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사는이야기

돌잔치에서 떠올려야 했던 부끄러움


며칠 전 지인의 돌잔치에 다녀왔습니다. 기억에 없을 만큼 오랜만의 개인적인 외출이기도 했습니다. 돌잔치는 ‘이제 청소년’이라고 우기는 자녀를 둔 내게는 이미 잊어버린 단어이기도 했지만, 가족에 소홀했던 자신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해주는 자리였습니다. 


돌잔치가 마련된 곳은 어느 뷔페였는데, 많은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두 녀석의 돌잔치를 가족들과 간소하게 치룬 나와 비교가 되기도 했지만 그 자체만으로는 부끄러움은 없었습니다. 형식적 틀이나 규모가 자녀에 대한 애정지수를 측정하는 잣대는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나를 부끄럽게 하는 것이 꼭 하나 있었습니다. 전혀 생각하지도 못했고, 고민조차 하지 않았던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자녀가 태어나는 순간부터 사진으로, 영상으로 매순간을 기록한 것이었습니다. 자녀와 가족의 모습을 담아놓은 영상에는 부모로서의 정성이 세심하게 담겨지고 묘사되어 있었습니다.  


그것을 보면서 짧은 시간에 부끄러움을 느끼며 많은 생각을 해야 했습니다. 가족과 나에 대해서, 그리고 자녀들에게 어떤 사랑을 보여주었고, 또 현재는 어떤 모습의 부모 역할을 하고 있는지에 대한 상념입니다. 


생각해보니 카메라를 들고 세상을 비춘답시고 돌아다니면서도, 내 가족에게는 한 번도 기록을 남겨 두지 않았습니다. 둘째 녀석이 태어난 이후, 이 생활로 접어들면서 나 자신의 이상만 추구하며 살아왔던 것 같습니다. 그러다보니 모든 가족사진에는 아빠얼굴이 없을 만큼 자연스럽게 가정에 소홀해지고, 가정에 대한 문제들은 짝지에게 맡겨 버린 모양세가 되었습니다. 


경제적으로 무능한 남편이자 아빠이기도 했지만, 더러는 엄격하고 무정한 아빠이기도 했습니다. 강하게 키우겠다는 욕심이 애들에게는 상처를 준 것입니다.


한번은 둘째 녀석이, 그때가 유치원 다니는 시기였는데 승용차에 오르면서 차문에 손가락이 끼이는 사고를 당했습니다. 차를 출발시킨 이후에 짝지의 얼굴을 보고 뭔가 이상해서 물었더니 애가 손가락을 끼였다고 말해 주더군요. 둘째 녀석은 손가락을 움켜잡고 왕방울만한 눈물을 떨어뜨리고 있었지만 소리 내어 울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짝지가 내게 화를 내기 시작했습니다. 애들을 울지 못하게 하니까 아파도 울지 못하고 있는 게 아니냐고.  


손가락을 보니까 움푹 패인 자국이 선명하게 나타나 있었습니다. 그 어린 나이의 꼬마소녀에게는 엄청난 고통이었을 겁니다. 그걸 둘째 녀석은 표현조차 못하고 있었던 거지요. 그런데도 참으로 무정한 아빠였습니다. 겨우 두 마디를 건넨 것으로 기억됩니다.


 “아프냐?” “아프면 울어라.”


그제야 둘째 녀석은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잔인했던 것은 우는 모습을 무덤덤하게 지켜만 보는 내 행동이었지요. 애들이 걸음마를 배우면서 돌 뿌리에 걸려 넘어져도 일으켜 주지 않았던 것처럼 자녀를 엄격하고 강하게 키워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있었습니다. 그것이 자녀에 대한 교육이자 사랑의 방식이기도 했습니다.


가족과 굳이 상관없는 외적인 일에만 집중하며, 가정의 의미를 깊이 느끼지 못하고 했던 내게 그 날의 돌 찬치는 사뭇 충격을 던져 주었습니다. 그래서 부드러운 모습을 가족에게 보이려고 노력을 하고 있는데 여전히 미숙하기만 합니다. 평소처럼 두 녀석과 몸 장난하고 친구처럼 행동하고 있지만, 무덤덤한 표정과 어투는 변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제 청소년이라고 우기는 녀석들에게 친구들의 아빠는 어떠냐고 물어보았습니다. 둘째 녀석이 휴일이면 같이 공원에 놀러가고, 생일도 친구 불러서 하고, 수영장에도 같이 간다고 말하더군요. 녀석은 몇 번 그 친구를 따라서 같이 수영장에 가기도 했습니다.


반면 큰 녀석은 달랐습니다. 아주 불만스런 모습을 토합니다.


“이제 엄마 고생 그만 시키세요.”


근골육계로 인해 한 달 내내 고통에 시달리고 있는 짝지에 대한 걱정입니다. 녀석도 성격이 나와 비슷한 모양입니다. 하고 싶은 말은 감추지 않습니다. 그게 걱정입니다.


요즘 짝지는 내가 무섭게 변했다고 말합니다. 처음의 온화했던 인상도 없어지고 말투와 성격까지 거칠어졌다고 합니다. 그것이 굳어 있는 ‘엄격함’의 모습으로 보였나 봅니다. 나 자신은 느끼지 못하고 있지만 가까이 있는 사람의 눈이 정확할 거라는 생각을 합니다. 살아오면서 개인적으로 겪어야 했던 일들과 사회적으로 경험해 온 일들로 인해 자신도 느끼지 못한 상태에서 변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그래서 엄격함 보다 조금은 흐트러진 모습으로 가족을 대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엄격함이란 자신에게만 비출 일입니다. 반면 타인에게는 배려가 필요할 것입니다. 비단 가족이라고 해서 다르지는 않을 것입니다. 얼마나 변화된 모습을 애들에게 보여줄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꾸준히 의식적으로 노력해 볼 생각입니다. 한편으로는 가장으로서의 역할도 제대로 해야겠다는 강박감도 느껴집니다.


가파르게 변하고 빠르게 적응해야 하는, 한 눈 돌리면 관점을 잃어버리는 사회가 되었습니다. 그 속에서 가장 가까이 있는 가족에 대한 배려를 잊고 지내는 분들도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그런 분들과 함께 가족이라는 의미와 자신의 모습을 되새겨 보는 글이 되었으면 하고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