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천 해인사 인근의 홍제암 앞에는 사명대사의 석장비가 네조각이 난 후 접합되어 서 있습니다.

홍제암에 대한 안내판에는 일본인이 깨트린 것이라고 새겨져 있지만, 실제 그 배후 인물은 당시 해인사 주지 변설호였다고 합니다. 안내판에서는 변설호라는 인물이 빠져 있더군요.
 
정운현 오마이뉴스 전 편집장의 양해를 얻어, 그의 최근 저서 '친일파는 살아있다'에서 그 원문을 빌어 영상과 함께 싣습니다.





경남 합천의 명찰 해인사의 일주문 왼편으로 난 길을 따라 100m 정도를 가면 다리(홍제교)가 하나 나타난다그 다리를 건너가면 오른쪽 편에 부도밭이 나타나고 바로 뒤에 암자 하나가 나타나는 데 바로 홍제암(弘濟庵)이다홍제암은 임진왜란’ 때 산중의 승려들을 규합해 왜적과 맞서 싸웠던 사명대사 유정(1544~1610)이 입적한 곳이다.

 

광해군은 대사가 입적하자 자통홍제존자(慈通弘濟尊者)’라는 시호를영정을 모신 영자전에는홍제암(弘濟庵)’이라는 편액을 내려 그의 호국정신을 기렸다대사가 입적한 지 2년 뒤 홍제암 오른편 부도밭에 대사의 일대기를 기록한 석장비(보물 제1301)를 세웠는데 비문은 당대의 문장가이자 홍길동전의 저자인 허균이 썼다허균은 비문에서 나는 비록 유가(儒家)에 속하는 무리이지만서로 형님 아우 하는 사이로 누구보다 스님을 깊이 알고 있다.”고 적었다.

 

그런데 이 유서 깊은 사명대사의 석장비는 한가운데가 열십자(모양으로 네 동강이 났던 흔적이 완연히 남아 있다현재 해인사에 있는 석장비는 일제말기인 1943년에 네 조각으로 쪼개졌던 것을 1958년에 다시 접합하여 복원한 것이다대체 누가무슨 연유로 호국영령인 사명대사의 비석을 이처럼 훼손했을까그 장본인은 다름 아닌 당시 해인사 주지로 있던 승려 변설호(卞雪醐,창씨명 星下榮次)였다그는 출세를 위해 동료 승려들을 밀고하는가 하면 일경에 아부하기 위해 사명대사의 비석을 네 조각을 내는 데 앞장서기도 했다.

 

변설호는 1888년 5월 해인사가 소재한 경남 합천에서 태어났다금강산 유점사 강주(講主)로 있다가 1935년 9월 유점사 경성포교소 포교사로 부임하면서 그는 서울생활을 시작했는데 그 직후부터 그는 친일로 들어섰다중일전쟁 발발 직후인 1937년 8월 그는 용산 주둔 조선군사령부에 가서 전사한 일본군의 위령제를 지내주었으며또 일본군 출정부대를 전송하기도 했다이듬해2월에는 유점사 경성포교소에서 일본군의 승리를 기원하는 기원제를 지냈으며신도들로부터 국방헌금 50원을 거두어 부대에 직접 전달하기도 했다.

 

그해 3월 그는 돌연 아무런 연고도 없는 해인사 주지로 선출됐다그런데 해인사는 1936년 이해 두 번이나 주지를 선출해놓고도 총독부로부터 인가를 받지 못해 주지가 공석이었다그 자리를 그가 꿰 찬 데는 앞서 그가 서울에서 행한 각종 친일행각의 공로가 총독부로부터 인정받았음은 불문가지다그는 주지로 임명도 받기도 전에 본·말사 승려들을 재촉하여 국방헌금 515위문금 578위문대 200금 1천인침(千人針) 2개 등 현금 1094원과 물품 1305점을 일본군에 바쳤다그리고 그 다음달로 그는 주지 취임 인가를 받았다.

 

그의 친일행각은 급기야 항일 승려를 밀고하기에 이르렀다. 1943년 해인사 강원인 법보학원의 강백이자 8대 주지를 역임한 이고경(李古鏡스님과 원장 임환경(任幻鏡스님이 학승들에게 불교경전 외에 조선역사 등을 가르친 것이 말썽이 돼 합천경찰서에 붙잡혀 갔다흔히 해인사사건이라고 불리는 이 사건으로 두 스님을 비롯해 11명의 학승들이 투옥됐는데이들을 밀고한 사람이 바로 해인사 주지로 있던 변설호였다.

