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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꿈꾸는 세상

국민보도연행 민간인 학살사건을 소재로 한 장편 다큐멘터리 영화 빨갱이 무덤’ <레드 툼> 공동체 상영 안내입니다.

 

[씨네 21 영화평]

 

1950년 한국전쟁 초기, 국민보도연맹 소속 민간인들이 국군


과 경찰에 의해 무차별 학살된다. 그 수만 해도 최대 43만명에 달한다. 죽은 이들 대다수는 이승만 정권이 좌익 세력을 회유하고 관리하겠다는 명목으로 만든 반공단체인 국민보도연맹에 이유도 모른 채 가입됐고, 그후 영문도 모른 채 죽어야 했다.

 

정부는 이들이 인민군에 동조할 수 있다는 잠정적 판단만으로 법의 테두리를 벗어난 집단 학살을 자행한 것이다. <레드 툼>은 이 끔찍한 국가 범죄에 대한 기록이다. 특히 영화는 민간인 학살로 가족을 잃고 남겨진 사람들, 살아남은 자들을 일일이 찾아가 그들의 기억을 통해 죽은 자들을 불러낸다. 남편을 잃은 아내, 형님을 떠나보낸 아우, 부모를 여읜 자식들의 생생한 증언이 연속적으로 이어진다. 여기에 당시 학살 현장에 동원된 마을 사람들은 학살에 동참하지 않으면 자신을 죽이겠다고 덤벼드는 국가의 위협을 온몸으로 느꼈다고 전한다.

 

<민중의 소리> 기자 출신인 구자환 감독이 20044월부터 촬영을 시작해 2013년에 비로소 완성한 작품이다. 경남 지역 전역을 돌며 당시 학살을 직간접적으로 경험한 사람들의 육성을 고스란히 담았다. 연출자의 우직하고 성실한 면모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새로운 형식적 시도를 한 다큐멘터리는 아니지만 그 자체로 국민보도연맹을 둘러싼 비극의 구술사적 기록이라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빨갱이 무덤'이라는 영화의 부제에서 알 수 있듯, 레드 콤플렉스로 얼룩진 한국 사회가 여전히 해결하지 못한 역사적 과오의 민낯을 확인하게 한다. 2013년 서울독립영화제 우수작품상 수상작.

 

 

[작품정보]


레드 툼 | Red Tomb

 

2013 | Docu | DCP | Color | 2.35:1 | Stereo | 91min 27sec

Subtitles kor / eng

Director 구자환 Jahywan Gu

Distributor 따미픽쳐스. ddami pictures

 

[공동체 상영 신청]

 

구자환 : 010-7131-0618

메 일 : documob@hanmail.net


[배급료]

배급료는 1회 상영기준으로 아래 금액을 적용하시면 됩니다.

 

배급료

  50명 미만 - 20만원

  50명 이상 - 30만원

100명 이상 - 50만원

 

감독초청료(초청시) : 20만원

 

입금계좌 : (농협) 302-0146-6902-51 / 구자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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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레드 툼> 공동체상영 신청안내  (1) 2015.08.10

1




레드 툼

Red Tomb 
9.1
감독
구자환
출연
성증수, 박상연
정보
다큐멘터리 | 한국 | 97 분 | -



국민보도연행 민간인 학살사건을 소재로 한 장편 다큐멘터리 영화 <레드 툼>을 개봉하기 위한 시민후원금 모집을 진행합니다.

 

<레드 툼>2013년 서울독립영화제에서 우수작품상을 수상한 작품으로 1950년 한국전쟁 초기 이승만 정권에 의해 예비검속에 이어 집단학살 당한 국민보도연맹 민간인 학살사건을 다룬 영화입니다. 이들 대다수는 이승만 정권이 좌익세력을 회유하고 관리하기 위해 만든 계몽단체에 영문도 모른 채 가입했고, 전투와는 상관없는 지역에서 단지 인민군에 동조할 수 있다는 우려만으로 예비검속 당하고 재판도 없이 산과 바다에서 집단 학살되었습니다.

 

이때 유행했던 말들인 골로 갔다”, “물 먹었다는 지금도 쓰이고 있습니다. 이 말은 보도연맹 민간인들이 산골로 끌려가 죽음을 당한 것과 바다에 떼로 수장당한 것을 표현한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모형제를 잃은 유족들은 되레 빨갱이로 몰릴까 우려해서 자식에게조차 말하지 못하고 숨죽여 평생을 살아왔습니다. 4월 혁명 직후 진상규명을 요구하고 유해를 발굴하려는 시도들이 있었지만, 1961년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박정희 정권에 의해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습니다. 박정희 정권은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당시 전국유족회 회장과 간부들을 군사법정에 세우고, 용공분자로 몰아 사형을 언도하고, 유족들이 발굴한 유해와 수집한 자료들을 불태워버리는 소위 분서갱유라고 불리는 2차 가해를 저질렀습니다. 그 이후 이 사건을 입에 올리는 것 자체가 빨갱이로 치부되면서 이 사건은 역사 속에 묻히게 되었습니다.

 

국민보도연맹 사건은 공교육에서도 제대로 다루어진 적이 없어 역사를 전공하는 대학생조차 알지 못하는 이가 많을 정도로 철저히 은폐되고 묻힌 현대사의 비극중 하나입니다. 더구나 정확한 진상조사 조차 진행되지 않아 몇 명의 피해자가 발생했는지 등 기초적인 사항도 밝혀지지 않고 있습니다. 학자에 따라 다르지만 최소 23만에서 많게는 43만 명이 희생당했다고 추정될 뿐입니다.

 

사람들이 제대로 모르고 있는 역사의 상흔을 이제 와서 굳이 들추어내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하는 의문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10년 전 보도연맹 학살 사건을 취재하면서 평생 가슴 속에 한을 간직하고 살아온 유족들에게 사건의 진실을 세상에 알리겠다고 약속한 바 있습니다. 당시 운신조차 힘겨울 정도로 노령이었던 유족들은 응어리진 한을 풀어달라고 호소했고, 저는 그 약속을 지키려 합니다. 그 이후 저와 인터뷰한 유족과 출연자들이 세상을 떠났지만 보도연맹 사건은 지금도 그 자리에 머물러 있습니다.

