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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껍데기만 남은 ‘창원의집’ 전통혼례

몇 년 전에 한 후배가 국제결혼을 하면서 ‘창원의 집’에서 전통혼례를 치렀다. 30여분의 간단한 혼례가 끝이 나고 그 외국인은 한국의 전통혼례가 생각보다 간단하다며 다소 실망스런 표정을 지었다.

 

실망스런 표정의 외국인에게 우리의 전통혼례는 꼬박 하루 동안 진행된다는 말을 통역을 통해 전해 주고 싶었으나, 그냥 포기를 했다. 전통문화를 이어가지 못하고 있는 우리나라도 부끄러웠고 혼례에만 몇 시간이 걸리는 예식을 단 30분 만에 끝내며 전통혼례라 부르는 것도 부끄러웠다.


 


경건하면서도 흥겨웠던 전통혼례
 

어릴 적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우리의 전통혼례는 꼬박 하루 동안 진행됐다. 혼례가 있는 날이면 마을은 축제 분위기였고, 동리 아낙네들은 삼삼오오 모여서 품삯을 보태었다. 
 

벌써 17년 전의 이야기지만 나 역시도 창원의집에서 전통혼례로 예식을 치렀다. 당시 예식에 소요된 시간은 1시간 30분. 그것도 날씨가 너무 차가워서 실내에서 거행된 예식이라 30여분을 단축한 것이었다. 본래의 모습대로 야외에서 치른다면 2시간이 넘게 걸린다는 것이 당시 홀을 부르던 어른의 이야기였다.
 

백년의 대사인 전통혼례의 모든 절차에는 나름의 의미가 담겨져 있었다. 당시 홀을 부르던 어른은 매 순서마다 그 의미를 설명해 주었고, 그로인해 우리의 전통혼례에 새로움을 느낄 수 있었다. 
 

혼례가 진행되면서 익숙하지 않은 예법으로 매번 실수가 이어졌다. 신부가 마셔야 할 술을 들러리가 마셔버리는 웃지 못 할 일도 생겼다. 당시 ‘홀 부르는 할아버지’는 매우 엄격했지만 유머도 간직한 분이어서 틀린 행동이 나오면 호통을 치며 그 의미에 대해 세세히 가르쳐 주었다. 그때마다 하객이나 구경나온 사람들의 폭소가 터졌다. 경건하면서도 중간 중간 폭소를 자아내게 했던 예식은 어느 듯 시간가는 줄 모르고 끝이 났다. 
 

하지만 요즈음 ‘창원의집’에서 열리는 전통혼례는 30분이 채 걸리지 않는다. 하루에 몇 쌍의 결혼이 가능하다. 상업화 된 느낌도 든다. 달리 보면 시민의 편의란 명분으로 전통문화를 파괴해 버리는 관의 형태도 아쉽기만 하다. 두 시간이 넘는 예식을 30분으로 축소하면서 얼마나 많은 절차들이 생략되었을까. 말이 전통혼례이지 사실은 껍데기만 남은 전통문화가 되었다.


 


일상에서 재현되는 전통혼례문화 공간으로...


17년 전 필자가 ‘창원의집’에서 혼례를 치룰 당시는 물 건너 온 상품과 문화들이 귀한 대우를 받던 문화적 사대주의 경향이 강했다. 그래서 전통혼례를 기피하는 이들도 있었고, 가난한 이들이 이용한다는 부정적 이미지로 인해 기피하는 이들도 있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창원시가 혼례절차를 간소화해서 많은 시민들이 이용할 수 있도록 배려했을 수도 있지만, 이용실적이나 편의에 앞서 사라져 가는 전통문화를 보전하는 것이 더 의미 있는 일이고 관의 역할에도 맞다. 

우리의 전통혼례에는 볼거리가 많고 흥겨움이 있는 만큼 구경꾼들이 많이 모여든다. 전통혼례가 제대로 복원되면 관광문화 상품으로서의 가치도 생기는 것이다. 시민들에게 흥겨운 문화 공간으로서의 자리를 만들어주고, 외국인에게 우리의 전통문화를 제대로 소개하는 곳으로서의 ‘창원의집’이 그 격에도 맞다. 전통가옥을 보전하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이렇게 전통문화를 보존하기 위해서는 창원시의 지원도 필요하다. 공간이 있는 이상 큰 비용이 소모되는 일도 아니다. 예복을 비롯해 필요한 장구들을 제대로 갖춰 놓고 운영하면 그만이다. 전통혼례문화를 완벽히 재현하는데 필요하다면 실제로 전통혼례를 올리는 예비신혼부부에게 예식에 필요한 비용을 지원해야 한다. 

나의 경우, 혼례비용으로 창원의집 관리사무소에 지출한 비용은 청소비 3만원이 전부였다. 장소와 예복은 무료로 지원됐다. 변하지 않음의 상징인 소나무가지를 직접 꺾어 오라는 것이 신혼의 마음가짐에 좋았다. 

관리사무소에 알아보니 요즘 예비부부들은 인근의 웨딩샵에서 예복 등 필요한 것들을 마련한다고 한다. 갖춰 둔 예복이 오래되어 전통혼례 대행업체에서 돈을 주고 빌린다는 것이다. 예전에 비해 없던 홀기 비용도 생겼다. 장소와 천막 등 장구들만이 무료로 제공된다. 결국 150만 원 이상이 들어간다. 일반 예식비용과 다를 바 없는 것이다. 2시간가량의 혼례를 30분으로 줄였으니 웨딩업체들만 신날 판이다.

전통혼례문화를 완벽하게 재현하고 시민들이 전통문화로 혼례를 올리게 하려면 창원시가 제대로 된 의복과 장신구를 갖춰놓고 적극적으로 운영을 해야 한다. 홀기 비용을 포함해 지원할 수 있는 비용은 모두 지원해야 한다. 이벤트로서의 문화재현행사보다 오히려 비용이 절감된다. 무엇보다 일상에서 만날 수 있는 전통문화가 더 가치 있고 아름답다. 

창원시가 의지를 가지고 운영을 한다면 ‘창원의집’은 전통혼례문화를 일상에서 볼 수 있는 전국에서도 유일한 명소가 될 수 있다. 

연지 곤지 찍고, 사모관대 두른다고 해서 전통혼례가 되는 것은 아니다. 옛 풍습대로 절차와 격식을 갖춘 문화의 복원만이 전통이란 품격을 지닐 수 있다. 흉내만 내면서 전통이라고 말하는 것은 보존이 아니라 파괴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