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12월, IMF 구제금융을 거치면서 노동시장 유연화, 비정규직 문제가 사회문제로 대두됐다. 이제는 비정규직 문제도 정점에 이르렀고 인력파견업의 고용구조를 가진 노동시장이 활성화됐다.
기업들은 정규직 노동자를 채용하기보다 외주형식을 빌린 소사장제를 통해 인력을 조달하거나, 그것도 여의치 않으면 인간시장으로 불리는 용역회사를 통해 인력을 채용하는 방식을 선호하기 시작했다. 외주형식을 취하면 노사관계에서 부담을 질 필요가 없다. 또 임금측면에서도 절약이 된다. 무엇보다 원청에 종속될 수밖에 없는 산업구조를 이용해 생산에 필요한 통제를 간접적으로 할 수 있어 편리하다.
이러한 원청과 하청, 재하청으로 이어지는 다단계형식의 고용은 건설현장을 넘어서 이제는 제조업에까지 확대, 일반화되고 있다. 대기업으로부터 하청 물량을 확보한 중소기업은 공장시설을 직접 운영하지 않는다.
공장의 하청업체(소사장)에게 임대형식을 통해 생산시설을 분양하면서 생산시설 없이 사업자등록증만 가진 소사장이 노동자를 모집해 사업을 할 수 있게 한다. 공장라인을 임대받은 사내하청업체는 그만큼의 자본 없이도 인력고용만으로 쉽게 사업을 시작할 수 있다. 그 형식을 보면 인력파견업체(용역)와 별반 다르지 않다. 다른 것이 있다면, 원청에서 파견노동자에 대한 임금을 받는 것이 아니라, 생산물에 대한 제조단가를 받는다는 것뿐이다.
공장라인별로 사업주가 다르면서 한 공장안에는 소속이 다른 노동자들이 혼재되어 작업을 한다. 이렇게 원청과 하청, 재하청으로 이어지는 생산구조는 결국 저단가 하청으로 이어진다. 피해는 결국 하청노동자들에게 전가된다.
기업이 우리의 희망? ⓒ 기업사랑협의회
소모품이 되어 버린 노동자들
‘기업하기 좋은 도시’가 모토인 경남 창원시의 팔용단지, 그곳에 소재한 유성정밀(주)도 전형적인 사내하청구조를 띠고 있다. 국내 굴지의 그룹인 삼성테크윈으로부터 하청을 받는 유성정밀은 물량을 다시 소기업에게 사내하청 주고 있다. 원청에 안정적인 물량을 제공하기 위해 최소한 두 개 업체 이상의 소기업에게 하청을 준다. 유성정밀에서 라인을 임대받아 사업을 하는 소사장만 3~4명에 이르기도 한다.
한 공장 안에는 용역으로 들어온 노동자도 있고, 사내하청으로 직접 고용된 노동자도 있다. 같은 일을 하면서도 이들의 월급은 최고 30~40만원의 차이가 난다. 사내하청으로 직접 고용된 노동자들보다 용역을 통해서 원청인 유성정밀에 고용된 노동자들의 임금이 높게 나타난다.
이들에게 고용보장은 꿈같은 이야기다. 1년이 넘게 일하기가 힘들다는 것이 그들의 하소연이다. 갑작스럽게 소사장이 회사 문을 닫기도 하고, 비수기에는 회사를 떠나야 한다. 퇴직금, 보너스를 줄이기 위해 1년 내에 해고되기도 한다.
동일인이 회사를 운영하면서 폐업과 창업을 반복하는 경우도 많다. 심지어 사업자등록증을 빌려서 사업을 운영하기도 한다. 세무관계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의도이기도 하지만 퇴직금등의 임금을 줄이기 위한 수단으로도 사용된다. 이 때문에 노동자들은 퇴직금조차 받기 어려워진다. 무엇보다 노동자들을 힘들게 하는 것은 최저임금조차 제때 받지 못하는 임금체불과 고용불안이다.
창원시 공단지대 ⓒ 경남도민일보
3년여 동안 5개 회사 다녀야 했던 사연
김아무개(41세, 여)씨가 창원시 팔용단지에서 일을 하기 시작한 때는 2006년 3월. 그는 전기 케이블과 렌즈를 생산하는 하청 회사에 8개월동안 다녔다. 일당제로 일하던 김씨가 퇴사를 결정하게 된 것은 저임금과 높은 노동강도를 견딜 수 없어서다.
인근 업체에 이력서를 넣고 다시 취업 했지만 이 회사도 상황이 다르지 않았다. 역시 사내하청업체인 모회사에 정규직으로 채용됐지만 원청인 유성정밀 공장으로 한 달 동안 파견근무를 시켰다. 아직 생산라인이 만들어지지 않았다는 이유였다.
“의료보험을 이리저리 미루더니 3개월 동안 신고를 안 했어요. 세금도 내지 않았고요”
의료보험 적용을 해주지 않던 회사가 “문을 닫는다”는 소문이 나자 김씨는 퇴사를 결정했다. 안정된 직장을 찾기 위해서였다. 회사는 퇴사를 한 지 두어 달 후 문을 닫았다.
김씨는 재취업을 했지만 그곳에서도 두 달을 넘기지 못했다. 휴대폰 케이스를 하청 받아 생산하는 새 회사는 알고 보니 임금체불로 악명 높은 곳이었다. “2달 일한 임금을 받는데 꼬박 4달 동안 나누어서 받아야 했다”는 것이다.
