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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80대 농촌 어른들이 머리띠 두른 이유

마을을 지키기 위한 밀양 하남읍 주민들의 안간힘이 안쓰럽다.

여느 농촌마을과 같이 70대 80대 고령의 할아버지와 할머니들이다. 이들은 숫한 세월을 살아오면서도 '투쟁'이란 단어를 모른 채 이제까지 살아왔다.

2008년 주민들은 밀양시의 행정에 동의를 했다. 마을에 공장단지를 건설하겠다는 시의 제안에 유하거리법이 기존 15km에서 7km로 변경되는 안에 동의를 한 것이다. 소위 ‘경제 살리기’의 일환으로 한 것이다. 그 동의에는 공해산업단지가 아닌 일반산업단지조성이라는 묵시적인 견해가 포함됐다.

그러나 밀양시는 주민들의 입장을 반영하지 않고 주물단지라는 공해산업  유치신청을 경남도에 했다. 그것도 주민들과의 한차례 의견수렴도 없이 관련 법규가 개정된 바로 다음날인 12월5일에 신청을 해 버렸다. 

마을 주민들은 지난 5월20일 밀양시청에서 첫 집회를 가졌다.

밀양시청에서 집회를 가진 주민들이 시가 행진을 하고 있다.


이날부터 마을을 지키기 위한 주민들의 ‘투쟁’은 시작됐다. 

마을주민 대부분은 60대에서 80대에 이르는 노인들이다. 어른 신들의 분노에 지역의 젊은이도 합세했다. 대대로 살아 온 물 좋고 공기 맑은 고향을, 천혜의 고장 밀양을 쇳물로 파괴하기 싫었던 것이다.

엄용수 밀양시장은 “밀양에 공해있는 산업단지 조성은 절대 안되며 깨끗한 자연을 잘 보전하여 우리 후손에게 물러줘야 할 책임이 있기에 하남산업단지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훌륭한 친환경 산업단지의 표준모델이 될 수 있도록 조성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주민들은 "후손에게 깨끗한 자연을 물러주기 위해 공해있는 산업단지 조성은 절대 안되고, 하루 584kg의 비산먼지가 발생하는 친환경산업단지는 된다는 것이냐”며 반박하고 있다.

밀양시가 공해방지를 위한 최첨단 시설을 갖추겠다고 했지만 주민들은 최첨단 시설은 있을 수 없다고 주장한다. 지난 7월31일 경남도청이 주관한 간담회에서 입주업체로 구성된 조합은 주물단지에 대한 최첨단시설은 대한민국에서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밀양시는 여전히 최첨단 시설을 강조하며 주물단지를 유치하려 하고 있다.

주민들은 밀양시의 주물단지공장 조성은 진해로부터 내팽겨진 공해산업단지를 유치하려는 것이라고 비난한다. 앞서 이재복 진해시장은 민선시장으로서의 공약사업으로 공해산업단지인 진해마천공단을 이전하겠다고 했다. 그 이전지로 떠오른 것이 밀양시 하남읍이다. 결국 밀양시는 ‘기업하기 좋은 도시 성장하는 밀양’이란 미명으로 진해시가 포기한 공해산업단지를 하남으로 유치하려는 것이다. 

특히 주민들은 밀양시가 시에서 생산되는 농산물을 ‘미르피아’라는 브랜드로 전국에 홍보하면서도 공해업체를 유치하려 한다고 반발한다. 쇳가루가 묻어 있는 땅에서 아무리 거액의 광고를 들여 ‘미르피아’를 외친다고 한들 누가 사먹겠느냐는 성토다.  

지난 6월23일 경남도청 앞에서 집회를 열고 있는 주민들


주민들은 수차례 밀양시청 앞에서 집회를 했다. 그러나 밀양시는 산업단지조성에 대한 입장을 굽히지 않았다. 결국 경상남도가 낙동강유역환경청에 일반산업단지 심사를 청구하자 지역 어른들과 젊은이들은 경남도청으로 향했다. 경남도가 산업단지 조성에 대한 허가를 철회하라는 것과 낙동강유역환경청의 공정한 산단 심의를 촉구하는 것이 목적이다. 

하지만 때얏볕에서 때로는 비를 맞으면서 외쳤던 호소와 성토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바람은 점차 어두워져가고 있다.

지난 7월23일 주민들과 시의회 의원 등이 하남주물공장에 대한 심의를 보류해 달라는 건의문에 대해 경남도는 31일 간담회에서 '충분한 대화'를 밀양시에 요구했다. 그러나 그 날 당일 산업단지 7개소를 방문한 엄용수 밀양시장은 주민들이 “전체적으로 시장님 말씀에 공감하며 뜻에 따르겠다”라는 내용을 담은 문서를 8월3일 경남도에 발송했다.

주민들은 아연실색했다. 밀양시장이 산단 인근 7개 마을 주민들과 공식적인 면담사실이 없고 마을대책위원장을 비롯한 집행부의 공감을 이룰 수 있는 대화를 한 적이 없다는 것이다.
주민들의 주장에 따르면 밀양시장은 겨우 15명의 마을주민을 만난 것이 전부다.  그럼에도 경남도는 공문 한 장으로 산업단지 심의를 준비하고 있다는 것이 주민들의 격앙된 목소리다.
 

11일 비가 내리는 가운데 천막농성을 하고 있는 마을 주민들

카메라를 향해 손 피켓을 흔드는 주민들의 어색함이 보인다.

11일 금방이라도 억수같은 비가 내릴 듯 잔뜩 짓뿌린 하늘아래 고령의 주민들은 경남도청 앞에 다시 모였다. 그런데 지쳤을까? 전 처럼 격앙된 연설도 없다. 그저 대형 스피커를 통해 그간의 주장들을 되새김 하듯 반복하고 있다. 비를 피해 천막 아래로 모인 주민들은 도로를 무심코 지나가는 차량을 보거나 경남도청을 바라보는 일을 반복하며 앉아 있다.

사진 한 장 찍겠다는 기자의 말에 어색함이 드는지 엷은 웃음을 감추지 못한다. 카메라를 들이대자 자세를 가다듬은 그들은 손에 든 피켓을 힘차게 흔들어 준다. 그 모습에는 누군가가 나서서 절박한 처지에 선 자신들을 도와주기를 바라는 간절함이 묻어 있다.  

"거...되게 시끄럽네"

이때쯤 지나가는 한 이가 투덜거리듯 내 뱉는 말이 기자의 귓전을 때리며 사라진다.