 

사명대사 석장비 훼손사건은 그 뒤의 일이다그는 당시 합천경찰서장 다케우라(竹浦)에게 홍제암에 있는 석장비의 내용이 문제가 있다고 제보했다. 1604년 사명대사가 일본을 방문해 왜장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와 대화를 나누던 중 가토가 조선에 귀중한 보물이 있느냐?’고 묻자 사명대사가 지금 조선에서 가장 소중히 여기는 보물은 바로 당신 목이오라고 대답했다는 대목이 있다.

 

변설호는 비석 내용 가운데 바로 이 대목을 문제삼아 다케우라 서장에게 이런 비석을 그냥 세워둬도 되겠느냐?”며 부숴버릴 것을 권유했다며칠 뒤 그는 경찰과 석수를 데리고 홍제암으로 가서 석장비를 네 동강 낸 다음 한 조각은 해인사 내 경찰주재소 정문 디딤돌로 사용하고 나머지 조각들은 해인사 구광루와 명월당 앞에 보란 듯이 방치하였다.

 

해방 이듬해 그는 일제 때의 반민족행위로 승권(僧權박탈는 중징계를 받고 절에서 내쫓겼다.또 1949년 반민특위 경남지부에 체포돼 그해 9월 25일 보석으로 석방될 때까지 옥살이를 하기도 했다. 1975년 그는 대한불교 총화종 초대종정으로 취임했는데 이듬해 89세로 사망했다그는 고은의 <만인보>(26)에도 친일승려로 이름이 등장하는데 대처승인 그는 언론인 모 씨의 장인으로 알려져 있다.


Posted by 구자환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Favicon of https://chamstory.tistory.com BlogIcon 참교육 2011.10.03 08:3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역시 프로와 전문가는 다릅니다.
    잘 보고갑니다.

  2. 이춘모 2011.10.03 12:0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역시 동영상은 살아 있습니다. 너무 생생하게 현장을 전하는 동영상의 위력을 보는 것 같군요. 나도 동영상을 배워 보려고 편집프로그램인 프리미어를 공부하다 너무 어려워서 포기 중 입니다. 스마트폰으로 쵤영하고 업로드를 하지 못해서 그도 포기했습니다. 잘 보았습니다.

  3. Favicon of http://2kim.idomin.com/ BlogIcon 김훤주 2011.10.03 16:4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 읽었습니다. 간단해서 좋군요^^

"장지연, 항일독립운동가로 인정할 수 없어"
친일청산시민연대 “서훈치탈과 도문화재 지정, 도로명 폐지 촉구”


1905년 을사늑약의 부당함과 일본의 흉계를 통박한 장지연의 ‘시일야방성대곡’.

지금까지도 대표적 항일독립운동가로 알려진 장지연의 친일행적이 밝혀지자 ‘친일청산시민행동연대’가 마산시청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더 이상 그를 독립운동가로 대접할 수 없다."고 선언하고 건국훈장 치탈과 묘소에 대한 문화재 지정, 도로명을 폐지할 것을 촉구했다.

△친일청산시민행동 기자회견 ⓒ구자환
 


친일청산 시민행동연대는 성명서를 통해 “(장지연이) 일본총독부 기관지인 ‘매일신보’에 많은 친일시와 논설 등을 쓴 것으로 밝혀졌다.”며 그중 1916년 12월 10일 신임총독으로 보임하는 하세가를 환영한다는 ‘환영 하세가와 총독’이라는 친일시는 가히 충격적이라고 밝혔다.

하세가와는 1905년 이등박문과 함께 고종을 협박하여 을사늑약을 체결한 주역으로 임시통감을 지낸 인물이며, 2대 조선 총독으로 부임한 뒤 공포정치와 무단통치를 통해 3.1 운동을 잔혹하게 탄압한 인물이다.

시민행동연대는, 일제를 찬양하는 기사로 친일에 앞장 선 경남일보사에 그가 주필로 재직한 사실을 거론하며, 이는 ‘시일야방성대곡’으로 2천만 동포의 심금을 울린지 불과 4, 5년 뒤의 일로써 “놀라운 변절의 모습을 보고 현기증과 비애를 느낄 정도”라고 밝혔다.

또 친일문제만 나오면 ‘생계론’과 ‘공과론’을 들고 나오는 친일옹호론자들이 있다며 “생계형 친일인사들이 자신의 안위와 입신영달만을 도모하던 순간에도 하나뿐인 자신의 목숨을 기꺼이 바친 숱한 독립열사들이 있었다.”며 “변절은 자신의 공과 명성을 적에게 팔아 그 대가를 받는 행위”라며 그들의 주장은 한마디로 궤변이라고 일축했다.

