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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등급외' 장애인을 아시나요?

병원으로부터 장애 1등급 진단을 받은 정순기(52세) 씨는 장애인의 날이 유독 서럽다.

정씨는 ‘등급외’ 장애인이기 때문이다. ‘등급외’ 장애는 장애등급을 매길 수 없는 장애인을 지칭하는 말이다. 그래서 장애복지서비스를 받지 못한다. 장애인이되 장애인이 아닌 까닭이다.

그가 서러운 이유는 또 있다. 지난 1월 중증장애인 장애등급재심사를 신청했다가 기존의 3급 지체장애인 자격마저 잃은 것이다. 장애등급 1급으로 상향 조정 재심사를 받은 것이 화근이 되었다.

비장애인으로서 조선 기계, 선박 분야의 설계를 하던 그에게 난데없는 불행이 찾아왔다.

“2002년부터 양쪽 팔의 힘이 없어지고 제대로 기능이 되지 않았습니다. 어쩔 수 없이 부산대학병원에 한 달가량 입원을 했는데 병세는 나아지지 않았고, 먹고 살아야 하니까 그 상태로 일을 계속 했습니다.”

병원에서 1급 지체장애 진단을 받은 정순기씨가 활동보조인의 도움으로 이동하고 있다.


희귀난치성 질환은 정확한 병명도 나오지 않았다. 2005년부터 악화되기 시작한 질병은 양 팔의 기능을 앗아 갔고, 이듬해인 2006년 부산대학병원 제활의학 전문의는 그에게 지체장애등급 3급 진단을 내렸다.

“의사가 ‘몰빈’이라는 마취약이 있는데 이 약도 듣지 않는다면서 더 이상 치료할 방법이 없다고 하더군요. 진주경상병원, 마산삼성병원에서도 이 희귀난치성 질환을 알지 못했고, 서울 빅3급 병원에서 치료를 받으라고 했습니다.”

병명이 나오지 않아 병원도 치료할 방법을 찾지 못했다. 하지만 서울 쪽의 더 큰 병원으로 갈 수도 없었다. 3년 넘게 투병을 하다 보니 치료비는커녕 교통비조차도 없었다. 치료비도 얼마가 나올지 모르는 일이었다.

불행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하지(양 다리)까지 기능이 떨어져 혼자 몸을 가눌 수 없는 상태가 된 것이다. ‘복합부위 통증증후군’(CRPS)이라는 희귀난치성 질환이라는 것을 안 것은 그 이후이다. 정씨는 질병관리본부에 등록되어 기초수급자가 됐다.

이후, 지난 1월 창원파티마 병원을 찾은 그는 지체장애 등급 1급 진단을 받았다.

“전신의 통증과 사지의 근력약화가 진행중인 환자로서 현재 사지의 마비와 심한 통증을 보이고 있고, 국제통증학회 진단 기준상 (만성적인)복합부위 통증 증후군으로 보인다.”는 것이 진단내용이다.

등급외 장애인 판정을 받은 정순기씨.

정씨는 이 진단서를 증빙해 중증장애인등급 재심사를 신청했다.

1급 지체장애인에게 주어지는 활동보조서비스를 이용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중증장애인 장애재심사평가원’의 장애등급 결정서는 그를 망연자실하게 만들었다.

“장애등급 판정 기준상 지체기능장애는 주로 척수 또는 말초 신경계의 손상이나 근육병증 등으로 마비에 의한 팔, 다리의 운동기능장애가 있는 경우에 한하며, 감각손실 또는 통증에 의한 장애는 포함되지 않는다.”는 것이 결정서의 내용이다.

즉, 복합부위 통증 증후군으로 인한 통증으로 마비가 된 것은 현행 장애판정기준상 장애에 해당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규정으로 ‘장애인심사 평가원’은 그가 이전에 판정받은 지체장애 3급 자격까지 말소를 시켰다.

“2003년 장애등급 기준과는 달리 보건복지부 장애판정 기준위원회가 2009년도 장애인 연금법을 개정하면서 장애등급 판정 기준고시를 만들었습니다. 그 내용 중에 감각 손실 또는 통증에 의한 장애는 포함하지 않는다는 규정이 있습니다. 결국 이 규정이 3급 지체장애인을 비장애인으로 만들었습니다.”

정씨는 보건복지가족부부에서 장애등급심사를 위탁받고 있는 국민연금관리공단 장애등급심사센터를 방문해 항의했다.