 

과거 민간인학살의 한축이었던 서북청년단이 재건위라는 명칭을 달고 현 시대에 등장하는 모습을 보면서 민간인학살의 역사가 더 이상 과거가 아니라 여전히 현실이라는 점에서 참담함을 느낍니다. 그들에게도 과거의 처참했던 역사를 보여주고 싶습니다. 그리고 우리사회를 짊어지고 가야할 젊은 세대에게도 이 영화를 보여주고 싶습니다. 비록 젊은이들이 피 말리는 경쟁 사회에서 자신의 미래를 걱정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다 해도 불과 조부모 세대가 겪었던 대한민국 현대사의 비극만큼은 간락하게나마 알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국민보도연맹 사건은 단지 과거에만 머물러 있지 않습니다. 그 수단과 방법만 바뀌었을 뿐

여전히 현재에도 진행되고 있습니다. 빨갱이라는 낙인이 60여 년 전에는 사람의 목숨을 빼앗는 결과를 낳았다면, 현재는 종북이라는 이름으로 배제와 추방을 하고 사회적 생명을 박탈하는 것으로 바뀌었을 뿐입니다.

 

더구나 이들 피학살자들에 대해 현 정부는 여전히 무관심으로 일관하고 있습니다. 유해 발굴 작업은 노무현 정부 처음으로 진실화해위원회가 발족하면서 일부 진행되기는 했습니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를 거치면서 중단되었고, 지금은 정부가 손을 뗀 상태에서 민간단체로 구성된 한국전쟁기 민간인학살유해 공동조사단에서 유해발굴 작업을 하고 있을 뿐입니다. 공동조사단은 지난해 2월 진주시 명석면 용산리 용산고개에서 1차 발굴을 하고, 올해 2월에는 대전시 산내면 골령골에서 유해발굴을 진행했습니다.

 

빨갱이 무덤이라는 뜻의 <레드 툼>은 변변한 제작비도 없이 진행되어 이제야 겨우 완성되었습니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독립영화제에서 수상하기도 했지만 여전히 유족들과의 약속은 지키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많은 분들에게 도움을 호소합니다. 저는 유족들이 평생 동안 가슴에 응어리진 한을 영화 개봉으로나마 조금이라도 풀어드리고 싶습니다. 한 사람이라도 더 많이 영화를 보는 것 자체가 믿었던 국가에게 죽임을 당하고도 여전히 구천을 떠돌고 있을 국민보도연맹 피해자들의 넋을 달래고 유족의 한을 어루만져주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영화 개봉은 영화감독으로서 반드시 해야 할 역할이기도 합니다. 지난 2013년 이후 각종 영화제나 공동체 상영에서 <레드 툼>을 접한 관객들의 반응은 눈물과 침울함, 경악이었습니다. 그들은 현대사 최대의 비극을 제대로 몰랐다는 말로 반성하면서 어떻게 해서라도 영화를 개봉해야 한다고 저한테 무거운 숙제를 던져주었습니다.

 

하지만 영화 개봉의 현실은 결코 녹록치 않습니다. 극장 개봉 비용에는 약 3천만 원 가량이 소요되지만 빈손으로 영화를 만든 제게는 감당할 수 없는 금액입니다. 그래서 뜻있는 시민들의 도움을 통해서라도 유족과의 약속을 지키려고 합니다. 영화 <레드 툼>이 이념적 문제로 묻힌 현대사의 질곡을 드러내고, 존중받아야할 생명과 인권이라는 가치를 상실된 역사 속에서 되찾는 데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보도연맹 피해자들의 유해는 나무뿌리와 구별되지 않을 정도로 세월이 많이 흘렀습니다. 이들의 유해가 자연으로 완전히 돌아가도록 내버려둔다면 우리 역시 후손에게 청산되지 못한 역사를 물려주는 것이 됩니다. 과거는 곧 오늘이자 미래입니다. 진정한 역사 청산은 역사를 잊지 않고 기억하는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시민 후원 모금 개요

 

후원 모금 기간 : 316~430

개봉 예정 : 6월말~7월 초

후원목표액 : 3천만원

배급사 : 레드무비

후원계좌 : 농협 302-0896-4040-41 예금주: 구자환(레드무비)


 

감독 소개

 

감 독 : 구자환

나 이 : 1967년 생

소 속 : ()한국독립영화협회

직 업 : 영화감독 / ‘민중의소리기자

연락처 : 010-7131-0618 / documob@hanmail.net

 

주요작품

 

2003: 단편 다큐 선구자는 없다

2005: 단편 다큐 아스팔트 농사

2007: 장편 다큐 회색도시’ - 서울독립영화제 경쟁부분 상영

2013: 장편 다큐 레드 툼

- 39회 서울독립영화제(2013) 우수작품상

- 2회 무주산골영화제 (2014) 경쟁부문 상영

- 19회 인디포럼(2014) 초청

- 19회 서울인권영화제(2014) 초청

- 14회 인디다큐페스티발(2014) 초청

- 8회 경남독립영화제(2014) 초청

- 93회 독립영화 쇼케이스(2014) 초청

- 2회 경기도 G시네마 (2014) 초청

- 19회 광주인권영화제(2014) 초청

- 19회 인천인권영화제(2014) 초청

- 19회 전주인권영화제(2014) 초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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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도군 각북면 삼평1345kv송전탑 공사가 재개된 지 19일째를 맞았지만 송전탑을 저지하는 고령의 주민들은 공사차량의 출입을 저지하면서 끌려나오고 병원에 치료받기를 반복하고 있다.

 

8일 경찰은 한전의 야적장 입구에서 레미콘 차량을 저지하던 청도345kv송전탑 대책위원회 공동대표인 백창욱 목사를 업무방해 혐의로 연행하는 등 이날까지 모두 22명을 연행했다.

 

청도대책위의 집계에 따르면 공사가 진행된 후 경찰에 끌려나오면서 병원으로 후송된 회수만 20여 회로 대부분의 주민이 3~5번 병원 치료를 받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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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한국전쟁 초기 이승만 정권에 의해 학살된 국민보도연맹 사건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레드 툼' 트레일러입니다. 