더불어 “일제의 총칼과 굶주림, 병마에 쓰러져간 독립운동가들 중 묘지는 물론 이름조차 남기지 못한 순국선열들이 헤아릴 수도 없이 많다.”고 말하고 “민족을 배신한 변절자의 묘가 도문화재로 지정되어 참배를 받아왔고, 인근도로 3KM가 변절자의 이름으로 지정되어 있다며 경남도와 마산시에 장지연 묘소의 문화재 지정과 도로명을 즉각 폐지할 것을 다시 한번 촉구했다.

△친일청산시민행동 기자회견 ⓒ구자환
 


이어 1962년 장지연에게 추서한 건국훈장 국민장을 치탈 할 것을 행자부에 요청할 계획이라고 밝히고, 중. 고교 교과서에 우국지사로 평가된 장지연에 대해 수정, 보완, 삭제 등을 교육당국에 건의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친일청산시민행동연대는 마산시장과의 면담을 통해 장지연로 도로명 폐지를 촉구할 계획이었으나 성사되지 못하고 일정을 뒤로 미루었다.
ⓒ민중의소리
Posted by 구자환

댓글을 달아 주세요

"친일인사들의 각종 기념사업을 중단하라"
시민사회단체들 “대한민국은 기회주의자들의 천국일 수 없어”


친일청산 인명사전 1차 명단이 발표된 이후 시민단체들의 행보가 바빠지고 있다. 친일청산시민행동연대는 1일 성명서를 발표하고 친일인사들의 각종 사업을 중단, 폐지하라고 관련 시도 자치단체에 촉구했다.

△친일인사 기념사업 폐지촉구 기자회견 ⓒ구자환
 

성명서에서 친일청산시민연대는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회와 민족문제연구소에서 발표한 명단에 오른 인물들이 유명인사들을 기리는 각종 기념사업에 다수 포함되어 있다고 밝히고, 이들에 대한 기념사업이 계속된다면 국가관과 민족관, 역사관 등 국민들의 가치관에 엄청난 혼란을 불러올 수 있다고 우려했다.

통영, 거제, 밀양, 함안, 진주, 마산, 창원지역에서 구성된 경남 각 지역의 시민단체들은 “입신양명을 위해 민족을 배신한다 해도 뛰어난 재주와 유명 몇 작품을 남겼다는 이유로 국민들로부터 찬사와 추앙을 받을 수 있는 나라가 대한민국이라면 이 나라는 오로지 기회주의자들의 천국일 뿐”이라고 사업 중단을 강조했다.

더불어 그 공이 아무리 크다해도 세금으로서 기념사업을 주최 또는 지원한다는 것은 ‘국가적 정신분열증세’라고 강조하고 경남지역에서부터 진행 중인 친일인사들의 각종 기념사업에 대해 반대 운동을 벌여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이와 함께 친일청산 시민연대는 경남지역에서 친일의혹을 받고 있는 몇 몇 인사들에 대해 구체적인 입장을 표명했다.

먼저 경남도문화재 49호로 지정되어 있는 장지연의 묘소에 대해 경남도와 마산시가 문화재 지정을 취소할 것을 요구하고 서훈을 치탈할 것을 정부에 촉구한 시민단체들은 진주 출신 남인수에 대해 남인수 가요제를 폐지하고 그의 생가복원계획도 즉각 취소 중단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밀양출신 작곡가 박시춘에 대해서도 이미 복원된 생가에 대한 지자체의 지원과 관리를 중단할 것을 요구하고 친일화가 김은호의 작품인 아랑각의 아랑영정을 퇴출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친일인사 기념사업 폐지촉구 기자회견 ⓒ구자환
 

아울러 친일청산시민연대는 지역의 친일혐의가 있는 몇 몇 인사들이 명단에 빠진 것에 대해 “2003년 이미 선정되었던 문인들의 명단만 발표했기 때문”이라며 이들에 대한 기념사업을 주관 ,주최하는 단체들에 대해 면죄부를 받은 것처럼 판단하지 말라고 덧붙였다.

특히 통영시장과 문협지부가 앞장서 유치환의 친일혐의를 부정하며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회와 민족문제연구소에 공문과 항의서, 메일 등을 보내 압박하는 부당한 행위를 저질렀다고 비난하면서 항의서 발신 단체 중 일부 단체의 동의를 받지 않고 명의를 도용했다고 밝혔다.

