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점순(1927년) 할머니를 만난 것은 3월 2일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가 부산·경남지역의 민간인집단학살사건에 대해 피해실태를 공식적으로 확인한 날입니다. 마산지 진전면 곡안리 성주 이씨 제실. 마을 주민들은 이곳에서 미군으로 부터 총격을 당했다. 당시 미군은 전투기로 폭격을 하는 동시에 제실과 60~70미터 거리인 이 곳에서 기관총 사격을 가했다. 미군의 총격을 피해 주민들이 달아 난 뒷 산. 이곳에 인민군이 주둔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곡안리 제실 당시의 총알 자국이 남아 있는 우물. 당시 한 소녀는 이 우물 안에에서 숨진채 발견되었다. 이병직 한의원 원장이 황점순 할머니를 돕겠다고 나섰다. 이 날 이병직원장은 할머니에게 한약을 선물했다.
김주완 기자의 제안으로 할머니를 만나러 나선 것은 진실화해위의 결정문이 나온 터라 할머니의 소회를 듣기 위해서 였습니다. ‘뼈에 사무친다’는 표현으로도 모두 담을 수 없는 한을 지닌 유족의 이야기는 의미가 있기도 했습니다.
황점순 할머니에 대한 이야기는 영국 BBC에서 제작한 다큐 ‘다 죽여버려(kill'em all)에서도 다루어졌습니다. 그런만큼 미군에 의한 마산시 진전면 곡안리 민간인집단 학살은 많이 알려진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할머니는 1950년 8월13일, 마을 제실로 피신을 한 주민들에게 폭격과 기관총 사격을 가한 미군에 의해 곡안리 주민들을 무참하게 학살되던 그날에 시어머니와 아들을 함께 잃었습니다. 당시 미군은 마을 제실로 전투기와 기관총을 동원해 주민들을 학살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목에 큰 부상을 입고 뒷산으로 피신하던 할머니는 다시 총격을 가해 온 미군에 의해 5~6곳에 총상을 입고 쓰러졌습니다. 그 자리에서 시어머니는 즉사를 하고 등에 업고 있던 2살박이(추정) 아이도 목숨을 잃은 것이 할머니의 사연입니다. 할머니는 이 사건에 앞서서 국민보도연맹 사건으로도 억울하게 남편을 잃어야 했던 비극의 주인공이기도 합니다.
2일 만난 할머니는 기대와는 달리 할머니는 차분한 모습이었습니다.
“오랜 세월동안 품어왔던 한을 이제는 벗어버리고 싶다”는 것이 할머니의 생각이기도 했습니다. 너무나 오랜 세월 동안 지쳤기도 하거니와 팔순을 훌쩍 넘긴 황혼의 나이에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현실적인 체념이기도 했습니다.
진실화해위의 결정에 대해서는 “그 사람들 너무 고생했다”며 “돈이 있으면 보답하고 싶다”는 것이 전부였고, 단지 “이제는 너무 늙어서 먹고 싶은 것이나 제대로 먹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소박한 바람이 전부이기도 했습니다.
그로부터 한 주가 바뀐 7일, 다시 할머니를 만났습니다.
“한약을 한번 먹어보았으면 좋겠다”는 말에 한숨을 내쉬곤 했던 김주완 기자가 할머니 진료를 위해 마산으로 모시자는 제안 때문입니다. 마산시에 있는 이병직 한의원이 할머니를 돕겠다는 약속을 한 모양입니다.
진료를 마친 원장의 이야기로는 할머니는 심혈관질환이 홧병에 기인된 측면이 강하다고 합니다. 수많은 세월, 가슴에 품어 온 한이 홧병을 만든 것이라고 합니다. 그렇지만 할머니는 자신에게 닥친 불행을 이제는 ‘팔자’라는 말로 받아들이는 것 같습니다. 누구를 원망해도 소용이 없다는 말도 하십니다. 그래서인지 나이에 걸맞지 않게 화사한 얼굴을 보이고 계십니다.
점심을 같이 하면서 당시의 일을 묻고 있었는데, 세상을 받아들인 듯 했던 할머니에게는 끝내 버리지 못하고 있는 미련이 있었습니다. 당시, 총상을 당했던 2살 정도의 아들이 혹시 살아있을지도 모른다는 미련입니다. 할머니 말로는 아이의 시신을 찾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할머니는 그것이 부질없는 생각이라고 하면서도 행여나 하는 마음을 버리지 못하시더군요. 살아있다면 아들도 이제 61세의 나이가 되는 셈입니다.
세상을 초월한 듯 담담하게 옛 이야기를 들려주다가도, 아들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즈음이면 어김없이 눈시울을 적시는 할머니를 보면서 모정이란 걸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남편을 잃은 상처보다도 자식을 잃은 것이 더 가슴에 매인다는 할머니의 눈물을 보면서 전쟁이 가져온 참상이 얼마나 가혹했는지를 다시금 떠올리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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