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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필기시험 1위에도 해고된 계약직 여성의 사연


박혜진(31세)는 한국전기연구원에서 6년5개월 동안 근무하다 지난 8월31일자로 해고된다는 통지를 받았다. 

6년여 동안 계약직으로 근무해 온 그가 재계약을 체결한 회수만도 18회이다. 짧게는 14일, 길게는 10개월 단위로 재계약을 체결해야 했기 때문이다. 비록 계약직이지만 오랫동안 근무해 온 까닭에 하루아침에 해고통지를 받게 될 줄은 그도 몰랐고 동료들도 상상하지 못했다. 

“사회에 첫 걸음을 내딛은 후 20대의 열정을 불태운 곳입니다. 해고 통보를 받는 그 날은 아무런 생각도 나지 않고 그냥 멍했습니다. 억울하다는 생각도 들었고, 다시 복직을 해야겠다는 생각만 들었습니다.”

한국전기연구원 계약직으로 근무했던 박혜진씨가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다.


생각하지도 못했던 해고통보를 받은 그는 지난 일들이 서럽게 떠올랐다. 

2007년 12월 한국전기연구원은 무기계약직 전환시험을 실시했다. 당시 임산부의 몸이었던 그는 임신 부작용으로 온몸이 퉁퉁 부어서 볼펜도 잡기 힘든 상황에서 열심히 공부를 했다. 그 결과 필기시험에서 1위를 차지했다.

“그 필기시험에서 제가 1등을 했어요. 그런데 면접시험에서 최저점수를 받아 시험에 불합격했습니다.”

필기시험에서 1등 순위가 면접에서 최하위점수를 받아 탈락하는 것은 흔치 않은 일이다. 하지만 그는 이 시험이 근무시간이 36시간에서 4시간으로 변경되어 임금이 상승되는 조건변경이지 2년 후 퇴사하라는 의미인 것을 알지 못했다. 당시 모 과장도 이 시험과는 상관없이 계속 근무한다고 신경 쓰지 말라고 했기 때문이다. 

면접과정의 불공정성이 제기되기도 했지만 그는 한국전기연구원의 직원이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흠이 될까 걱정하며 지금까지 묵묵하게 일을 해 왔다. 그러나 그 결과는 참혹했다. 2007년 무기 계약직 시험에서 불합격했기 때문에, 그리고 비정규직법 시행으로 퇴사를 당하는 입장이 되어 버린 것이다. 

계약직으로 있는 동안에 받는 서러움도 있었다. 정규직이 아니기 때문에 사내 상조회에도 가입할 수 없었고, 노동조합에도 가입할 수 없었다. 정규직과는 달리 교통비도 지급받지 못했다. 

지금은 많이 개선되었지만 사내 행사시 상품을 추첨할 때도 계약직은 빠지고 정규직에게만 추첨권이 주어졌다. 개원 기념일에 지급되는 사은품도 정규직과 비정규직은 달리 지급되었다.

전국여성노동조합 경남지부가 주최한 기자회견에서 박혜진씨가 부당함을 호소하고 있다.


그가 일을 해 온 팀 총괄 지원업무는 무기계약직으로 근무하는 직원들과 동일 유사 업무였다. 단순한 업무의 보조라는 입장을 보인 한국전기연구원과는 달리 그는 업무의 성격이 전문성을 띠고 있고, 상시적인 업무라고 말했다. 

매주 작성하는 주간업무보고, 간부회의자료 작성 등은 현재 무기계약직 직원과 정규직이 같이 하는 업무이다. 업무보조라고는 하지만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비슷한 일을 하고 있는 셈이다.

전문 과정이니만큼 계약직에 대해 매년 교육도 진행되었고 그도 올해 3월에는 ‘지식경영리더’라는 수료과정을 거쳤다.  

“갑작스런 실직으로 인해 경제불안도 느끼고 있지만, 지금까지 모든 것을 맡겼던 연구원에서 해고당한 마음의 상처가 더 큽니다.”

그 동안 지식경영에 대한 전문성을 갖추고 싶었다는 그는 꼭 복직해서 못 다 한 일을 해내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