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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12.21 천년세월 수만가지 사연을 담은 마애약사삼존불

 어찌하다 보니 이번 주일에도 함안을 향하게 됐다. 고속도로에서 여수 향일암이 전소됐다는 불쾌한 소식이 전해진다. 남는 시간에 문화유산을 찾아보기로 하고 일정을 다시 맞춘다. 이날 찾은 곳은 경남 함안군 군북면 방어산에 자리한 천년의 신비를 간직한 마애약사삼존불이다. 보물 제159호 마애약사삼존불은 통일신라시대 조성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마애사를 거쳐 방어산으로 향하는 길. 마애약사삼존불은 500m라는 이정표가 보인다. 이 정도면 한달음에 오를 수 있을 것 같다. 등산길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산책로와 같다. 산길 치고는 꽤 넓은 길이 열려져 있다. 
 


산길을 쉽게 생각하다가는 낭패를 당할 수 있다. 한창 젊은 시절인 대학 1년 여름날, 동네 산속에서 뛰고 달리며 성장했던 시골촌놈은 지리산의 산세를 가볍게 보았다가 거의 조난을 당할 위기에 처했다.

지리산을 뛰어다니듯 급히 오르다가 저체온증으로 꼼짝 못하는 처지가 됐다. 그날 매년 지리산을 두 번 찾는다는 60대 부부를 만났다. 그분들의 도움이 아니었으면 끔찍한 일을 당할 수도 있었다. 쓰러져 있는 모습을 보고 급히 커피를 끓인 그분들은 “산을 오를 때는 생각을 정리하며 소의 걸음으로 걷는 게 좋다”고 가르쳤다. 이후로 산을 오를 때면 천천히 여유롭게 걷는다. 
 

이날은 마음이 좀 급했나보다. 500m를 쉽게 보고 처음부터 무리를 했더니 숨이 턱까지 차오른다. 여전히 조급한 성격을 못 버린 모양이다. 오르는 길은 사람이 없다. 중간 중간 하늘을 향해 선 돌무더기가 보인다. 몇 개는 무너져 내려 돌무덤이 되었다. 
 


마애약사삼존불에 도착한다. 방어산 7부 능성에 위치한 듯싶다. 산속의 평지에 우뚝 서 있는 석벽에 음각기법으로 새긴 마애불이다. 얼핏 보면 암각화 같다는 느낌도 있다. 천년의 세월만큼이나 그 흔적을 남겼다. 
 

그 천년의 세월동안 이곳을 찾았을 세속 사람들의 사연은 수만 가지였을 것이다. 대부분 가정적인 사연일 것이다. 삼존불은 파산과 업보에 고통 받는 가정을 구제하고, 병을 고쳐주며, 자식이 귀한 집에는 자식을 낳게 해 주는 신비한 영험을 가지고 있다고 전해진다. 이곳을 찾은 이들은 간절히 그런 욕망들을 채워주기를 눈물로 소원했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이곳은 한겨울의 삭풍도 없이 온화하다. 
 

50m거리에 비로자나 불상이 있다는 안내판이 보인다. 그 곳으로 발길을 돌린다. 비로자나 불상은 세워진지 오래된 것 같지 않다. 제법 넓은 평지에 석벽이 병풍처럼 불상을 감싸 안고 있는 형태가 특이하다. 그 옆으로는 약수가 있다. 그러나 초행의 사람들은 발견하기 어렵다. 약수를 유리문으로 보호해 놓았기 때문에 열어보기 전에는 알 수가 없다.
 


불상 좌측 바위사이로는 몽돌로 구성된 조형물이 있다. 그 위쪽으로는 유리창이 보인다. 오래 된 듯 한 가스통도 있다. 사람이 거주했던 흔적이다. 그 옆에는 두 개의 큰 바위 사이로 난 좁은 공간이 보인다. 날씬한 사람만이 드나 들 수 있는 정도의 공간이다. 안쪽에는 미닫이문이 보인다. 자세히 보니 열쇠가 보이고, 묵언이라고 새긴 메모지가 있다. 누군가 이곳에 거주하며 수행을 했던 모양이다. 
 

혹 사람이 있나 불러보려다  ‘묵언’이라고 새긴 메모가 부담스러워 포기를 한다. 그런데 이놈의 호기심은 어쩔 수 없다. 내부가 너무 궁금했다. 실례를 무릅쓰고 바위 틈 사이를 헤집고 들어가니 문이 잠겼다. 사람은 없는 모양이다. 문 사이로 난 공간으로 내부를 들여다보니 좁은 공간에 정리된 이불이 보인다. 천정도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다. 
 

세상일이 골치 아플 때 며칠 쉬면 좋을 장소 같다. 이곳에는 자본주의 사회의 생존공포도 느끼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사람이 없으니 물욕이 빚은 세상근심도 없다. 사람과 사람의 만남은 온통 근심 그 자체다. 한번은 이별의 고통을 겪어야 한다. 사별은 피할 수 없는 아픔이다. 개인간의 만남에서도 이해관계가 성립되면 그 자체가 고통이다. 요즘 세상에는 동지가 없다.
 

다시 마애사로 향한다. 내려가는 길에 한 무리의 답사객이 가픈 숨을 헤치며 힘겹게 오르고 있다. 주차장의 버스로 보아 경주에서 온 유적지 답사 교사모임인 모양이다. 
 


주차장에는 길 다방이 보인다. 나는 이곳을 지나치는 법이 없다. 한 개비의 담배를 꺼내며 달콤한 맛을 음미하는 동안 행복을 느낀다. 어느 사이에 풍산개로 보이는 녀석들이 어슬렁거리며 다가온다. 날씨 탓인지 눈망울에 힘이 없어 보이지만 건강한 모습이다. 이름을 물어도 답을 않으니 그냥 황구와 백구로 부른다. 녀석들은 사람을 피하지 않는다. 
 

이 녀석들은 발아래까지 와서 커피 먹는 모습을 빤히 쳐다보고 있다. 음식 먹는 것을 쳐다보는 눈을 외면하는 것만큼 치사한 일은 없다. 그래서 커피를 바닥에 조금 부어준다. 뜻밖에 녀석은 커피를 즐긴다. 바닥에 부어 준 것이 되레 미안할 정도다. 바닥에 걸쳐 앉아 종이컵을 내민다. 머뭇거리던 황구 녀석이 혀로 먹기 시작한다. 이곳에 와서 처음으로 말을 건넨다. 커피를 나눠 마시며 말동무가 되 주길 바랐지만 녀석들은 눈만으로 쳐다본다.
 

이놈들은 둘이 뭉쳐 어슬렁거리며 같이 다니며 쓰레기통을 뒤진다. 배가 고픈 모양이다. 미리 알았다면 과자라도 사가지고 올 걸 그랬다. 
그래도 녀석들은 도심에서 목줄에 묶여 사는 놈들보다 행복한 놈들이다. 도심에 사는 녀석들은 인간이 만든 규칙 내에서 살아가야 한다. 규칙을 어기고 자유를 찾는 순간 도심에서는 위험이 따른다. 그것을 어긴 녀석들은 대부분 문명의 이기에 의해 죽임을 당한다. 


Posted by 구자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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