먹고 살아야 했기에 그는 다시 이를 악물고 재취업을 했다. 보다 나은 노동조건을 찾는 것은 이미 포기했다. 그 동안의 경험으로 노동현장의 실태를 알았기 때문이다. “창원 팔용단지에서 모집하는 곳은 다 같은 곳”이라는 게 그녀의 생각이다.
자동차 부품을 생산하는 모 회사에 재취직한 그는 기름으로 인해 피부병을 앓으면서도 어금니를 악물고 다녔다. 더 나은 조건의 회사도 찾을 수 없었지만 회사를 옮기면 그 만큼 손해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곳 역시 매달 임금체불이 됐고, 최저임금법조차 위반하는 사업장이었다. 퇴직금과 보너스를 받기 위해 13개월 동안 아픈 몸으로 버틴 후 김씨는 다시 퇴사했다. 이후 그의 통장에는 최저임금법 위반으로 세금과 월급을 재정산한 48만원이라는 거금이 들어왔다.
취임 직후 경제인과 만남을 가진 이명박 대통령 ⓒ 국회사진기자단
임금체불한 채 일방폐업...“회사가 어려우니 지급 안된다”
창원 팔용단지 유성정밀(주) 사내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서로 소속이 다르다. 원청에서 공장라인만 임대받은 사내하청업체(소사장)에 고용되었기 때문이다.
신영전자라는 사내하청업체 취직을 했지만 회사는 1년도 지나지 않아 남영전자로 바뀌었다. 그렇다고 사장이 바뀐 것은 아니다. 회사의 명칭만 바뀐 것이다. 재취업해 1년을 넘기는 시점에서 김씨에겐 다시 고민거리가 생겼다. 소사장이 “단가가 맞지 않다”며 폐업을 한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이미 같은 공장의 다른 라인에서 일을 하던 중국 출신의 이주노동자들은 해고를 당했다. 또 남영전자의 전신인 신영전자 소속으로 있던 노동자들이 퇴사 후 임금체불로 노동청에 민원을 제기해 놓은 상태다.
갑작스런 폐업도 충격이었지만, 회사 사정이 어려워 보너스를 지급할 수 없다는 말을 함께 들은 김씨는 당황했다. 일손이 잡히지 않던 그와 동료들은 혼란에 빠졌다. 지급일을 넘긴 상여금과 한 달의 임금이 아직 남아있다. 그런데 앞서 퇴사한 노동자들이 원청의 지급대금에 대해 가압류를 신청할 것이라는 소문에 더 불안해진다. 알고 보니 사장은 재산도 없는 사람이다. 자신들의 임금을 보장받을 방법이 막막해진 것이다.
같은 노동자끼리 논란도 벌어졌다. ‘회사가 어렵다니 보너스를 포기하자’는 의견과 ‘받아야 한다’는 의견이 맞섰다. 이들 사이에는 그만한 사정이 있다. 나이가 많은 여성은 재취업이 어려워지는 만큼, 라인을 인수해가는 또 다른 사장에게 고용되기 위해 자신의 임금을 포기하려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근무 6개월 만에 근골육계 질환으로 병원에 다녀야 했던 그는 여기서 더 이상 물러서고 싶지가 않다. 법정 최저임금으로 일한 만큼, 경영의 잘못으로 인한 적자를 자신이 책임질 수는 없다는 생각이다.
최저임금 상승에도 변하지 않은 임금, 그리고 고용불안
창원경제 기업사랑 ⓒ 창원시
매년 최저임금이 오르지만 이들이 느끼는 임금차이는 거의 없다. 최저임금이 오르면 회사는 교통비나 상여금 등을 줄여버리기 때문이다. 일방적인 회사의 임금조정에도 저항 없이 수용할 수밖에 없었다. 이미 300%였던 상여금은 250%로 줄었다. 이제는 그마저도 줄인다는 소문이 들린다.
김씨는 자신을 고용한 사장의 처사가 원망스럽기도 하지만 원청을 바라보는 시선도 곱지 않다. 그는 “원청에서 작업 단가를 내려서 벌어진 일”이라고 들었고 그렇게 믿고 있다. 법정 최저임금으로 일했지만, 고용주는 저단가에서 비롯된 적자를 고스란히 노동자들에게 전가시키고 있는 것이다.
회사가 폐업을 한다는 소문은 기정사실로 들린다. 모 업체가 자신들이 근무하던 생산라인에 들어온다는 소문이 더해졌기 때문이다. 사장이나 관리자로부터 공식적인 통보조차 받지 못했다.
“우리 사장이 남는 게 없다며 그만두는데, 새 사장이 들어오는 걸 보면 (이윤이)남는 게 있기 때문이겠죠.”
적자를 감수하고서라도 사내하청으로 들어온다는 업체가 있다는 말에 머리가 어지럽다. 새로운 업체가 인원을 모집하고 있다는 소문을 들은 그는 잠시 마음이 흔들린다. 하지만 선뜻 마음이 가질 않는다. 무엇보다 낮은 단가로 들어온 사내하청업체도 믿을 수가 없다. 새로운 업체도 잦은 임금체불로 말썽이 일고 있다는 소리도 들린다.
“공장 일을 그만두고 다른 곳에 일자리를 찾을까 생각중입니다.”
그가 선택할 수 있는 폭은 너무 좁다. 암울한 현실을 인정하고 재취업을 하거나 공장 일을 포기하고 다른 일자리를 찾는 선택만 남았다. 대부분의 모집광고가 고용조건이 다르지 않은 사내하청업체이거나 용역업체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정규직도, 비정규직도 아닌 자본의 소모품으로 3년여 만에 거리로 내몰리게 된 그는 다시 생계를 걱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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