://



수상정보

 

39회 서울독립영화제(2013) 우수작품상

2회 무주산골영화제 (2014) 경쟁부문 후보

19회 인디포럼(2014) 초청

19회 서울인권영화제(2014) 초청

14회 인디다큐페스티발(2014) 초청

8회 경남독립영화제(2014) 초청

93회 독립영화 쇼케이스(2014) 초청

2회 경기도 G시네마 (2014) 초청

19회 광주인권영화제(2014) 초청

19회 인천인권영화제(2014) 초청

■ 19회 전주인권영화제(2014) 초청 

해방 이후부터 53년 휴전을 전후한 기간 동안에 100만 명 이상의 민간인이 희생되었다. 그 속에는 지방 좌익과 우익의 보복 학살도 자행되었지만, 많은 피해자들은 남한의 군경, 우익단체, 미군의 폭격에 의해 학살을 당했다. 이 가운데 한국전쟁 초기 예비검속 차원에서 구금당하고 학살을 당한 국민보도연맹원이 있다. 전국적으로 23만~45만 명으로 추산되고 있는 이들은 대다수가 농민이었고, 정치 이념과 관계없는 사람이었다. 이들은 국가가 만든 계몽단체에 가입했다는 이유만으로 전쟁과는 직접적인 상관없이 국가의 이념적 잣대로 인해 재판조차 받지 못하고 무고하게 희생된 이들이다. 
(2013년 제39회 서울독립영화제)
연출의도
국민보도연맹원에 대한 학살은 오래전 과거 정권에 의해 잊힌 역사가 되었다. 참담했던 과거의 기록은 공립 교육 과정에서조차 찾을 수 없다. 자신의 죽음조차 알지 못한 채 제 발길로 죽음의 길로 걸어갔던 국민보도연맹 희생자들의 이야기는 수십 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도 구전으로 전해지고 있다. 그러나 당대의 학살 현장에서 살아남은 이들과 목격자들은 이제 기억이 흐려지고 세상을 떠나고 있다. 그들의 이야기는 이렇게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영화의 기획은 이런 위기감에서 시작됐다. 4년 전 제작을 시도했다가 제작비를 해결하지 못해 포기해야 했지만, 이제 더 이상의 시간이 남아 있지 않다는 것을 실감한다. 지금 하지 않으면 영원히 이들에 대한 정확한 기록을 할 수 없을 지도 모른다.
영화는 국민보도연맹 학살 사건을 규명하면서 이념적 논쟁을 벗어나 인간의 존엄성을 훼손했던 시대의 비극을 사실 그대로 기록하고자 한다. 또, 일제강점기 해방 이후 1950년대 미소 냉전시대의 매카시즘으로 빚어진 시대의 참상도 동시에 기록한다. 이를 통해 현 시대를 살아가는 젊은 세대들과 근현대사를 공유하고, 전쟁과 이념이 아닌 인권이라는 천부적 권리와 민주주의라는 의제로 관객에게 다가서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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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한국전쟁 초기 이승만 정권에 의해 학살된 국민보도연맹원 유족들이 매년 위령제를 열고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있습니다. 이 위령제는 학살이 전국에서 진행된 만큼 전국의 유족회에서 열리고 있습니다.

창원지역에서는 5일 한국전쟁전후민간인학살 창원유족회가 마산합포구 오동동 천주교 마산교구 강당에서 열렸는데요, 이 자리는 당시 마산 앞바다로 수장시키기 전에 국민보도연맹원들을 불법 구금했던 옛 마산형무소 자리이기도 합니다. 

당시 마산지역에서 희생된 국민보도연맹원은 2300여명으로 추정됩니다만 노무현 정부 당시 설립된 진실화해위원회에서는 최소 717명 정도만 학살된 것으로 확인했습니다. 그 중에서도 신원을 확인한 사람은 358명에 불과한 실정입니다. 

벌써 64년이 흘렀지만 당시 전쟁과 상관없이 피학살된 이들의 진상규명은 아직도 완전히 규명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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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 11시께 한진중공업으로 향하든 5차 희망버스 참가자들을 강제 연행한 경찰은 곧이어 살수와 최루액을 분사하면서 연행작전에 나섰다. 

이어 35분께 희망버스를 타고 온 대학생 30여명이 영도다리에서 한진중공업 쪽으로 행진하려하자 경찰은 3차 연행작전을 펼쳤다. 이 과정에서 경찰은 남포동 길목 안으로 진입해 연행을 시도하며 최루액을 분사했다.

앞서 8시 20분께 남포동 BIFF광장에서 한진중공업 영도 조선소로 출발한 일부 희망버스 참가자들은 영도 다리 입구에서 가로막혔다.

참가자들과 경찰의 대치상태가 한 동안 이어지다 경찰은 경고방송 뒤 최루액과 물대포를 발사하며 연행작전에 들어갔다. 행진 참가자들과 경찰이 뒤엉켜 몸싸움이 벌어지는 와중에 경찰은 최루액을 뿌렸다. 

이날 경찰에 연행된 인원은 59명에 달하는 것으로 최종 확인되고 있다.

자세한 기사는 민중의소리 
경찰, '희망버스' 참가자 최루액.물대포 쏘며 저지에서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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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는 어제 하루 종일 일이 있어 가지 못했는데, 이렇게 영상으로나마 봅니다. 고맙습니다.

  • 2011.10.09 17:43

    비밀댓글입니다

    • 영상 제공은 어렵지 않은데요...민중의소리와 먼저 협의를 하셔야 합니다. 02-723-4266 서세진씨와 협의하시면 될 것입니다.

  • 민병욱 2011.12.14 19:17 신고

    경남도민일보 갱상도 문화학교 추진단입니다. 오는 15일 '갱상도 블로그' 송년 모임 장소를 창원시 마산합포구 중성동 만초집(관련기사 참조 http://www.idomin.com/news/articleView.html?idxno=364040)으로 정했습니다. 기왕에 하는 모임, 창동·오동동에서 하면 조금이나마 지역 상권 살리기에 힘을 보탤 수 있겠다 싶었습니다.

