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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한국전쟁 당시 ‘민간인 골로 보내고 물 먹인 국가’



 1950년 한국전쟁당시 부산·경남지역의 형무소 재소자와 민간인 집단학살 사건에 대해 국가기관이 피해사실을 공식적으로 확인했다. 부산·경남지역의 민간인학살에 대해 국가가 조사를 통해 실태를 공식 확인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이하 진실화해위, 위원장 안병욱)은 2일
1950년 7월부터 9월까지 부산․마산․진주형무소 등에 수감된 재소자와 민간인이 육군본부 정보국 CIC(특무대), 헌병대, 지역경찰, 형무관(교도관)에 의해 불법적으로 희생됐다고 밝혔다. 진실화해위가 밝힌 희생자는 최소 3,400여 명에 이른다. 그 가운데 신원이 확인된 희생자는 576명이다.  

조사결과에 따르면 부산․경남지역 형무소에서 희생된 대다수의 재소자들은 정당한 법적절차 없이 살해된 것으로 밝혀졌다. 희생자들은 예비검속된 국민보도연맹원들과 함께 다른 형무소로 이감시
킨다는 이유로 끌려가 산골짜기나 바다에서 수천명이 집단학살 됐다.  

부산형무소에서는 1950년 7월 26일부터 9월 25일까지 세 차례에 걸쳐 부산지구 CIC(특무대)와 헌병대, 지역 경찰, 형무관들이 부산형무소 재소자와 국민보도연맹원을 비롯한 예비검속자 등 최소 1,500여 명을 집단 살해했다. 그 가운데 신원이 확인된 희생자는 148명이다.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부산형무소 희생자들은 다른 형무소로의 이감 등을 이유로 끌려간 후, 부산 사하구 동매산과 해운대구 장산골짜기 등지에서 집단 사살됐다. 그 중 일부는 부산 오륙도 인근 해상에서 수장된 것으로도 밝혀졌다. 
 

마산형무소에서는 1950년 7월 5일부터 9월까지 네 차례에 걸쳐 마산지구 CIC와 헌병대, 지역 경찰 마산형무소 형무관들에 의해 최소한 717명의 재소자와 국민보도연맹원들이 총살되거나 마산 구산면 앞바다에 대부분 집단 수장되었다. 이들 중 신원이 확인된 희생자는 358명이다. 
 

또, 진주형무소에서는 1950년 7월 중순부터 하순까지 최소 1,200여 명의 재소자와 국민보도연맹원들이 진주지구 CIC와 헌병대 그리고 진주경찰서 경찰들에 의해 집단 살해되었으며, 신원이 확인된 사람은 70명이다. 진주형무소의 희생자들은 진주 명석면 우수리 갓골과 콩밭골, 관지리 화령골과 닭족골, 용산리 용산치, 문산읍 상문리 진성고개, 마산 진전면 여양리 산태골에서 집단 총살당했다. 
 

1950년 9월 1일, 부산형무소 재소자들이 희생 현장으로 끌려가기 직전 트럭에 실려 있는 모습 [출처] Picture Post-5086-pub.1950 (by Bert Hardy)


진실화해위는 이번 사건에 대해 “한국전쟁 당시, 인민군 비점령지역으로 치안이 유지된 부산과 경남지역에서 특별히 위험하다고 할 수 없는 형무소 재소자와 민간인 수천 명을 군경이 일방적이고 임의적으로 집단학살한 것”이라고 말하고 이는 “사상 유례가 없는 비인도적인 행위”라고 말했다.  

또, “비록 전시였다고는 하나, 대한민국이 통치하고 있던 비전투․비교전지역인 부산․경남지역에서 단순히 남하하는 인민군에 동조할 것을 우려하여 형무소 재소자들과 민간인이었던 국민보도연맹원들을 불법적으로 살해한 것은 범죄행위”라고 말했다. 
 

진실화해위는 “재소자 가운데 일부의 기결수들은 군법회의에서 사형을 언도받고 헌병대에 인계돼 총살되었으며 대부분 육군형사법․국방경비법 등을 위반한 징역 3년 이하의 단기수들로 당시 사형수가 아니었다”며 “형이 확정된 기결수를 다시 처형한 것은 헌법이 규정한 일사부재리의 원칙을 위반한 것이고 군법회의는 요식적인 행위였을 뿐 사실상 집단학살과 다름없는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