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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아빠, 일제고사가 사람 잡아요

오랜만에 집에서 저녁을 먹는다. 초등학교 6년인 딸애도 밥상을 거들기 위해 앉았다.
숟가락을 들던 녀석이 문득 생각이 난 듯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한마디 한다. 

“아빠, 우리 성취도 시험 대비해서 시험치고, 그 시험 대비해서 또 시험쳐요”

무슨 말인지 언뜩 귀에 들어오지 않아 자세히 물어보았다. 녀석의 이야기는 이랬다. 전국적으로 치르는 성취도 평가(일제고사)시험이 있는데, 경남도교육청에서는 그 성취도 시험을 대비해서 시험을 한번 더 치른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녀석이 다니는 학교도 도교육청의 시험에 대비해서 또 대비시험을 치른다는 것이다. 녀석은 일제고사 대비를 위한 대비시험을 3일 치렀고 4일에도 치른다고 한다. 결국 일제고사를 대비한 대비시험을 아이들은 2번이나 더 치르는 것이다. 

영악한 녀석들의 불만이 나오는 것도 당연하다. 사실을 확인해보니 전국단위로 치루는 일제고사가 10월초에 예정되어 있다. 

일제고사를 거부하고 현장체험학습을 하고 있는 학생들/참교육학부모회


시험 많이 쳐서 뭐가 나쁘냐고 반문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 논쟁은 접어두더라도 이번은 경우가 다르다. 

일제고사가 시행된 본래의 목적은 도시와 시골, 지역간의 나타날 수 있는 학력의 격차를 줄이기 위해서이다. 내면으로는 성취도 평가시험을 토대로 성적이 떨어지는 학교에 대해 학력을 올릴 수 있도록 정부가 지원해주고자 하는데 취지가 있다. 

그런데 주객이 전도되었다. 원래의 목적에 충실하게 부합하려면 교육청이나 일선 학교는 가공되지 않은 학교별 성적을 통해 정확히 학생들의 학력수준을 평가하고, 그것을 토대로 학력향상을 위한 방법을 모색해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전교조를 통해 알아보니 학력의 평균점수가 공개되면서 학교가 서열화 되는 것도 문제지만, 일선학교나 교사들은 현재의 일제고사 성적이 앞서 치룬 일제고사성적보다 높게 나와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을 경우 그 피해가 학교나 교사에게도 올 수 있어 모두 부담감을 느끼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는 설명이다. 

이쯤 되니 왜 일선학교와 교육청에서 일제고사를 대비한 대비시험을 치르는지 이해가 된다. 

그 동안 학력평가라고 불리는 시험의 실시를 두고 학부모 단체나 전교조는 반대의사를 명확히 해 왔다. 시험성적이 외부로 노출될 경우 역효과가 나타난다는 주장이었다. 성적이 외부로 유출될 경우 학생간의 경쟁은 더 심해지고, 이로서 학부모들의 사교육비도 함께 높아져 학부모와 학생 모두를 힘들게 한다는 것이었다. 

참교육학부모회


경쟁사회 속에서 자녀의 성적에 대한 걱정도 많은 것은 사실이지만, 개인적으로는 인성에 앞서 경쟁부터 배우는 아이들을 볼 때 마음이 편하지는 않다. 그리고 무엇보다 공교육이 정상화되기를 바라던 일말의 기대감도 교육관계자들의 행정으로 볼 때 더 이상의 기대를 할 수 없다는 생각도 슬프다. 공교육이 교육주체를 위한 것이 아니라 관계 당사자들의 이해를 위한 교육으로 변질되어 버린 까닭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