    술과 음식 준비 때문에 14일까지 참석 여부에 대한 확인 작업을 한 번 더 하겠습니다. 연락 드리기 앞서 아래에 댓글 달아주시면 일이 훨씬 수월해질 것 같기도 합니다.

    죄송하지만, 이날 모임은 갱상도 블로그의 한 해 활동을 돌아보고, 내년을 내다보는 자리인 만큼 구성원이 아닌 분들은 모시지 못합니다. 넓은 아량으로 이해해 주셨으면 합니다.

    그럼, 15일 저녁 7시 만초집에서 뵙겠습니다.


    제목: '가는 해 안 잡는다, 오는 해도 막지 말자!'
    언제: 2011년 12월 15일 저녁 7시
    모이는 곳: 만초집
    참가비: 1만 원.
    문의: 민병욱 019-559-9102 블로그 http://min.idomin.com 이메일 min@idomin.com 만초집 246-3432


    <진행순서>
    -진행(김훤주 경남도민일보 갱상도 문화학교 추진단장)
    -7시~7시 40분 즐겁게 밥 먹고, 마시기
    -7시 40분~8시 간단한 참가자 소개
    -8시~10시 자유로운 발표와 토론
    예) 올해 블로그 생태계에서는 어떤 일이…. 올 한해 갱블 활동하면서 기억에 남는 것은 무엇? (기뻤던 일, 고쳤으면 하는 것들)…. 내년에 갱블 차원에서 해볼 만한 일은 어떤 게 있을까….
    **올해 갱블 발전을 위해 애쓰신 분 세 분을 뽑아서 선물도 드릴 예정입니다. 기대해 주십시오.
    **'갱블' 공동 취재 추진 방안에 대한 논의도 한 번 해 보면 좋겠다 싶습니다. 의견 주시기 바랍니다.

    <만초집 연락처>
    -주소: 창원시 마산합포구 중성동 105번지
    -연락처: 055-246-3432

6일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식에 다녀왔습니다.

영상을 촬영하면서 내내 느낀 것은 참으로 다양한 사회에서 살아가고 있구나 하는 생각입니다.  이날 부산에서는 세계적인 영화축제가 벌어지고 있지만, 서울에서는 농민들이 식량주권 보호를 요구하며 한미 FTA 비준안 체결을 반대하는 대규모 시위를 벌이고 있었으니까요. 

하지만, 이 생각도 잠시였습니다. 개막식에 앞서 레드카펫을 밟는 배우들을 촬영하기에 여념이 없었습니다. 사람은 어디에 서 있느냐에 따라서 그 환경의 지배를 받는다는 말이 틀리지 않았던거죠. 

촬영을 하면서 아쉬웠던 것은 포토라인을 레드카펫을 따라 일렬로 배치하기 보다 부채모양으로 대각선으로 배치했다면 좋았겠다는 생각입니다. 카메라가 일렬로 늘어서니 앞의 카메라로 인해 화면이 가려지는 일이 빈번했고 이 때문에 여기저기서 기자들의 투덜거리는 소리도 나왔습니다. 지난 해에는 이 때문에 기자들 사이에서 큰 다툼도 있었다더군요.

영상은 레드카펫을 밟는 배우들의 모습입니다. 사회부에서 험난한 취재만 하다가 연예쪽의 촬영을 하려니 적응이 안되더군요. 암튼 나름 열심히 촬영했는데, 어떨지 모르겠습니다.

아, 그리고 영상초반에는 배우 김꽃비와 김조광수, 여균동 감독이 손 현수막을 들고 한진중공업 정리해고와 제주 강정마을 해군기지 문제를 제기하는 영상이 있습니다. I LOVE CT 85라고 새긴 손 현수막을 들고 서 있습니다. 개념있는 분들,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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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합천군에서는 대장경천년 문화축전이 열리고 있습니다

 
천년 고찰인 해인사에 보존중인 대장경을 통해 대장경의 가치를 재 발견하고 체험을 통해 고려인의 지혜를 공유하자는 취지의 행사입니다만, 우리 문화의 우수성을 세계에 알리기 위한 행사이기도 합니다

이 행사는
923일에서 116일까지 합천군 가야면 주행사장과 해인사가 주요 무대입니다.

사람들은 이 행사를 쉽게
팔만대장경 축제라고 합니다. 사전전 의미를 찾아보니 축전은 축하하는 뜻으로 행하는 의식이나 행사이니 만큼 다른 표현으로는 축제이기도 합니다.

무릇 축제라고 하면 많은 사람들이 가벼운 마음으로 찾아와 행사를 즐기고
, 그 의미를 깨닫고 가는 행사이어야 합니다. 제가 알고 있는 대부분의 축제는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지요. 축제뿐만이 아니라 많은 유명 관광지도 그렇습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 먹거리는 가장 중요한 부분인데
, 일반 시중의 가격보다 낮지 않은 가격에 어떤 곳은 부실한 음식으로 미관을 찌그리게 하는 곳도 있습니다. 그리고 불친절하거나, 초행길의 여행객에게 충분한 정보를 현지에서 제공하지 않는 곳이 대부분입니다.

이번 행사를
12일로 둘러보며 느낀 아쉬움은 좀 더 친절한 행사가 되었다면 좋았겠다는 것입니다. 친절은 사람에 대한 친절만이 아니라, 관광객에게 다가가는 설비와 안내 등을 말합니다
 

합천 해인사를 찾은 일본인 관광객들.

합천 해인사 장경판전


저 합천군의 대명사처럼 된 해인사와 그 인근 문화유산에서의 아쉬움입니다.

축제가 시작된 해인사로 오르는 길은 일본인 관광객들과 중국인 관광객들이 한국인 만큼이나 많이 보였습니다
. 다들 안내인과 함께 천년고찰의 비문과 역사를 듣는 모습이 내심 뿌듯했습니다.

그런데 불쾌감을 주는 일이 있더군요
. 해인사의 대장경이 보존되고 있는 장경판전 입구입니다. 천년의 숨결을 보존하는 일의 중요성은 잘 알지만, 그렇다고 불친절한 것은 말이 안됩니다. 장경판전 입구에서 제일 먼저 만난 안내인의 불친절이 그것입니다.

