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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경복궁에서 일본관광객이 어색했던 이유

요즘은 대부분의 학생들이 수학여행을 통해서 우리나라의 고궁들을 견학을 합니다. 하지만 학창시절 수학여행을 가 본적이 없는 나에게 고궁은 여전히 신비의 대상으로 남아 있습니다.

어느 한 시대에 그곳에 살았을 사람들의 애환과 모습을 그 현장에서 느끼고 상상할 수 있을 거라는 신비감입니다.

하지만 서울에 올 때마다 끝내 가보지를 못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몇 번을 벼르고 해서 경복궁으로 향했습니다. 
 

사실 저는 경복궁 등 고궁에 대해 깊이 있게 알지를 못합니다. 그래서 출발 직전에 대략의 정보를 찾아보았습니다. 대략 기억나는 것이 경복궁에서 일어난 역사적 사실 몇가지, 그리고 경복궁의 규모에 대해서입니다.
 

현재 경복궁의 첫 관문인 흥례문입니다

경복궁이 광화문부터 시작되었다는 사실을 부끄럽게도 처음 알았습니다. 자료를 보면 현재의 경복궁은 일제 강점기를 거치며 크게 훼손되었답니다. 지금의 규모는 고종 중건 당시의 10%정도만 남아 있다는군요. 또, 몇 차례 일어난 화재와 왕위 찬탈 등으로 조선왕조 500년 동안에 250년 정도만 사용되었다고도 합니다.  

거기에다 근대사로 넘어오면, 명성황후 시해사건이 발생한 곳이기도 합니다.  
 

임금이 국사를 치루던 근정전입니다



근정전 내부의 왕좌입니다

왕과 신하가 정치를 논하던 사정전입니다




교태전 뒤에 위치한 아미산이라는 정원입니다.봄이면 꽃이 만발한다고 합니다.

경회루 모습입니다

단풍이 아름다운 향원정입니다


궁궐내로 들어서면서 사진이나 영상으로 보았던 궁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관람객들 중에는 중국인, 일본인, 그리고 영어권의 외국인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왠지 일본인 관광객을 보면서 썩 유쾌한 느낌만은 들지 않았습니다. 앞서 거론한 역사적 사실 때문이기도 하지만, 일제강점기 조선왕국의 정신의 없애기 위해 경복궁을 훼손했다는 점 때문입니다. 일본 관광객중 경복궁의 역사를 아는 이가 있다면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하는 생각에 불편했던 것입니다. 
 

왕의 침전인 강녕전입니다

임금의 수라상 입니다



왕비가 기거하는 교태전 내부 입니다


민족주의자 성향이 위험하다고 하지만, 저는 달리 생각합니다. 민족주의자가 위험한 것은 배타적이기 때문입니다. 인본주의의 성향도 동시에 가지고 있다면 배타성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봅니다.  

3시간정도를 쉬지 않고 궁내를 다니면서 복원되지 않았을 건물과 옛 이야기를 상상하면서 사무실로 발길을 돌렸습니다. 
  사무실에 와서 일본인에 대한 야릇했던 이야기를 했더니, 한 후배는 의견을 달리 합니다. 그보다 외국인이 많이 오게 해야 한다는 겁니다. 그리고 자신이 문화재청 장관이라면 외국인에게는 달러로 입장권을 받겠다는 이야깁니다.  

정리를 하면 나는 여전히 과거에 대한 미련과 감정을 가지고 있지만, 90년대 이후의 학번들은 그렇지가 않다는 이야깁니다. 그 말에 어쩐지 아쉬움이 흐릅니다. 누구나 나이를 더하게 되면 점점 보수적으로 변한다는 말이 생각납니다. 어느새 나도 지금의 세대와 동떨어진 곳에 서있나 봅니다.

향원정입니다

궁궐의 우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