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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

유년시절을 함께 한 개, 고양이와의 이별

오랜만에 내리는 비 때문에 감성적으로 변한 탓인지, 출근길에서 본 고양이 한 마리가 가슴을 쓸어내립니다. 로드 킬로 죽어가는 야생동물들도 많지만 고양이와 강아지들도 길바닥에 쓰러져 있는 모습들도 이제는 흔한 모습이 되었습니다.


그네들이 쓰러져 죽음상태로 놓여 있는 모습을 보면서, 센티멘털 해지는 것은 성장기였던 어린 시절의 기억 때문입니다.


산으로 둘러싸인 시골의 한동네에서 성장한 내게는 개와 고양이는 내 생활의 일부였습니다. 그런 만큼 녀석들에 대한 애정은 강했고, 그 내면에는 말 못하는 짐승이라 더욱 그러했습니다. 눈빛만으로 마음을 주고받았던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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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와 비슷하군요

많은 녀석들 중에서 기억에 뚜렷이 남아있는 녀석이 있습니다. 이름마저 지어주지도 못했던  녀석인데, 이 강아지는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집 앞 냇가에 버려진 놈이었습니다. 눈 주변 상처가 심해 구더기까지 끓고 있는 상태였습니다. 녀석을 데려와 부엌을 뒤져 음식을 먹이고 치료를 했지만 며칠 지나지 못해 녀석은 먼저 떠났습니다.


그리고 해피라고 이름을 지어주었던 녀석이 있습니다. 이제 기억이 가물 해져 어떻게 가족이 되었는지는 생각나지 않지만, 작고 날렵한 몸매를 가진 녀석이었습니다.

친구 녀석이 키우는 불독과 함께 자랐지만 갈수록 몸짓 차이는 크게 벌어졌습니다. 그래도 녀석은 날렵한 몸매로 자신보다 두 배 이상 큰 불독을 상대로 곧잘 장난을 걸기도 했죠. 다리사이로 빠지고 뛰어넘고 그렇게 불독을 괴롭히던 녀석이었지만, 이놈은 참으로 겁이 많았던 녀석이었습니다.


지금아이들과 달리 학교를 마치면 마을 산을 타고 놀던 것이 어린학창시절의 생활인지라 그날은 친구와 함께 그 두 놈을 데리고 산으로 올랐습니다. 그런데 이 해피 녀석의 눈빛이 이상해지더니 몸을 뒤로 빼기 시작하더군요. 그래서 친구 녀석의 조롱을 받으면서도 할 수 없이 끌어안고 산으로 올랐습니다.


한국전쟁 당시 폭격으로 인해 언덕으로 변해 버린 정상에 도달했을 무렵에 녀석을 품에서 떼어 놓았죠. 그런데 그 순간 이 겁 많은 녀석이 갑자기 내달리기 시작하더니 이내 사라져 버렸습니다.


친구와 저는 이놈을 찾으러 한동안 산을 헤매었습니다. 산행이 처음인 녀석에 대한 걱정이 앞서 가슴을 조아리면서 산자락을 헤매고 돌아다녔지만 끝내 찾지를 못하고 산을 내려와야만 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산 입구에는 이놈이 떡 버티고 서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 겁 많은 녀석은 먼저 산을 내려와서는 자신도 걱정이 됐던지 우리를 기다리다 꼬리를 치며 반가워하고 있는 겁니다.


녀석은 꽤 영리하기도 했습니다. 4일장이 열리던 날 모친을 따라나선 시장에서 한 어른이 강아지를 팔 거냐고 묻자 눈치를 보던 녀석이 잽싸게 달아나 버리더군요. 모친이 기가 막혀서인지 한동안 웃고 있었을 정도로 참으로 영리한 녀석이었습니다.


그런 녀석과의 마지막 이별이 찾아올 무렵입니다. 집 앞에서 기다리고 있어야 할 녀석이 그날따라 보이지 않았습니다. 무던히도 찾아 헤매었지만 끝내 녀석은 나타나지 않았고 어머니는 개 도둑이 잡아 갔을 거라고 하더군요. 그때는 얼마나 어른이 미웠는지 모릅니다.

 

어린 마음에 거의 식음을 전폐하다시피 실의에 빠져 있었는데, 정확히 4일째 되던 날 녀석이 초췌한 모습으로 나타났습니다. 온 몸에 야생풀이 묻어 있고, 발은 논을 달려왔는지 온 통 진흙으로 뒤덮여 있었습니다. 녀석은 개도둑에게 감금되었다가 탈출해서 산과 들을 해매여 집으로 찾아온 것입니다.