“내가 활동보조 도우미가 필요한 사람인지 아닌지를 물었어요. 그랬더니 센터장과 차장은 필요한 사람이다. 그러나 지금 장애판정 기준에 의해 어쩔 수가 없다고 말을 했습니다. 그리고 이의신청을 하면 ‘직접 진단’이라는 제도가 있다고 하더군요.”

그는 이의신청을 했고, 지난 2월에 ‘직접 진단’ 심사를 받았다. 하지만 끝내 장애등급을 인정받지 못했다. 같은 이유로 장애는 있지만 등급을 매길 수 없는 ‘장애외’ 등급이라는 것이 심사위의 입장이다. 장애등급이 사라지자 정씨는 3월 창원시에 장애인복지카드를 반납해야만 했다.

“장애 등급을 상실하면 즉시 반납규정이 있어요. 그래서 창원시에 가서 몸의 상태를 설명하고 반납을 해야 하는지 물었는데, 서류상 장애인이 아니라며 반납하라고 하더군요.”

휠체어를 스스로 탈 수도 없는 1급 지체장애인. 2006년부터 휠체어에 의지해 온 그는 장애인 자격을 상실하면서 가정에서조차 움직일 수 없게 됐다. 그동안 경상남도의 장애인도우미뱅크로부터 활동보조인 서비스를 받아 왔는데, 장애인 등급이 사라지면서 이용할 수가 없게 된 것이다. 다행이라면 주위의 지인들이 그를 도와주고 있다는 사실이다.

“현재는 기초생활수급자에게 나오는 73만원으로 초등학생인 딸과 함께 생활하고 있습니다. 혼자서는 움직일 수가 없어 개인적으로 활동보조도우미를 이용하고 있는데, 이 비용만 한 달 143만 원이 지출됩니다.”

“도우미가 없을 때는 초등학생인 딸이 라면을 끓여주고... 소변 통을 비우고... 그렇게 생활하고 있습니다. 밖에는 아예 나갈 생각조차 하지 못합니다. 딸의 힘을 빌어서 계속 살 수도 없고, 어느 요양단체 시설이라도 가고 싶은 마음뿐입니다. 그러면 어린 딸과 헤어져야 하는데... 이렇게는 살고 싶지 않습니다.”

활동보조인의 도움없이 이동을 할 수 없는 정순기씨는 등급외 장애인이 되면서 기존의 장애3급 판정까지 상실했다.

분노가 서린 듯 한가득 높았던 그의 음성이 가족의 이야기로 들어가자 잠긴다. 그는 초등학생인 딸과 함께 단칸방에서 생활하고 있다.

보건복지가족부는 2009년 장애등급 판정기준 고시(제2009-227호)가 장애인들의 반발을 불러오자 지난 1일 완화기준을 발표했다.

하지만 현재까지 심사는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심사위원의 선정이 완료되지 않았다는 것이 그 이유다.

정씨는 이 심사에 기대를 걸고 있다. 하지만 경남DPI는 “이 완화기준도 심사위원회에서 필요성을 느끼지 않거나, 해석하기 따라서 심사를 받을 수 없는 한계가 있고, 아주 특이한 경우에 한해서 적용되는 조항”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국민연금공단 장애인 지원실의 보완규정은 “이의신청 심사과정에서 장애심사위원회가 심층 심사할 필요성이 인정되는 경우, ‘장애등급 판정기준(보건복지부 고시)의 문리적 해석, 적용만으로 장애등급을 결정하는 것이 불합리하다고 판단되는 경우”로 되어 있다.

경남DPI는 “정부가 장애인의 수를 미리 정해놓고 장애판정을 내리는 수급자 원칙을 견지하고 있다”며 “장애인의 수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판정하는 공급자 원칙이 적용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또, “의학적 기준이나 예산의 문제로 장애등급 판정기준을 만들어서는 안된다.”며 “사회적 장애를 기준으로 판정을 내려야 한다.”고 지적했다. 병이든 어떤 문제든 현실적인 장애를 가진 이는 장애인이라는 입장이다.

정씨도 “이 문제는 나 자신만의 문제가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이 고시로 인해 고통을 받고 있다.”며 “2009년 장애등급 판정 고시에 의해 장애인이 비장애인이 되는 얼토당토 않는 현상이 벌어진 것이 이해가 안 된다.”고 토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