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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우리는 사랑하는 이를 공유할 수 있을까?

"사랑과 권력은 부모자식 간에도 나눌 수 없는 것이다."  

익숙하게 알려진 이야기지만 동·서양의 문화를 불문하고 이 명제는 보편적 가치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수많은 사건들이 치정과 관련되어 있다. 배우자의 불륜문제, 이성의 배신으로 인한 극도의 흥분은 곧잘 살인으로 이어지고 폭력으로 이어진다. 

이만큼 사랑을 공유하는 것은 동·서양인을 불문하고 다수의 사람들은 받아들이지 못한다. 물론 일률적으로 규정한다는 것은 일반화의 오류다. 현실적으로는 소수이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분명 존재한다. 스와핑을 즐기는 사람들은 그런 부류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사랑과 권력을 나눌 수 없음은 드라마나 영화에서도 단골메뉴로서도 등장하기도 한다. 사극에서는 권력을 두고 부모와 자식 간의 갈등을 보여 준다. 또, 드라마에서는 남녀의 갈등, 삼각관계가 빠지지 않는 소재로 등장한다. 이것이 지나쳐서 ‘막장드라마’가 된다.

역설적이지만 욕을 먹으면서도 막장드라마는 시청률이 높다. 이유는 개개인이 판단에 맡긴다. 이번 포스팅의 주제는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가에 대한 물음이기 때문이다.
 

“당신을 잃느니 반쪽이라도 갖겠어.” 

‘글루미 썬데이’ (Gloomy Sunday, 1999. 롤프 슈벨 감독)는 한 여성을 사랑하는 두 남성이 사랑을 서로 나누어 갖는 일반인의 정서와는 사뭇 다른 사랑을 소재로 두고 있다. 
 

영화는 ‘사랑의 공유’를 통해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지 묻는다. 영화에 나오는 배경과 더불어 주제가인 ‘글루미 썬데이’의 영향도 있지만 현실적으로 사랑의 공유가 가능할 수도 있다는 생각도 갖게 만드는 영화다. 영화에 감동하는 이들은 대부분 ‘사랑의 공유’에 매료된다. 
 

우리나라에서도 최근에 개봉된 ‘사랑의 공유’를 소재로 다룬 영화가 있다. 바로 ‘아내가 결혼했다’ (My Wife Got Married, 2008. 정윤수 감독)란 영화다. 이 영화의 특이한 제목은 ‘아내가 가출했다’로 매번 헛갈린다. 암기력이 없는 탓도 있지만 제목조차도 내 정서와 달랐던 모양이다. 
 

영화는 기혼 여성이 다른 남성을 사랑하게 되고, 실제로 또다른 결혼을 하면서 벌어지는 일들을 다루며 묻는다. 평생을 한 사람만을 사랑할 자신이 있는지. 하지만 역시 주제는 ‘사랑의 공유’다.
 

두 영화의 설정배경은 다르다. ‘글루미 썬데이’는 결혼후의 문제가 아닌 나치 치하의 특수한 사회적 배경을 깔았다. 하지만 이 두 영화는 공통적으로 사랑에 대한 개인의 가치와 자유의지를 다루고 있다. 
 
이들 영화를 모두 본 이들의 생각은 대체로 이중적이고 혼란스럽다. ‘글루미 썬데이’의 공유된 사랑을 이해하면서도 ‘아내가 결혼을 했다’는 이해되지 않는다는 것이 보편적인 경향이다. 

그 중에는 ‘글루미 썬데이’는 미혼 상태이기 때문에 이해되지만 ‘아내가 결혼했다’는 결혼을 한 상태이기 때문에 이해가 어렵다 관점도 있다. 극중 대사와 같이 ‘결혼은 연애의 무덤’인 셈이다.

하지만 제도적 제약을 전제로 앞세우면 개인의 성과 사랑에 대한 자유의지, 그 가치의 존중은 사실상 없어진다. 달리 말하면 ‘사랑의 공유’에 대해 공감을 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서양인의 정서와 우리정서가 다르다는 이유를 든다면 오리엔탈리즘일수 있다. 동양이든 서양이든 개인의 자유의지는 동등하게 존중되어야 한다. 반면, 영화 모두를 공감한다면 공상가이거나 자유의지가 강한 사람일 수도 있다. 
 

혹자는 영화의 캐릭터를 이해할 수 있다며 자신도 그럴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영화를 보고서 단언하는 것은 무리다. 현실적인 문제가 되면 사람은 달라진다. 
 

이렇듯 두 영화를 비교해 보면 우리시대의 가치관의 혼란과 이중적 잣대를 돌아보게 한다. 영화는 또 스스로에게 사랑이란 감정의 진실에 대해 의문을 품도록 만든다. 
 

“사랑하는 이의 다른 사랑까지 받아들이며 공유하는 것이 진실한 사랑일까?

아니면, 혼자 독점하는 것이 진정한 사랑일까? 그리고 우리는 사랑을 공유하며 살 수 있는가" 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