문 앞에 선 그들은 다소 억압스런 말투로 사진촬영은 안된다는 뜻으로
카메라 촨이라고 두손을 가위표시로 이야기를 합니다. 등 뒤로는 입구에 들어선 일본인 관광객이 어떤 행동을 했는지 모르지만, ‘허이!’라고 억압스럽게 내뱉습니다. 그 말에 놀란 일본 여성은 외마디 비명을 지릅니다.

천년의 유물을 아끼고 보존해야 한다는 것에 누군도 이견은 없을 것입니다
. 하지만, 축제한다며 사람을 불러놓고 험악한 분위기로 억압하는 것을 보며, 찾아오는 불쾌감은 어찌 할 수 없었습니다

여행이란 것은 자유분방한 분위기에서 이루어 집니다
. 그래서 꼭 필요한 부분에서는 경고문이나 통역을 통해서 관람시 해서는 안될 행동을 친절하게 설명해 주어야 합니다. 그것이 초행길의 여행객을 맞는 첫 일이고 축제의 분위기에도 맞습니다. 아마 그 일본여성들도 내심 마음이 상하지 않았을까요

홍류동 계곡 안내판


두 번째 아쉬움은 해인사 인근에 자리하고 있는 유물들에 대한 설명이 부족해, 그 역사나 내력을 알지못하고 단순히 보고 지나쳐야 했다는 것입니다.

비단 해인사뿐만아니라 다른 유서 깊은 곳도 그렇긴 합니다만
, 작은 석비라도 그 유래를 알 수 있도록 해설을 해 두었으면 여행객에게는 그 고장의 역사까지도 이해할 수 있는 여행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대부분 큰 누각이나 암자같은 대표적인 유물에만 안내판을 세웠습니다.

저는 단순히 기록만을 전하는 안내판만이 아니라
, 그 당시의 이야기들을 스토리텔링하면 어떨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것이 여행객의 이해를 돕고 가치 전달을 하는 여행이 될 수 있도록 안내하는 일이 아닐까 합니다. 현지에서 가져온 여행 안내서를 보면 명소에 대해 그저그런 말들로 평범한 소개만을 하고 있습니다

세 번째는 음식입니다


서두에 이야기 했듯이 축제는 가벼운 마음으로 즐겨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여행지에서의 음식을 비롯한 기념품의 가격이 저렴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행사에 가보면 바가지 상혼들이 힁횡합니다. 한 때의 장사라고 일반 시중의 가격보다 높은 가격에도 그 품질은 형편없는 곳이 많습니다. 그러다보니 대부분의 사람들이 여행지에서 향토색 있는 음식 먹기를 기피합니다. 먹고 나서도 기분 상하는 일이 많기 때문입니다.

팔만대장경 축제에서 저도 음식을 먹지 않았습니다
. 사실 먹을 시간도 없었지만, 여행지에서 먹지않는 것이 습관화된 이유도 있습니다. 하지만 주요 행사장을 둘러보면서 음식점을 찾을 기회가 있었습니다. 대장경 주요 행사장의 음식은 먹어보지 않아 말할 수는 없지만, 그 가격은 역시 일반 시중에 비해 약간 높은 편이었습니다

저는 여행지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먹거리와 친절이라고 봅니다
. 특히 먹거리는 싸고 저렴하게 내놓아 많은 사람들이 찾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행사에도 도움이 되고, 음식점에도 더 많은 이윤을 남긴다고 생각합니다. 박리다매라고 하죠

대부분 여행지의 음식은 제 입맛에 길들여진 이들에게는 호기심의 대상일 뿐
, 실제 먹을 기회는 많지 않습니다. 게다가 가격마저 만만치 않다면 쉽게 손이 가지 않습니다

축제의 현장에서 향토색 짙은 음식을 자유롭게 즐긴다는 것은 또하나의 매력입니다
. 축제는 여행객을 위한 행사입니다. 주최측과 또 그와 관련된 사람들을 위한 행사가 아닙니다. 그래서 관광객의 입장에서 친절한 준비를 하면 더 많은 이들이 찾지 않을까 합니다.
 

합천군 대장경천년 문화축전 주행사장

합천군 용주면 가호리 합천 영상테마파크 내부 세트장


이와 관련해서 덧붙이자면 현지의 인터넷의 문제입니다.

사실 인터넷 한 개 회선을 설치하는데는 불과 몇 만원밖에 하지 않습니다. 특히, 도심을 벗어나 한적한 시골이면 와이파이라고 불리는 무선통신망이 되는 지역을 찾기란 너무도 힘든 현실입니다

세계적인
IT 강국 답게 현대의 젊은이들은 카메라로 무장을 하고, 노트북을 지니고 여행을 떠납니다. 하지만 현지에서는 인터넷에 연결할 수 있는 곳을 찾지 못해 그냥 들고 다니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들에게 현지에서 여행의 소감이나 추억과 기록을 웹상에 올릴 수 있도록 공간을 제공하는 것은 비단 여행객만을 위한 일이 아닙니다


이번 축전의 집행위원회에서는 홍보를 위해 수많은 비용을 들이고 동시에 애를 태웠을 것 입니다
. 그런데도 축전 기간동안 몇 만원 들여서, 수억의 홍보효과를 낼 수도 있는 저렴하고 간단한 방법을 사용하지 않고 있더군요. 친절한 행사였다면 나왔을 법한 기획입니다

현장에서 글을 쓰고 추억을 기록하는 것에 많은 사람들은 관심을 기울입니다
. 현장의 기록은 그만큼 가치가 있고 실시간인만큼 관심의 대상이 됩니다. 더욱이 사람은 그 현장을 벗어나면 그 감동의 기억도 급격하게 감소합니다. 그래서 현장에서 쓰는 글이 중요하기도 합니다

저는 축전기간이 많이 남아 있는 만큼 무선통신망만큼은 빨리 연결해서 휴게실과 함께 제공되었으면 합니다
. 그래서 방문객이 현장에서 행사를 홍보하고, 이를 통해 더 많은 방문객을 찾아오는 성공한 축제가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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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잘 읽었습니다. 그런데 글짜가 좀 이상해요.
    한 번 보고 고치시면 좋겠다 싶어서요~~~
    계속 좋은 글 부탁합니당~~~

    • 홧~..우째 이런 현상이.. 구글 크롬으로 올렸는데 이상이 없어 몰랐거든요. 당췌 뭔 소린가 해서 익스플로어로 보았더니 알 수없는 테그가 있네요. 암튼 감사합니다. 흐미~

  • 좋은의견 감사합니다. 합천관광이 나아갈 방향을 정확하게 짚어주신것 같습니다. 합천군민의 한사람으로써 새겨듣고, 개선할수 있는 여지를 찾아보도록 노력하겠습니다.

