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찌하다 보니 이번 주일에도 함안을 향하게 됐다. 고속도로에서 여수 향일암이 전소됐다는 불쾌한 소식이 전해진다. 남는 시간에 문화유산을 찾아보기로 하고 일정을 다시 맞춘다. 이날 찾은 곳은 경남 함안군 군북면 방어산에 자리한 천년의 신비를 간직한 마애약사삼존불이다. 보물 제159호 마애약사삼존불은 통일신라시대 조성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마애사를 거쳐 방어산으로 향하는 길. 마애약사삼존불은 500m라는 이정표가 보인다. 이 정도면 한달음에 오를 수 있을 것 같다. 등산길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산책로와 같다. 산길 치고는 꽤 넓은 길이 열려져 있다. 
 


산길을 쉽게 생각하다가는 낭패를 당할 수 있다. 한창 젊은 시절인 대학 1년 여름날, 동네 산속에서 뛰고 달리며 성장했던 시골촌놈은 지리산의 산세를 가볍게 보았다가 거의 조난을 당할 위기에 처했다.

지리산을 뛰어다니듯 급히 오르다가 저체온증으로 꼼짝 못하는 처지가 됐다. 그날 매년 지리산을 두 번 찾는다는 60대 부부를 만났다. 그분들의 도움이 아니었으면 끔찍한 일을 당할 수도 있었다. 쓰러져 있는 모습을 보고 급히 커피를 끓인 그분들은 “산을 오를 때는 생각을 정리하며 소의 걸음으로 걷는 게 좋다”고 가르쳤다. 이후로 산을 오를 때면 천천히 여유롭게 걷는다. 
 

이날은 마음이 좀 급했나보다. 500m를 쉽게 보고 처음부터 무리를 했더니 숨이 턱까지 차오른다. 여전히 조급한 성격을 못 버린 모양이다. 오르는 길은 사람이 없다. 중간 중간 하늘을 향해 선 돌무더기가 보인다. 몇 개는 무너져 내려 돌무덤이 되었다. 
 


마애약사삼존불에 도착한다. 방어산 7부 능성에 위치한 듯싶다. 산속의 평지에 우뚝 서 있는 석벽에 음각기법으로 새긴 마애불이다. 얼핏 보면 암각화 같다는 느낌도 있다. 천년의 세월만큼이나 그 흔적을 남겼다. 
 

그 천년의 세월동안 이곳을 찾았을 세속 사람들의 사연은 수만 가지였을 것이다. 대부분 가정적인 사연일 것이다. 삼존불은 파산과 업보에 고통 받는 가정을 구제하고, 병을 고쳐주며, 자식이 귀한 집에는 자식을 낳게 해 주는 신비한 영험을 가지고 있다고 전해진다. 이곳을 찾은 이들은 간절히 그런 욕망들을 채워주기를 눈물로 소원했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이곳은 한겨울의 삭풍도 없이 온화하다. 
 

50m거리에 비로자나 불상이 있다는 안내판이 보인다. 그 곳으로 발길을 돌린다. 비로자나 불상은 세워진지 오래된 것 같지 않다. 제법 넓은 평지에 석벽이 병풍처럼 불상을 감싸 안고 있는 형태가 특이하다. 그 옆으로는 약수가 있다. 그러나 초행의 사람들은 발견하기 어렵다. 약수를 유리문으로 보호해 놓았기 때문에 열어보기 전에는 알 수가 없다.
 


불상 좌측 바위사이로는 몽돌로 구성된 조형물이 있다. 그 위쪽으로는 유리창이 보인다. 오래 된 듯 한 가스통도 있다. 사람이 거주했던 흔적이다. 그 옆에는 두 개의 큰 바위 사이로 난 좁은 공간이 보인다. 날씬한 사람만이 드나 들 수 있는 정도의 공간이다. 안쪽에는 미닫이문이 보인다. 자세히 보니 열쇠가 보이고, 묵언이라고 새긴 메모지가 있다. 누군가 이곳에 거주하며 수행을 했던 모양이다. 
 

혹 사람이 있나 불러보려다  ‘묵언’이라고 새긴 메모가 부담스러워 포기를 한다. 그런데 이놈의 호기심은 어쩔 수 없다. 내부가 너무 궁금했다. 실례를 무릅쓰고 바위 틈 사이를 헤집고 들어가니 문이 잠겼다. 사람은 없는 모양이다. 문 사이로 난 공간으로 내부를 들여다보니 좁은 공간에 정리된 이불이 보인다. 천정도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다. 
 

세상일이 골치 아플 때 며칠 쉬면 좋을 장소 같다. 이곳에는 자본주의 사회의 생존공포도 느끼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사람이 없으니 물욕이 빚은 세상근심도 없다. 사람과 사람의 만남은 온통 근심 그 자체다. 한번은 이별의 고통을 겪어야 한다. 사별은 피할 수 없는 아픔이다. 개인간의 만남에서도 이해관계가 성립되면 그 자체가 고통이다. 요즘 세상에는 동지가 없다.
 