한편 열린사회 희망연대 김영만 공동대표는 작곡가 조두남의 명단이 빠진 것에 대해 “친일인사 윤해영을 독립운동가로 둔갑시켜 대 국민 사기극을 벌인 것이 시민위원회가 친일협의가 짙다고 결정하는데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라고 말하고 “국민의 세금으로 기념관을 짓는 잣대는 여러 가지 기준이 있다”며 친일인명사전도 한 기준이 되지만 절대기준은 아니라고 말했다.

또.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기념관의 명칭이 바뀐 것과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되는 것과는 별개의 문제라고 입장을 밝혔다.
ⓒ민중의소리
Posted by 구자환

댓글을 달아 주세요




친일인명사전 예정자 발표, 시민단체 발빠른 행보
“반민족행위자 명단발표...늦었지만 다행한 일”


민족문제연구소와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회가 국치일인 29일 ‘친일인명사전 수록 예정자 1차 명단’을 발표하자, 그 동안 친일혐의로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는 인사들에 대해 시민단체들의 발 빠른 대응이 이뤄지고 있다.

경남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은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1차 명단’이 발표되자 장지연 친일명단 공식확정 및 경남도문화재 94호 지정에 대해 취하하라는 건의를 공식적으로 했다.

경남민언련은 지난 7월1일 자로 마산시가 경남도에 품신하여 제정된 경남도문화재 94호(마산시 현동소재 장지연 묘소)와 현동에서 수정 가는 길을 정지연 로(路)로 지정 한 것에 대해, 관련학자와 시민단체의 의견을 들어 취하해 줄 것을 공식 요청한바 있지만 마산시는 시민단체가 보낸 공식질의에 대해서 2개월여 가까이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에 대해 경남민언련은 “마산시가 장지연 무덤을 지방문화재로 인정을 하겠다는 것인지 공식적인 답변을 다시 한번 기대한다.”며 더불어 장지연 로(路)에 대한 입장도 함께 표명해 줄 것을 요구했다.

생전 장지연의 친일논란은 수년 전부터 지역에서 꾸준하게 제기되고 있다. 지역언론계로부터 친일 논란이 격렬하게 일고 있고, 신문의 날 장지연 묘소 참배는 시민단체의 반대로 올해부터 참배가 중단된 상태이다.

또 독립기념관에서 시일야방성대곡 사설 발표‘100주년 기념 사설비’건립도 백지화되었으며, 언론재단에서 연간 4,000만원을 지원하는‘장지연 상’도 원점에서 재검토 단계에 있다.

경남민언련은 지역에서는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위원회에서 장지연의 친일혐의를 공식조사 하도록 요청할 것이라고 밝히고, 더불어 국가보훈처에 서훈박탈도 공식 요청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한편 마산의 열린사회 희망연대도 성명서를 내고 “광복 60년이 지난 오늘에서야 일제의 앞잡이로 반민족 행위를 한 친일분자들의 명단이 선정 발표된 것은 너무 늦은 일이지만 그 만큼 감격스럽고 다행스러운 일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고 입장을 밝혔다.

희망연대는 “명단에 오른 일부 인사들의 후손들과 관련기관(언론, 학교, 종교단체, 각종기념사업회 등)에서의 반발이 만만치 않을 것”이라며 “그러나 그런 반발은 해당 인물들의 반민족 행위를 국민들의 머리 속에 더욱 깊이 각인시키는 어리석은 행위일 따름”이라고 일축했다.

또 “여러 가지 이유로 다음명단이 발표 때까지 유보된 자들도 있다.”며 “만일 이번 명단에 포함되지 않은 것을 마치 면죄부나 받은 것처럼 생각한다면 또 다른 화근을 불러 올 것”이라고 경고했다.

희망연대는 경남 통영에서 시장과 문협지회가 앞장서서 시인 유치환이 친일 인명사전에 들어가는 것을 막아내려고 온갖 수단과 방법을 동원, 인명사전 편찬위원들을 압박한 사실에 대해 국민들의 지탄을 받아야 할 일이라고 지적하고, 진주 출신의 대중가수 남인수에 대해 문화재등록을 반대했다.

더불어 “장지연, 박시춘 등 몇몇 친일 인사들과 관련하여 진행되고 있거나 이미 진행된 각종 기념사업은 일체 중단, 철회할 것을 지방자치단체와 관련기관에 강력하게 촉구한다.”고 밝혔다.
ⓒ민중의소리
Posted by 구자환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