  • 다른 분들 글 쓰는 걸 보니 포스팅할 자신이 없어집니다.
    역시 베스트 블로그들은 다른 가 봅니다.
    잘 배우고 갑니다.

  • 신여리 2011.10.05 08:06 신고

    보이는것이 다 가 아니예요.. 관점에 따라 그럴수도 있지만 법보전의 아저씨에 대한 기사를 읽은 적이 있었는데요. 그런 분들의 노력과 애씀이 오래된 장경각을 잘 보존하는 행위가 될 수 있지 않을까요?. 언젠가 흔히 식자라고 하시는 분들이 구경오셔서 법보전 주렴을 손가락으로 따라 적다가 부스럭거리며 일부 조각들이 떨어졌다고 합니다 물론 혼나셨겠지요ㅋㅋ 우리의 국보를 잘 보존하여 오래오래 많은 사람들이 볼수있게하고자 하는 아저씨의 사명감일 수도 있겠다싶네요. 워낙 많은 사람들이 오시는 시기 잖아요..^^*

    • 물론 보존에 대한 중요성은 몇번을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고 봅니다만, 그렇다고 고압적인 자세로 관광객을 불쾌하게 하는 방법이 최선 일까요? 그럴것 같은면 축제랍시고 사람들을 불러 모으지 말아야 지요..얼마든지 웃으면서 친절하게 하면서,보존도 잘 할 수 있습니다.

  • 아쉬움 2011.10.08 21:49 신고

    오늘 공부방 애들과 함께 다녀왔습니다 정말 많이 아쉬웠어요 음식도 그렇고 행사장도 그렇고 많이 많이 아쉬웠습니다 공개된 대장경판 이 보관된 곳 입구에 들어서서 설명을 듣는데 사람은 많지 마이크 소리는 쩡쩡 울리지 거기에 경상도 억양까지 저나 우리애들같은 타지역 사람들은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제대로 알아들을 수가 없었습니다

  • Jin;Aqua 2011.10.12 10:16 신고

    여름에 서울 남산 일일답사를 다녀왔는데, 그 때 만난 민속학과 학생이 한 학기 전에 자기가 박물관(중앙박물관인가 고궁박물관인가..)에서 일한 이야기를 조금 해주더라고요. 그 때 와이파이 이야기도 해 줬는데, 유물에 영향을 끼칠까봐 박물관에는 와이파이를 설치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래서 지난번에 의궤 들어왔을 때도 맞이행사 할 때만 잠깐 일시적으로 설치했다가 행사 끝나고 다시 제거했다고 하네요.

  • 이 은실 2011.10.25 19:56 신고

    저도 지난 일요일에 다녀왔는데 정말 황당한 일을 당했어요 관계자들에게 꼭 전하고 싶어요 월광(?)야로면부근 임시주차장에서 임시 버스를 줄지어 기다리던중 (약30분) 버스가 왔는데 관계자들은 관광객들을 차례대로 테우지도 않고 3대의 버스문을 한꺼번에 열고 사람들이 알아서 타게 방치하고 경찰들과 잡담만 하고는있었다 그러니 중간쯤에 서 있던 우리는 첫번째 버스에타기는 했으나 자리가 없어다시 내려오려니까 뒤에 버스에도 자리없다며 그냥 서서 가란다 너무 어처구니 없었다 우리보다 뒤에 온사람들은 앉아가는데 상식밖의 일이다 공짜라고 짐짝보다 못한 취급을 받다니 축전담당자는 제발 행사요원들을 기본적인 교육을 시켜서 멀리서 오는 손님들에게 좋은 인상을 남겼으면 좋겠다


합천 해인사 인근의 홍제암 앞에는 사명대사의 석장비가 네조각이 난 후 접합되어 서 있습니다.

홍제암에 대한 안내판에는 일본인이 깨트린 것이라고 새겨져 있지만, 실제 그 배후 인물은 당시 해인사 주지 변설호였다고 합니다. 안내판에서는 변설호라는 인물이 빠져 있더군요.
 
정운현 오마이뉴스 전 편집장의 양해를 얻어, 그의 최근 저서 '친일파는 살아있다'에서 그 원문을 빌어 영상과 함께 싣습니다.





경남 합천의 명찰 해인사의 일주문 왼편으로 난 길을 따라 100m 정도를 가면 다리(홍제교)가 하나 나타난다그 다리를 건너가면 오른쪽 편에 부도밭이 나타나고 바로 뒤에 암자 하나가 나타나는 데 바로 홍제암(弘濟庵)이다홍제암은 임진왜란’ 때 산중의 승려들을 규합해 왜적과 맞서 싸웠던 사명대사 유정(1544~1610)이 입적한 곳이다.

 

광해군은 대사가 입적하자 자통홍제존자(慈通弘濟尊者)’라는 시호를영정을 모신 영자전에는홍제암(弘濟庵)’이라는 편액을 내려 그의 호국정신을 기렸다대사가 입적한 지 2년 뒤 홍제암 오른편 부도밭에 대사의 일대기를 기록한 석장비(보물 제1301)를 세웠는데 비문은 당대의 문장가이자 홍길동전의 저자인 허균이 썼다허균은 비문에서 나는 비록 유가(儒家)에 속하는 무리이지만서로 형님 아우 하는 사이로 누구보다 스님을 깊이 알고 있다.”고 적었다.