다시 마애사로 향한다. 내려가는 길에 한 무리의 답사객이 가픈 숨을 헤치며 힘겹게 오르고 있다. 주차장의 버스로 보아 경주에서 온 유적지 답사 교사모임인 모양이다. 
 


주차장에는 길 다방이 보인다. 나는 이곳을 지나치는 법이 없다. 한 개비의 담배를 꺼내며 달콤한 맛을 음미하는 동안 행복을 느낀다. 어느 사이에 풍산개로 보이는 녀석들이 어슬렁거리며 다가온다. 날씨 탓인지 눈망울에 힘이 없어 보이지만 건강한 모습이다. 이름을 물어도 답을 않으니 그냥 황구와 백구로 부른다. 녀석들은 사람을 피하지 않는다. 
 

이 녀석들은 발아래까지 와서 커피 먹는 모습을 빤히 쳐다보고 있다. 음식 먹는 것을 쳐다보는 눈을 외면하는 것만큼 치사한 일은 없다. 그래서 커피를 바닥에 조금 부어준다. 뜻밖에 녀석은 커피를 즐긴다. 바닥에 부어 준 것이 되레 미안할 정도다. 바닥에 걸쳐 앉아 종이컵을 내민다. 머뭇거리던 황구 녀석이 혀로 먹기 시작한다. 이곳에 와서 처음으로 말을 건넨다. 커피를 나눠 마시며 말동무가 되 주길 바랐지만 녀석들은 눈만으로 쳐다본다.
 

이놈들은 둘이 뭉쳐 어슬렁거리며 같이 다니며 쓰레기통을 뒤진다. 배가 고픈 모양이다. 미리 알았다면 과자라도 사가지고 올 걸 그랬다. 
그래도 녀석들은 도심에서 목줄에 묶여 사는 놈들보다 행복한 놈들이다. 도심에 사는 녀석들은 인간이 만든 규칙 내에서 살아가야 한다. 규칙을 어기고 자유를 찾는 순간 도심에서는 위험이 따른다. 그것을 어긴 녀석들은 대부분 문명의 이기에 의해 죽임을 당한다. 


Posted by 구자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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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청소년 시절을 보냈던 곳에도 고분은 있었다. 유소년기의 기억으로는 거인무덤으로 불렸다. 거인무덤이 있었고, 거인 발자국도 있었다. 그것이 가야시대의 고분이었고, 공룡발자국이었다는 사실은 성장을 한 후 알게 된 사실이다. 복원이 된 지금에서야 그곳은 고분이 되었고, 공룡화석지가 되었다. 

유적에 대한 관심은 많지만, 전문적으로 배우고 탐구하지 못한 탓에 고분은 나에게 옛사람들의 삶과 당대의 사건들을 돌이켜 보는 역할만 한다. 내가 선 이곳에서 벌어졌을 옛 이야기들. 그 속에는 순장을 기다리며 죽음을 앞 둔 소녀의 두려움과 권력과 힘의 논리에 의해 지배당했을 민중의 아픔이 있다. 
 

함안박물관 전경입니다.

함안 아라가야 고분군


경남 함안군 도향리와 말산리 일대 야산 구릉지에는 남북으로 2km 이상 대형 고분 40여기 등, 총 153기가 밀집되어 있다. 전국 최대의 고분지역이리라고도 불린다. 이들 모두 신라에 의해 멸망했던 아라가야의 유적들이다. 이곳 역시 스쳐지나가며 직접 가보지를 못한 곳이다. 

13일 촬영차 함안군을 방문한 그날은 시간을 내어 고분을 향했다. 함안 박물관을 거쳐 오르는 길이다. 고분에 오르고 난 이후에 안 사실이지만 그곳은 함안군청 뒤편의 야산이기도 했다.
 

차도와 접한 고인돌은 내려오는 길에 찾기로 하고 현대식 건물 앞에 차를 세운다. 함안 문화원이다. 문화원다운 자태로 위풍을 자랑하고 있다. 그 뒤편으로는 고분들이 이어져 있다. 그길로 오르면 8호 고분을 먼저 접하게 된다. 
 

고분 주위를 둘러보며 옛사람들의 이야기를 상상한다. 지금 멈춰선 이 공간에서 벌어졌을 옛사람들의 삶, 각가지의 사연들. 순장을 당하는 소녀는 어떤 모습으로 이곳에 있었는지. 그는 자신의 죽음을 어떻게 알고나 있었는지. 자식을 죽음으로 내몰아야 하는 부모의 심정은 어떠했는지가 궁금해진다. 멀리로 보이는 저 산의 능선과 펼쳐진 들녘은 4세기 당대와 같은 모습인지도 궁금하기는 마찬가지다. 
 

