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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한편의 코미디였던 수정마을 이장선거


수정마을 공유수면매립지에 조성되고 있는 stx조선기자재 공장 전경. 마산시는 주택단지조성을 목적으로 매립한 후 산업단지 지정을 했다.

수정마을 공유수면매립지에 조성되고 있는 STX조선기자재공장.


STX 조선기자재공장 건립을 두고 찬반주민간의 갈등을 겪고 있는 마산시 구산면 수정마을의 이장선거는 성명만 있는 선거인명부가 등장해 논란이 일었다. 이장선거는 특히 선거인명부가 추가로 작성됐다는 의혹이 사실로 드러나면서 선거관리위원장이 사퇴하는 등 우여곡절을 겪은 뒤 연기됐다.


2월28일 수정마을회관에서 열린 ‘이장선거를 위한 마을총회’는 3월2일 마산시의회의 ‘STX 조선준공 정산협약 심의’를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찬반주민들의 관심이 집중됐다. STX 유치를 찬성하고 있는 현 이장이 낙선하면 마산시 의회의 정산협약심의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3년 넘게 STX 조선기자재공장 건립을 두고 지속되어 온 찬반주민간의 갈등은 마산시의회의 정산협약심의를 놓고 정점에 이르고 있다. 마산시의회가 정산협약 심의를 통과시키면 수정마을 공유수면매립지는 STX로 소유권이 이전되는 행정절차상의 마지막 단계까지 와 있다.

 

찬성주민들도 서로 내분을 겪으며 갈등하고 있다. 그 동안 조선소유치를 찬성해 온 수정마을뉴타운추진위 대다수 회원인 83명이 정산협약 내용이 알려지면서 당초 STX와 마산시가 약속했던 어장소멸보상이 전혀 없다는 이유로 지난 달 17일 추진위를 탈퇴했다.


이날 마을이장 선거에는 이수강씨와 이효종씨가 출마했다. 현 마을이장인 이수강씨는 STX유치를 찬성하고 있는 반면, 이효종씨는 조선소 건립을 반대하고 있는 인물이다. 내용면으로 보면 찬반주민들을 대표하는 인물들이 이장선거를 놓고 대립하는 양상이다. 그만큼 주민들의 신경전도 치열했다.

 

주민번호와 주소가 생략된 채 이름만 기재되어 있는 수정마을 이장 선거인명부.

투표를 앞두고 열린 마을총회에서는 선거인명부에 대해 성토가 집중됐다. 현 이장이 작성한 선거인 명부는 주민번호와 주소가 기재되지 않은 채 성명만 등재되어 있었다. 그 중에는 마을사람들조차도 모르는 인물이 있어 논란이 됐다.

 

STX 유치반대 수정마을주민대책위는 성명만 있는 선거인명부에 대해 절차와 형식상의 문제를 제기하며 선거인명부의 검증을 요구했다. 이들은 특히 선거인명부에는 선거권이 없는 자100여명이 추가로 등재되어 있다고 의혹을 제기했다.

 

수정마을주민회의 정관의 4조에 선거권 규정에 따르면 “수정마을에 주민등록이 등재된 자”로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또, “(선거권은)세대주 1인으로 하고 마을제반의무를 2010년 2월 25일까지 이행한자만이 선거를 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마을제반의무는 마을운영경비와 이장모임비를 각 세대가 납부할 의무이다.

 

반면, 수정마을개발위원회는 마을제반의무를 다하지 않은 주민들이 동장경비를 20일까지 입금하면 선관위가 25일까지 적격, 부적격여부를 판단한 후 선거인명부를 작성하기로 앞서 결정했다. 이 규정에 따르면 수정마을 총 510여세대중 투표권을 가진 세대는 275세대로 확인된다. 그러나 이후 이 숫자는 373세대로 늘어났다.

 

박석곤 STX유치반대 수정마을대책위원장은 “선관위가 25일까지 선거인명부를 확정해야 하는데 입후보자인 현 이장이 작성을 했다. 선거인명부의 적격여부가 검증되지 않았다”며 “선거관리위원회가 20일까지 동장경비를 임금한 사람을 확인한 후 적격여부를 판단해서 선거를 치러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STX유치찬성 주민들은 투표공고에 따라 오늘 투표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투표연기를 놓고 STX유치 찬성주민들과 반대주민들의 거친 논란이 벌어지면서 마을회관은 한 때 몸싸움이 벌어지는 험악한 분위기로 변했다.

 

주민들은 선거관리위원장의 해명을 요구했다.

 

박정오 수정마을 선거관리위원장은 “(선거인명부)373세대를 인수받았다. 20일까지 확인된 275세대와 맞지 않다”며 “이런 상황에서 선거위원장직을 맡을 수 없어 사직을 하겠다”고 밝혔다. 사실상 형식과 절차상의 문제를 인정한 셈이다.

 

선거관리위원장이 마을총회에서 자진사퇴를 하면서 회의를 진행할 임시의장이 선출됐다.

 

임시의장은 투표권의 기록이 담긴 서류를 검토한 후 동경비(마을경비)를 낸 세대는 275세대로, 장부에는 100여명이 추가로 입금이 됐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 마을에 거주하지 않고 돈을 낸 투표 부적격자를 걸러서 다시 명부를 작성해 투표를 하자”고 제안했다. 반면 이날 투표를 해야 한다는 찬성주민들 모임인 수정마을뉴타운추진위의 반발도 만만치 않았다. “투표공고를 했으니 오늘 해야 한다”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다.

 

수정마을 이장선거를 위한 총회는 stx조선기자재 공장을 두고 대립하고 있는 찬반주민들간의 갈등이 표출됐다.


수정마을 이장선거를 위한 총회가 열린 마을회관에는 stx조선기자재 공장을 두고 대립하고 있는 찬반주민들로 가득찼다.


갑론을박 끝에 임시의장은 두가지 안을 제시하며 다수결에 부쳤다. ‘선거인명부를 당일 검증하고 이날 투표를 하자’는 1안과, ‘선거위원장을 다시 선출해 선거인명부를 검증하고 다른 날로 선거일을 잡자’는 안이다.

 

다수결 결과 76명이 1안을 선택한 반면, 91명은 2안을 선택했다. STX 조선기자재건설을 반대하고 있는 주민들의 승리였다. 이날 주민총회는 수정마을개발위원회와 반장단이 연석회의를 통해 선거인명부를 검증한 후 투표일을 재공고하기로 결정했다.

 

한편, 이날 마을총회를 지켜보는 이들의 아쉬움도 컸다. 매년 정월대보름날에 열렸던 수정마을 이장선거는 전통적으로 마을의 잔치였다는 것이다. 하지만 STX 조선기자재 공장건립계획이 발표된 후 이장선거는 주민간의 갈등으로 장으로 변해버렸다.

 

장혜경 트라피스트수녀원장은 “STX가 들어오면서 마을주민들을 갈라놓았다. 이 점이 제일 아쉽다”고 말했다.

 

이날 수정마을 주민들은 전통인 정월대보름날 마을잔치를 맞아, 찬반 주민들로 나누어져 각각 지신밟기 행사를 따로 가지면서 하루 내내 대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