 

그런데 이 유서 깊은 사명대사의 석장비는 한가운데가 열십자(모양으로 네 동강이 났던 흔적이 완연히 남아 있다현재 해인사에 있는 석장비는 일제말기인 1943년에 네 조각으로 쪼개졌던 것을 1958년에 다시 접합하여 복원한 것이다대체 누가무슨 연유로 호국영령인 사명대사의 비석을 이처럼 훼손했을까그 장본인은 다름 아닌 당시 해인사 주지로 있던 승려 변설호(卞雪醐,창씨명 星下榮次)였다그는 출세를 위해 동료 승려들을 밀고하는가 하면 일경에 아부하기 위해 사명대사의 비석을 네 조각을 내는 데 앞장서기도 했다.

 

변설호는 1888년 5월 해인사가 소재한 경남 합천에서 태어났다금강산 유점사 강주(講主)로 있다가 1935년 9월 유점사 경성포교소 포교사로 부임하면서 그는 서울생활을 시작했는데 그 직후부터 그는 친일로 들어섰다중일전쟁 발발 직후인 1937년 8월 그는 용산 주둔 조선군사령부에 가서 전사한 일본군의 위령제를 지내주었으며또 일본군 출정부대를 전송하기도 했다이듬해2월에는 유점사 경성포교소에서 일본군의 승리를 기원하는 기원제를 지냈으며신도들로부터 국방헌금 50원을 거두어 부대에 직접 전달하기도 했다.

 

그해 3월 그는 돌연 아무런 연고도 없는 해인사 주지로 선출됐다그런데 해인사는 1936년 이해 두 번이나 주지를 선출해놓고도 총독부로부터 인가를 받지 못해 주지가 공석이었다그 자리를 그가 꿰 찬 데는 앞서 그가 서울에서 행한 각종 친일행각의 공로가 총독부로부터 인정받았음은 불문가지다그는 주지로 임명도 받기도 전에 본·말사 승려들을 재촉하여 국방헌금 515위문금 578위문대 200금 1천인침(千人針) 2개 등 현금 1094원과 물품 1305점을 일본군에 바쳤다그리고 그 다음달로 그는 주지 취임 인가를 받았다.

 

그의 친일행각은 급기야 항일 승려를 밀고하기에 이르렀다. 1943년 해인사 강원인 법보학원의 강백이자 8대 주지를 역임한 이고경(李古鏡스님과 원장 임환경(任幻鏡스님이 학승들에게 불교경전 외에 조선역사 등을 가르친 것이 말썽이 돼 합천경찰서에 붙잡혀 갔다흔히 해인사사건이라고 불리는 이 사건으로 두 스님을 비롯해 11명의 학승들이 투옥됐는데이들을 밀고한 사람이 바로 해인사 주지로 있던 변설호였다.

 

사명대사 석장비 훼손사건은 그 뒤의 일이다그는 당시 합천경찰서장 다케우라(竹浦)에게 홍제암에 있는 석장비의 내용이 문제가 있다고 제보했다. 1604년 사명대사가 일본을 방문해 왜장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와 대화를 나누던 중 가토가 조선에 귀중한 보물이 있느냐?’고 묻자 사명대사가 지금 조선에서 가장 소중히 여기는 보물은 바로 당신 목이오라고 대답했다는 대목이 있다.

 

변설호는 비석 내용 가운데 바로 이 대목을 문제삼아 다케우라 서장에게 이런 비석을 그냥 세워둬도 되겠느냐?”며 부숴버릴 것을 권유했다며칠 뒤 그는 경찰과 석수를 데리고 홍제암으로 가서 석장비를 네 동강 낸 다음 한 조각은 해인사 내 경찰주재소 정문 디딤돌로 사용하고 나머지 조각들은 해인사 구광루와 명월당 앞에 보란 듯이 방치하였다.

 

해방 이듬해 그는 일제 때의 반민족행위로 승권(僧權박탈는 중징계를 받고 절에서 내쫓겼다.또 1949년 반민특위 경남지부에 체포돼 그해 9월 25일 보석으로 석방될 때까지 옥살이를 하기도 했다. 1975년 그는 대한불교 총화종 초대종정으로 취임했는데 이듬해 89세로 사망했다그는 고은의 <만인보>(26)에도 친일승려로 이름이 등장하는데 대처승인 그는 언론인 모 씨의 장인으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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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역시 프로와 전문가는 다릅니다.
    잘 보고갑니다.

  • 이춘모 2011.10.03 12:01 신고

    역시 동영상은 살아 있습니다. 너무 생생하게 현장을 전하는 동영상의 위력을 보는 것 같군요. 나도 동영상을 배워 보려고 편집프로그램인 프리미어를 공부하다 너무 어려워서 포기 중 입니다. 스마트폰으로 쵤영하고 업로드를 하지 못해서 그도 포기했습니다. 잘 보았습니다.

  • 잘 읽었습니다. 간단해서 좋군요^^

길이 있어 사람이 걸었더니, 그 길은 하늘에 닿았다가 지상으로 내려오더라.

 

이 길은 경남 합천군 황매산 자락에 위치한 모산재에 있다. 합천 해인사 팔만대장경 축제를 탐방을 위해 찾았던 길의 산행. 하늘에 닿았던 이 길은 다시 지상으로 이어져 인간세계와 살을 섞는다.

 

그 길에 서면 무성한 수목은 온데간데 없고, 넓은 평원만이 하늘을 베개 삼아 대지에 누웠다. 갖가지 야생화와 수풀로 이부자리한 평원에는 사람도 풀꽃이 된다.

정상 언저리 능성에 다다르면 시멘트와 아스팔트 냄새 짙은 내 모습은 이미 없다.

겹겹이 쌓인 산봉우리는 오래전의 과거. 그런 까닭에 황매산은 영화나 사극에서 배경이 된다. 시대극에서 말을 타고 달리는 장면은 대부분 이곳에서 촬영되기도 한다.

 

합천군 황매산 능선에서 모산재로 향하는 길

석산인 모산재는 기암괴석과 풍광이 절묘하다.


