖으로 옮기고 있다


집주인들의 난감한 처지도 그렇지만, 이곳에서 월세로 살고 있는 대다수 영세민들의 처지는 더욱 딱하게 됐다. 사회에서 밀려나 월세가 싼 곳을 찾아 이곳으로 들어온 세입자들은 하루 하루를 일해서 생활을 유지하고 있다.
 

“하루 날품팔이로 살아가는데, 당장 이사할 수도 없습니다”
“이주공간도 없는데 강제철거를 하는데 이게 사람이 할 짓입니까” 

마을에서 나이가 작은 축에 속하는 세입자 박모씨(44세)는 2003년도에 이곳에 들어왔다. 그는 20만원의 이사비용을 받았지만 역시나 갈 곳이 없는 처지다. 
 

전세자금 대출제도가 있지만, 힘겨운 살림에 재산세를 내는 보증인을 구할 수도 없다는 그는, “집주인들조차 집값이 내려간다며 전세자금 근저당 설정을 안 해 준다”고 하소연했다.
 

60대의 한 노인은 철거업체에 원망을 쏟아 붇다가 결국 소주병을 들었다. 길바닥에 쌓여있는 살림가구들을 보면서 연신 울화통을 터뜨리던 그는 끝내 눈물을 보였다.
 

80대의 강 아무개 할머니는 자신이 거주하고 있는 주택의 가재들이 거리로 나오는 것을 보고 “마지막으로 집이나 한번 보자”고 애원했다. 이 집은 10살에 시집와서 한 평생을 살아왔던 곳이다. 
 

“약을 찾아야겠다”는 핑계로 집안으로 들어가 보려 하지만, 시청직원들은 할머니를 “위험하다”며 가로 막는다.
 

평생을 살아 온 곳이니만큼 할머니에게 이 집은 삶의 전부였고 세상이었다.  

“이제는 다시 볼 수 없는 곳인데 한번만 들어가 보자”며 막무가내로 버티던 할머니도 결국 소주병을 연거품 마시고 끝내 울음을 터뜨렸다.
 

이 마을에서 태어나 성장했다는 박 아무개씨(37)는 7살 나이에 들어 누워 잠들곤 했다는 대리석을 가리키며 옛 기억을 회상했다. 벽돌과 지붕 슬레이트 석면이 함께 섞여 흉흉해진 도로에는 유년시절 연탄을 배달하던 어머니를 따라 다니든 그의 모습이 남아 있었다.

강제철거되는 가음정 본동 주택


한 주민이 철거에 항의하다 바닥에 주저 앉았다


그는 “나가지 않겠다는 것이 아니라 겨울이 왔는데 봄까지 기다려 달라고 하는 것”이라며 창원시행정에 불만을 토해 냈다.  

“창원시가 도계동 임대아파트로 가라고 하지만 임대계약금도 비싸고, 임대아파트는 내년 말에 입주가 가능해서 현실적으로 불가능 한 일”이라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황명규 가음정 영세상인 대책위원장도 상인들의 막막한 심정을 전했다.
 

그는 “모르고 들어왔는데 알고 보니 상가 전부가 무허가였고 (입주가)불법이었다”며, 이주비가 최고 156만원 400만원 나왔지만 현실적으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했다. 
 

생계가 막막해진 상인들 역시 창원시에 생존권을 요구했지만 대책은 지금까지 없다는 설명이다. 그는 “우리가 요구하는 것은 생존권을 지켜 달라는 것”이라며 “8년 동안 시에 가서 살려 달라고 했는데 창원시가 시민을 무서워하지 않는다.”고 창원시의 행정을 원망했다.
 

주민들이 철거된 주택을 안타깝게 바라보고 있다

이 날 창원시는 행정대집행 영장을 받아 주택을 철거했지만 주민이 거주중인 가옥에 대해서도 철거를 진행했다.

인터뷰를 했던 박모씨는 “자신이 거주하고 있는 집은 오늘 철거를 안 한다”며 어디론가 사라졌다. 하지만 그 사이 철거반은 그가 거주하고 있는 가옥의 지붕을 뜯어내고야 말았다. 
 

또, 50대 두 명의 남성이 세입자로 거주한다는 가옥도 그들이 일을 하러 간 사이에 포크레인의 굉음과 함께 허물어졌고, “한번만 방을 보자”고 애원하던 강 할머니의 집도 철거반에 의해 살림가재가 길바닥으로 옮겨지고 허물어졌다.

창원시는 본동 철거 전역에 분진을 막을 수 있는 칸막이 설비를 하지 않았다. 이에 대해 주민들은 창원시가 주먹구구식으로 강제철거를 하고 해 왔다고 주장했다. 석면을 분리하는 작업도 최근에야 해왔고, 가옥 철거를 하면서 설치하고 있는 안전띠조차도 오늘부터 했다고 주장했다. 
 

이 날 창원시가 세운, 분진 대책은 가옥을 허무는 동안에 휴대용 간이호스를 이용해 물을 뿌리는 것이 전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