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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엄기영 사퇴로 보는 MB정부의 문화장악

 새해 들어서 MB정부가 다시 방송을 장악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 같은 일이 단순히 방송뿐만 아니라 문화예술, 미디어 전반에서 일어나고 있다는데서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MB정부는 2008년 촛불을 거치면서 KBS, YTN등 대표이사를 교체하기 시작했다. 외형적으로 공영방송의 공정성을 문제로 삼았지만, ‘정권연장을 위한 공영방송 장악음모’라는데 이견은 없다. 미디어법 역시 이 같은 선상에 있다. 그런데 문화예술분야도 같은 일이 동시에 일어나고 있다.

 


최근의 보도를 보면 MB추종자들은 MBC뿐만 아니라 민예총에 대한 수사, 특히 독립영화나 문화예술 관련단체도 장악을 하고 있다. 문화예술 분야에 대해서도 동시에 ‘새판짜기’가 시작된 모양새다.

 

지난해 5월에는 한국예술종합대학 황지우 총장이 우여곡절 끝에 결국 사퇴를 했다. 문화계 보수인사들의 “한예종은 문화예술분야의 좌파 엘리트 집단의 온상으로 새 정부가 들어선 마당에 전면적인 구조개혁이 필요하다”는 말이 나오기 시작한 이후다.


올해 들어서는 영화진흥위원회가 새로운 독립영화전용관 사업자로 (사)한국다양성영화발전협의회(이사장 최공재), 영상미디어센터사업자로 (사)시민영상문화기구(이사장 장원재)를 지난 1월25일 선정하면서 반발을 사고 있다.

 

한독협에 따르면 조희문 영화진흥위원장은 과거에 영상미디어센터 미디액트를 ‘좌파의 본산’이라고 지칭하며 각종 토론회 자리에서 ‘한국독립영화협회’에 대해 이념적 공세를 퍼부었던 인물이다. 영화진흥위원회는 또, 시네마테크 사업도 공모로 한다고 밝히고 있다. 역시 운영주체를 바꾸기 위한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여기에 더해서 문화부도 최근 승인했던 대한민국예술인회관 사업을 ‘문화예술계 특혜사업’으로 보고, 더 이상 국고로는 사업을 진행하지 않겠다는 확인서까지 제출했다고 알려지고 있다.

 

이밖에도 국․공립예술기관 법인화가 국립극단을 시작으로 전면화 될 예정이라고 한다. 수익성을 추구하는 법인화는 필연적으로 국․공립 예술기관들이 추구해온 공공성을 위축시키게 된다. 이는 일반 대중의 문화 향유권을 심각하게 침해한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그리고 지난 3일에는 민예총 간부가 공금횡령혐의로 구속됐다. 지난해 11월 민간단체에 대한 감사원의 고발로 시작된 수사라고 하지만, 시기적으로 볼 때 우려스러운 것은 사실이다.

 

이렇듯 최근 일련의 과정들을 보면서 MB정부와 문화보수 인사들이 동시에 문화권역 전반에 대해서 칼질을 시작했다는 우려를 금할 수 없다. 하지만 정작 더 우려스러운 것은 진보진영이 문화에 대한 이해와 관심이 낮다는 것이다. 문화가 전체대중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또 시민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에 대한 깊은 성찰이 부족해 보이기 때문이다.

 

한 시대의 문화는 사회적 의제를 만들어내고 그것은 시민대중들의 의식을 창출한다. 그 의식은 곧 당대 사회의 성격을 규정하는 기반이 되고, 복지는 물론 정치와 경제까지도 관할하게 된다. 이에 반해 문화에 대한 통제는 대중들의 귀를 막고, 의식을 통제하며 순치를 요구하는 수단이 된다.

 

그런데도 진보진영은 아쉽게도 문화를 ‘투쟁의 도구나 수단’으로서 인식하는 경향이 강하다. 유독 문화에 대해서만큼은 가진자의 영역처럼 안일하게 인식하고 있는 듯하다. 민주노총이 그렇고, 반MB를 외치는 시민사회단체 역시 별다른 차이가 없다.

 

오늘(9일) MBC 엄기영 사장의 사퇴를 보면서 끔찍함을 느끼는 이유는 MB정부의 방송장악뿐만 아니라, 우리사회 전반에 걸쳐 있는 ‘문화예술 대한 포획’이 시작됐다는 위기감 때문이다. 진보진영이 문화에 대해 별다른 문제의식을 가지지 않는 한, 머지않은 미래에 큰 위기로 되돌아 올 것은 분명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