황매산 정상을 뒤로 하고 영암사지 방향으로 발길을 돌리면, 전국 최대의 철쭉 군락지가 나온다. 이곳을 지나면 길은 모산재로 이어진다. 황매산의 철쭉군락이 유명세를 얻었지만, 모산재를 잇는 이 길은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 드문, 두어 번의 등산객을 만날 뿐이다. 때문에 모산재는 산을 즐기는 산사람들만이 애용하는 길이 됐다.

 

평원을 가득 메운 철쭉 군락지는 하늘에 닿아 있다. 아주 오래 된 시간, 지금은 불혹을 넘겨버린 한 사내가 청소년기에 어느 촌락의 한 봉우리에서 보았던 그 하늘이다. 산 능선에 누워 깊이를 알 수 없는 하늘과 수만 가지 형상의 구름에 머리가 텅 비어 버렸던 바로 그 하늘이다. 하늘과 맞닿은 이 곳에는 수 겹의 봉우리들이 두 손으로는 가릴 수 없는 위엄으로 버티고 섰다.

 

모산재로 접어들면 잠시 호흡을 정리하는 길이 된다. 수림이 하늘을 얇게 가릴 즈음이면 어느새 하늘과 땅을 걷고 있다. 가파르게 이어진 초입의 길은 세상의 모든 애욕을 한꺼번에 토해내라는 듯 성큼 다가온다. 그러나 마음을 비우고 정화된 몸을 만들기에는 짧은 거리다. 그 짧은 시간에 스스로 몸을 정화시켜야 한다.

 

암반 사이로 버티고 선 소나무의 생명력이 경이롭다.

겹겹이 쌓인 산봉우리 위로 구름이 날고 있다.


이윽고 산봉우리에 서면 멀리로 땅이 보인다. 마치 하늘에서 내려온 신선이 인간세계를 내려 보며 느꼈을 법한 감흥마저 든다.

 

초입 길에서 마음을 비웠다면 사방으로 넓게 펼쳐진 자연의 일부가 되었을 것이다. 기암괴석이 내 안에 섰고, 산허리에 굵게 박힌 석벽에 내가 들어간다. 그 석벽과 기암괴석은 어느새 또 하늘에 닿아, 하늘인지 땅인지 헤아리기 어렵다. 영겁의 세월동안 바람에 안긴 거대한 바위는 그 표면이 제법 넓고 매끄럽다.

 

암산인 모산재 길은 세속의 애욕을 허용하지 않는다. 하늘과 닿은 길이 끝날 즈음, 지상으로 향하는 길에는 순결을 요구하는 거대한 바위가 있다. 순결한 자만이 그 바위 안으로 손을 넣을 수 있다.

 

무덤을 세우면 후대에 제왕이 나온다는 명당자리인 무지개 터에서 한 때나마 가졌던 세속의 욕망도 모두 털어내야 한다. 길은 그 허망한 꿈에 젖었다가는 필시 실족할 만한 가파름을 가지고 있다. 마음을 비우지 않고서는 두려움으로 설 수 밖에 없는 가파름이다.

 

모산재의 철 계단. 그 가파름은 아찔한 두려움을 안겨 준다.


가파름의 절정은 철 계단으로 이어진다. 철 계단은 인간의 땅으로 향하는 접경지. 온통 사방에 도사리고 있는 불안과 근심, 애욕과 이기심의 땅으로 향하는 접경지다. 그래서 현기증 나는 공포를 안겨준다. 한 걸음, 한 걸음 내딛는 순간마다 아찔함과 전율로 온 몸을 떨어야 한다.

 

수 미터 거리의 낭떠러지를 두 눈으로 보아야 하는 철 계단은 인간의 땅에서 살아야 하는 두려움과 공포 그 자체다. 인간이 사는 땅에서의 삶처럼 이 곳 저 곳을 얇게 기웃거리며 재빠르게 움직이는 것을 길은 결코 용납하지 않는다.

 

그 공포를 충분히 겪은 다음에야 밟을 수 있는 곳이 인간의 땅이다. 암반으로 만들어진 인간의 땅은 그 시작부터 얕은 선택을 하지 말라는 듯이 조심스런 걸음을 요구한다. 두 손과 두 발을 모두 사용한 태초의 원시인이 되어야 한다. 그 안에는 합천 해인사에서 입적한 성철스님의 길이 있다. 한 걸음 한 걸음에는 자신의 얼굴도 새겨야 한다.

 

모산재에서 바라 본 영암사지


이렇게 한걸음씩 걷다 보면 비로써 인간에게 허용된 땅에 서게 된다. 이 순간부터 걸음이 빨라진다. 다시 익숙한 인간의 땅으로 돌아온 것이다. 하지만 길은 다시 인간의 욕심이 파괴한 자아를 되새겨준다.

 

바로 신선이 인간의 땅에 접경한 첫 발치에 세운 구도의 불사, 영암사지다.

 

영암사지는 땅이 하늘로 향하는 길에 섰다. 오래전 인간의 모습으로 내려온 신선이 하늘을 향해 걸음하던 인간에게 깨달음을 얻게 한 곳이다. 하지만, 스스로의 오만함과 이기심으로 가득 찬 인간은 신선의 가르침을 거부하고 끝내 이곳을 파괴해 버렸다.

 

수도승이 떠나고 폐사지로만 남은 영암사는 그래도 위풍스런 모습으로 자리하고 있다. 불사의 흔적이 남아 있는 축대에는 사자 한 마리가 웃는 표정을 하고 누웠다. 마치 인간의 어리석음을 비웃으며 조롱하는 모습이다.

 

그 앞으로는 어린 사자 두 마리가 하부의 각선미를 드러내며 석등을 바쳐 들고 섰다.

 

영암사의 축대 사자모양의 조각.

영암사지 석등. 하단부를 바치고 선 사자의 하체는 마치 어린아이의 엉덩이처럼 곡선미를 풍기고 있다.


오랜 세월 동안 석등은 영암사지 삼층석탑 앞을 밝히며 외롭게 절터를 지켜왔다. 그 사이 어떤 이는 깨달음을 얻기 위해 다녀갔고, , 어떤 이는 재물을 탐해 석등을 훔치고자 다녀갔다. 하지만 석등은 오늘도 바람에 깎이고 비에 그을린 채로, 변함없이 하늘과 땅을 잇는 길에 우뚝 버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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