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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추모에 앞서 '행동하는 양심'을 다지자


참 잔인한 한 해입니다. 비록 정책적인 이견은 있었지만 이 나라 민주화를 만들고 완성하려던 두 전직 대통령의 영면에 안으로 쪼여 오는 답답함은 그저 마음을 짓누르기만 합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비극적 죽음 앞에서는 왠지 모를 패배감을 느껴야 했습니다. 힘의 논리속에 패배를 했다는 사실만이 힁한 공간을 떠돌아 다녔습니다. 그 패배감이 사라지기도 전에 다시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서거를 접하게 됩니다.

눈가에는 노 전 대통령의 영결식에서 절규에 가깝도록 눈물을 흘리던 김 전 대통령의 모습이 보입니다. 그가 그토록 슬펐던 이유에는 외면적으로 알려진 민주화의 동지를 잃을 슬픔만은 아닐 것입니다. 그보다 더 과거로 회귀하며 일생동안 목숨을 걸며 어렵게 쌓아올린 민주화의 성과가, 통일에 대한 열망들이 무너진 것이 통탄스러웠을 것입니다.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는 수구세력의 힘 앞에 무너지는 시대가 참지 못할 만큼 서러웠을 것입니다.


그렇게 역사의 반역 앞에 뼈속까지 스며든 아픔은 노 전 대통령의 서거 이후 불과 3개월만에 강건했던 의지를 무너뜨렸습니다. 군부독재의 칼날에도 굳건히 지켜온 의기였습니다. 목숨을 구걸해 역사의 죄인이 되느니 차라리 죽어서 역사에 살아남자는 것이 그의 의기였습니다.

하지만 그 강건함도 끝내 무너지는 민주화의 아픔을 견디지 못했습니다. 그 아픔은 오늘 그의 영면에 서러워하고 안타까워하며 그를 추모하는 이 땅 민중들의 마음이기도 합니다. 

다시금 멀리로 실패했던 뼈아픈 역사, 청산하지 못한 잘못된 역사가 떠 오릅니다. 반민특위입니다. 민족을 배신하며 부귀영화를 누렸던 친일매국노를 끝내 처단하지 못하고 외려 그들의 손에 무너져야 했던 반민특위입니다.

아시다시피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는 제헌국회에 의해 구성된 특별기관이었습니다. 해방 이후 친일매국노들을 잡아서 처단을 하려던 조직이었습니다. 그들은 친일매국노를 잡아 들였지만 이들의 방해로 그 뜻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우리나라의 현대사는 그렇게 시작됐습니다. 
 
그 역사가 잔인한 2009년에 다시 떠오르는 이유는 민주화를 주도하고 완성하려 했던 두 전직 대통령의 치세에도 결국 민주화를 완성하지 못하고 오히려 수구세력들에 무너져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픔은 여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80년대는 독재정권 타도라는 하나의 목표만을 향해 민중의 힘이 모였습니다. 그렇기에 민중의 힘은 하나가 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IMF 구제금융을 거친 지금은 자본이라는 거대한 힘과도 상대를 해야 합니다. 자신을 희생해야 하는 것 이외에 가족들의 생계도 버려야하는 이중적 고통이 함께 따릅니다.

여기에 세태도 극도로 이기적이되고 개인화 되었습니다. 약자나 소수의 절규와 울부짖음에 다수의 시민은 반응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자신의 이익에 관련된 일에는 투쟁이라는 목소리를 높이는 세태가 된 것입니다. 

80년대 민주화운동을 주도했던 학생계층도 이제는 정권과 자본에 맞서 싸우기보다 일신의 안위에만 집중하는 경향을 보입니다. 여기에 노동자 조직 역시 87년 노동자투쟁 당시의 노동자들의 모습이기보다 가족과 자신의 안위를 위해 서 있는 모습이 역력합니다. 그래서 아픈 것입니다. 물론 전체라고 일반화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수의 성향이 그렇다는 것입니다.

저는 김대중 전 대통령을 추모하고 애도하기에 앞서 어쩌면 유언이랄 수 있는 “행동하는 양심이 돼라”라는 그 분의 말을 먼저 머릿속 깊은 곳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봅니다.  그래야만 진정으로 영면한 두 전직 대통령의 명복을 바라는 일이 될 것입니다. 그래야만 2009년 이 비극의 해가 다시 반복되지 않을 것리고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