옛 고분을 곁에 두고 상념에 빠지며 호적이 걷는 길이 좋다. 오르는 길은 흙을 밟지 않도록 도로가 포장되어 있다. 주변경관도 공원처럼 정리가 되어 있다. 
 

함안 아라가야 1호 고분

함안 문화원 뒤로 펼쳐진 억새무리


1호 고분을 찾는 길은 다시 산 아래로 내려가야 한다. 내려가는 길은 도심에서 볼 수 없는 정겨움이 있다. 양 옆으로 대나무가 있고, 가시나무가 있고, 낙엽에 싸인 숲의 고요함이 있다. 드문드문 고분을 향해 오르는 사람들과 마주친다. 
 

외떨어진 1호 고분은 왠지 방치된 느낌이 든다. 고분을 보호하기 위한 흔한 구조물도 없다. 자연 상태로 방치하는 것이 좋을 수도 있다. 그런데 방치된 듯한 아쉬움은 어쩔 수 없다.
 

능선의 정상에서 바라본 고분군의 모습은 아스라한 느낌을 준다. 당대의 풍경은 지금의 느낌과 또 어떻게 다를까? 넓게 정리된 주변의 잔디는 비록 계절속에 그 색깔을 잃었어도 단아한 느낌을 주기에는 충분하다. 
 

사람 키의 몇 곱절 높이의 고분은 겉으로 경이로움과 신비로움의 대상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동원돼 고분을 만들었을 테다. 고분은 당대 실세들의 힘과 권력의 상징으로 위용을 자랑한다. 현대에서도 그 웅장함과 문화적 가치가 먼저 기억된다. 그러나 이들을 위해 힘겨운 노역을 해야 했던 민중들의 아픔이 역사의 근간이다. 역사는 가진 자의 역사라고 했다. 그때도 사람들은 권력과 힘이 있는 곳으로만 모였을까?
 

12호 고분(?)에는 삼각모양의 콘크리트 구조물과 그곳에 세웠을 구조물의 흔적이 있다. 잘라낸 쇳조각 모양을 보고 일제국시대의 흔적이라고 짐작해 본다. 수많은 문화재와 유서 깊은 곳에 일제국주의는 민족을 맥을 끓기 위해 쇠말뚝을 박았다. 
 

줄지어선 고분을 따라 걷기 시작한다. 주민들이 석양을 바라보며 가로로 앉아 여가를 즐기는 모습이 이채롭다. 저렇듯 여유로운 삶의 모습은 현대인들에게는 쉽지 않다. 오직 이곳에서만 가능하다는 생각도 든다. 
 

함안 아라가야 고분

고분에서 석양을 바라보며 여가를 즐기는 시민들

놀이터가 되어 버린 고분. 몇 기의 고분에는 길이 나있다.


몇 기의 고분을 지나면서 더 이상의 걷기를 포기하며 발길을 돌린다. 운동을 한답시고 발목에 채워둔 모래주머니를 떼는 것을 잊어버렸다. 제대로 운동한 셈이다. 지나치며 나타나는 고분들의 둘레를 걷는다. 이 고분들이 만들어지기 까지 얼마의 세월과 얼마의 사람들이 필요했을까. 
 

특이하게 몇 기의 고분에는 위로부터 아래로 줄이 내려져 있다. 고교시절 두발 단속을 당한 이의 머리모양이다. 눈살이 찌푸려진다. 사람이 오르내리며 생긴 흔적이다. 고분을 보호하는 테두리가 없어 자연스러움이 좋았지만, 사람들은 즐기는 방법을 모른다. 

멀리로 한 어린이가 고분의 정상에서 괴성을 지르며 아래로 미끄럼을 타고 있다. 그 아래로 부모는 즐거운 미소만을 짓고 있다.

Posted by 구자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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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12.15 19:5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 Favicon of https://redmovie.tistory.com BlogIcon 구자환 2009.12.15 21:5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오랜만에 뵙네요. 잘 지내시죠? 함안문화원이 맞군요. 이게 공식명인듯 합니다. 금송도 있었군요. 머릴 숙이고 걷는 버릇이 있어 미처 보지를 못한 듯 합니다. 그리고 갈대와 억새... 식물종에 익숙하지 못한지라 너그러이 이해 바랍니다. ^^;

  2. Favicon of https://100in.tistory.com BlogIcon 기록하는 사람 2009.12.16 09:1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랜만에 글을 올렸군. 그동안 돈은 좀 벌었을까? 바쁜 일 끝났으면 블공에도 좀 나오지...

  3. 탕탕탕 2009.12.16 12:5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사진과 글 잘 감상하고 갑니다.
    하나만 지적하자면 님이 사진과 글에서 언급한 함안문화원은
    문화원이 아니고 함안박물관입니다.
    수정을 하시면 보다 정확한 설명이 될 듯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