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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라톤 출전했다가 당했던 굴욕의 기억

마라톤 스팟광고를 편집하다보니 옛 기억이 떠오릅니다. 1회 창원통일마라톤대회에 하프코스로 출전을 했었습니다. 당시 나이가 30대 초중반이었는데, 어쩌다보니 망가진 몸에도 불구하고 격기로 출전을 하게 된 것입니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달리기를 할 여유가 없었던 만큼 격기를 부리고 난 후에는 은근히 걱정이 되더군요. 그래도 체력에 대한 자신감은 여전히 남아 있어 믿는 구석이 있었습니다.

대회 15일을 앞두고 몸 만들기에 들어갔습니다. 저녁시간 동네 운동장을 뛰면서 담배를 끓었죠. 그렇게 10여일을 보내니까 어느새 몸 상태가 좋아지더군요. 호흡곤란도 견딜만하고 하체가 탄탄해지면서 자신감이 생기더군요.

하지만 굴욕의 마라톤이 시작되는 일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대회를 이틀 앞 둔 금요일. 절친한 친구 녀석들과의 모임이 있었죠. 지금은 몇 년 동안을 만나지 못하고 있지만  그 당시에는 1주일이 멀다하고 어울리던 친구들입니다.


녀석들과의 만남은 언제나 그랬듯이 밤샘놀이로 이어졌습니다. 그렇게 밤을 지새고 일어나보니 엉망이 된 몸 상태가 걱정이 되기 시작하더군요. 마라톤 출전 하루를 앞두고 술과 담배로 밤을 새웠으니 그럴 만도 하죠. 그날 저녁, 몸을 회복하기 위해 평소보다 무리해서 동네 운동장을 달렸습니다.

다음날, 눈을 떠보니 늦었더군요. 무엇보다 몸 상태가 말이 아니었습니다. 전날 저녁 너무 많이 달린 것도 화근이었습니다. 그만 포기할까하는 생각이 앞서더군요. 하지만 약속한 것도 있고 해서 조반도 먹지 않고 허겁지겁 챙겨서 운동장으로 향했습니다.

출발신호가 울립니다. 속도를 줄이니 그런대로 견딜만하더군요. 약 3km 정도를 달렸을까, 그때부터 무지하게 배가 고프기 시작했습니다. 배가 고파서 오직 먹을 것만 생각이 나더군요. 문득 떠오르는 것이 5km 지점에 먹을 것이 있다는 안내방송이었습니다. 그 생각만 하면서 달리고 또 달렸습니다.

멀리 보이는 5km  지점에는 역시 무언가가 보였습니다. 오직 먹겠다는 생각으로 갔는데 그곳에는 물 뿐입니다. 엄청난 실망이 밀려옵니다. 어쩔 수 없이 달려야 했는데, 다시 10km에 음식이 있다는 말이 문득 떠올랐습니다. 

그 먹을거리만 생각하고 달리고 또 달린 결과, 과연 10km 지점은 나를 실망시키지 않았습니다. 탁자 위에는 많은 양의 바나나가 있더군요. 배고파 죽을 지경인데 이것저것 가릴 여유가 없었습니다. 허겁지겁 먹었죠. 포만감이 들면서 혼미했던 정신이 되돌아 온 것 까지는 좋았는데 정말 문제가 생겼더군요.

완전히 풀려버린 하체가 말을 듣지 않는 겁니다. 한 걸음을 옮기는데 그렇게 고통스러울 수가 없었습니다. 포기를 하고 싶어도 그 놈의 자존심 때문에 그러지도 못하고, 한 참을 뒤쳐진 상태에서 거의 걷는 수준으로 헥헥 거리며 뛰고 있었습니다. 머릿속에는 온통 걱정이 앞섭니다. 아직 절반도 못 왔는데 이 상태로 버텨낼 수 있을까 하는. 그 너머로는 걸어서라도 가자는 작은 오기가 버티고 있었습니다.

달리는 동안 이 두 놈의 싸움질은 한 순간도 빠지지 않고 이어졌습니다. 머리가 온통 하얗게 되더군요. 그 고통을 마주하며 달리다가 뒤가 이상해서 머리를 돌려 보았습니다. 응급차량이 계속 나만 따라다니고 있더군요. 창피함도 그런 창피함이 없었습니다. 이를 악물었습니다. 하지만 바닥난 체력은 여전했고, 위장의 부담도 없애지는 못하겠더군요. 오직 오기로 걷다가 뛰다가 그렇게 버텨야 하는 상황이었죠.

하지만, 그 오기를 꺾어버린 결정타가 날아왔습니다. 응급차에는 먼저 탈락한 이들이 타고 있었는데, 이들은 무안하게 계속 포기를 종용하고 있었습니다. 못 들은 채 계속 무시를 하고 있는데, “ 이러다 마라톤은 해가 져야 끝나겠다”는 한마디에 그냥 무너져 버렸습니다. 무참히 나를 짓이겨버린 한마디였습니다. 매번 이 생각이 날 때면 스스로도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 이후로는 창원통일마라톤에 나갈 기회가 없었습니다.  계속 대회 영상을 맡아야 했기 때문입니다. 이번 영상은 10회 창원통일마라톤대회 스팟광고입니다. 그리고 창원통일마라톤대회의 수익금은 북녘의 어린이를 돕는데 사용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