그날 그 놈을 끌어안고 얼마나 울었는지 모릅니다. 하지만 그 상봉의 기쁨은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두어 달 남짓 지나지 않아 녀석은 다시 사라졌고, 그리고 영영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지금도 개고기를 먹지 않는 이유는 이런 유년시절의 아픈 기억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고양이에 대한 기억입니다. 이 녀석은 가끔 방으로 들어올 수 있었던 해피와는 달리 개와 방안에서 같이 생활하고 잘 수 있는 영광을 누렸습니다. 고양이 특유의 깔끔함을 가졌던 녀석은 엄지라 불렀습니다. 엄지는 방안에서 용변을 보는 일이 없었고 방문을 조금만 열어두면 스스로 문을 밀쳐 열고 들어 올 만큼 영리하기도 했던 녀석입니다.


이 녀석은 언제나 내 가슴위에서 잠들곤 했습니다. 난 그게 싫지 않았고 녀석과 장난을 하면서 유년시절의 한 때를 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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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은 그 놈과 싸운 일이 있습니다. 아침 녘 눈을 떴을 때 그날도 녀석은 변함없이 가슴위에서 잠을 자고 있었는데, 그 놈을 어루만지다보니 이상한 감촉이 느껴지더군요. 엉겁결에 본 것은 그 놈이 잡아 온 쥐였습니다. 놈에게 사냥을 당한 쥐는 멱살을 따인 채 죽어 있었는데, 엄지 녀석의 성격이 깔끔했던 만큼, 쥐는 혈흔조차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깨끗한 모습을 하고 있었죠.


그러나 결코 유쾌한 기분이 아니어서 그 쥐를 빼앗으려 했습니다. 그런데 이 녀석이 필사적으로 저항하기 시작하더군요. 손을 할퀴고 무는 등, 그 놈이 할 수 있는 모든 저항을 해댔더군요. 그 저항에 움찔하는 사이 녀석은 재빠른 동작으로 쥐를 물고 장롱 뒤로 몸을 숨기고 나오지 않았습니다. 온갖 꼬임과 유혹, 강제에도 끝내 쥐를 내주지 않았던 녀석입니다.


그런 엄지와의 이별도 어느 날 갑자기 찾아왔습니다. 그 녀석은 쥐약이 든 음식을 먹고 고통스러운 모습으로 숨이 끓어져 있었습니다. 이후에도 녀석들과의 반복되는 이별의 아픔은 점차 동물들을 멀리하게 만들더군요.


하지만 성인이 되어서도 또 한 번의 아픔을 겪어야 했습니다. 단칸방의 도시생활에서 애완동물을 키운다는 것이 엄두에도 나지 않았지만, 애들의 성화로 우연한 기회에 버려지다시피 한 강아지 한 마리를 얻어왔습니다.


어린 그 녀석은 태어날 때부터 사람과 함께 한 모양인지, 무척이나 사람을 그리워했고, 성가실 정도로 사람을 따라다니던 녀석이었습니다. 애들에게는 유년기 기억을 되살려 이름을 엄지라고 지어주었죠.


애들은 유년기의 나만큼이나 그 녀석을 좋아했습니다. 가방을 내려놓기가 무섭게 그 놈부터 찾는 모습이 꼭 나를 닮았더랬습니다. 집안의 분위기도 녀석으로 인해 많이 밝아져 있었죠.


그러나 불행하게도 그 녀석도 우리와 함께 오래 하지를 못했습니다. 유난히 사람을 발끝을 따라다니기를 좋아하던 녀석은 아침 출근길 우리를 따라 나오다가 출입문에 목이 끼이는 사고를 당한 것입니다.


사지를 떨며 고통스러워하는 녀석의 눈빛과 아픔이 내 몸 안으로 전이되어 왔습니다. 그리고 어릴 적 기억과 뭉쳐지면서 성인이 되어서 거의 흘려본 적이 없는 눈물까지 만들어 내더군요. 그 고통스러움 속에서 어루만져 주는 것 이외에 할 수 있는 일은 없었습니다. 단지 “미안하다. 어서 가거라, 좋은 곳으로..어서...” 라는 말만 안타깝게 되 뇌이고 있었습니다.


목이 부러진 채 격한 고통 속에 떠나버린 녀석을 인근 산으로 데려가서 사람의 발길이 닿기 어려운 곳을 찾아 곱게 두었습니다. 땅속에는 묻지 않았습니다. 영혼이라도 자유롭게 다닐 수 있기를 바랐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아이들에게는 차마 사실대로 이야기를 하지 못했습니다. 생사의 이별에 대한 고통을 벌써부터 가르쳐주기가 싫었던 까닭입니다.


이별에 대한 고통은 면역되지 않고 언제나 아파옵니다. 그것도 생사를 달리하는 이별은 감내하기 힘든 고통을 매 순간마다 안겨 줍니다.


동물들과의 생활은 성장기 전반에 걸쳐 계속되었지만, 언제나 먼저 앞서 떠나가며 상처를 남겨준 탓인지 어느 때인가부터 마음의 문을 닫는 습성이 생긴 듯도 합니다. 인간사에서 반복되는 이별의 고통도, 그네들과의 이별의 고통도 이제는 더 감내할 자신이 없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